오는 8월 23일까지 대전시립미술관에서 열리는 '광복 70주년 한국근현대미술특별전'에서는 미술계 거장들의 대표 작품 외에도 특별한 한가지가 더 있다. 바로 특별전에 참여하고 있는 작가의 작품이 수록된 간행물과, 당시 시대상을 반영한 미술교과서, 교과서에 등장한 삽화 등을 함께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이 자료는 한국근현대사와 함께 걸어온 작가들의 삶을 작품과 자료를 통해 역추적하며 작품 세계를 조명해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전시장에 전시된 자료와 미술 교과서의 변천과정을 살펴봤다.
◇한국 근·현대미술 115년간의 기록=1 전시실에는 해강 김규진의 서예교본(1913년)과 심전 안중식의 화보집 등 희귀 자료들이 전시돼 있다. 이 중 눈 여겨볼 만한 자료는 행서, 초서, 전서, 해서, 예서, 육서의 글씨체를 쓰는 방법과 필획을 설명하고 습자한 것을 목판복으로 제작한 '육체필론습자첩'. 김규진이 서예 교본으로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한말의 서양화가로 왕실의 어진화사였던 심전 안중식의 화보집인 '심전화보'도 있다. 안의 내용물을 볼 수 없어 아쉬움을 준다. 이종우, 고희동, 심정구 등 19명으 한국화가들에 대한 신문스크랩 자료도 있다. 관람객들의 관람 편의를 위해 내용물이 보기좋게 펼쳐져 있어 한번쯤 훑어보고 가길 권한다.
백남준이 유준상에게 준 연하장과 동아일보 5056호 부록으로 제작된 청전 이상범 배경 달력도 눈길을 사로잡는다. 청전 배경 달력은 당시 달력 제작 방식을 가늠해 볼 수 있어 색다른 즐거움도 준다.
2전시실에서는 정기간행물과 미술 교과서를 살펴 볼 수 있도록 구성돼 있다. 1930년대부터 만들어진 정기간행물과 1900년대부터 해방이전까지의 미술교과서가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지루하지 않게 볼 수 있다. 먼저 문예지부터 보자. 청전 이상범 화백의 견우직녀도가 표지에 수록된 '신생(1930년대)', 평양에서 격월로 발행된 '조선미술 1호(1958년)'에는 월북작가 배운성의 '널뛰기'가 표지를 장식하고 있다. 우리나라 최장수 문예지로 통권 540호 지령을 기록한 '현대문학' 표지 역시 2전시실에 있는 김환기의 '운월'과 비슷한 형태의 작품이다.
미술교과서는 1911년 조선총독부에서 간행한 미술교과서 '정정 보통학교학도용 도화임본'을 시작으로 1912년 일본 문부성이 발행한 '심상소학 신정화첩(新定畵帖)' 등 교과서 208점이 3·4(해방이후부터 1990년대 미술교과서), 5전시실(2000년대 교과서)로 이어지며 전시되고 있다.
해방이후 눈여겨 볼 교과서는 장면 총리의 동생이자 초기 서울대 미대 학장인 장발이 편저한 '고등 새미술'(1960), 이탈리아 에드워드 링글 교수의 데생집에서 선별해 중·고등학교와 사범학교용 교재로 제작된 '뎃상교본'(1960)이 있다. 1970-2000년대 주요 미술교과서는 표지 색이 점점 화려해지고 인물, 사물, 정물 등 다양한 작품이 등장하는 것이 특징이다.
◇한국 미술교과서 변천사=우리나라에서 미술교과서는 언제 만들어지고 어떻게 변해 왔을까?
근대 이후 우리나라 미술교과서의 변천사는 일반적으로 개화기(1895-1910), 일제 강점기(1911-1945), 광복과 수립(1945-현재) 이후 등 크게 세 시기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 근대식 미술교육이 처음 등장한 것은 1895년 소학교령에 따라 근대교육제도를 수립하고 각급 학교에 도화과를 도입하면서 부터다. 미술교과서의 처음 등장은 그로부터 수년이 지난 1907-09년에 '도화임본(圖畵臨本)' 4권이 발행됐는데 우리나라 최초의 국정미술교과서로 기록되고 있다.
1910년 일제강점기 시기에는 우리나라를 강제 합병한 일본이 조선총독부를 설치하고 1911년 제1차 조선교육령공포와 함께 교과서 편찬사업을 진행했는데 해방이 되기까지 총 4차에 거쳐 조선교육령을 시행했다. 이 시기 교과서는 한국인의 언어와 문화를 말살시키기 위해 만들어졌다.
해방이후 주권을 가진 미술교육을 서구 민주주의식 교육의 영향에 의해 전환의 계기를 맞이했다. 대한민국 정부수립 후 첫 국정 교과서는 '미술', '미술과 만들기'였다. 이후 1955년 제1차 교과과정이 공포되면서 오늘날의 교육과정의 첫 면모를 법령화하기에 이르렀다.
이 시기부터 기능중심의 임화로부터 학생들의 개성과 정서를 개발하려는 창조주의, 표현주의 미술이 모색됐다. 제1차 교과과정은 1954년 문교부령으로 초·중·고등학교·사범학교에 교육과정 시간을 배정하고 교과과정을 공포했다. 이때 발행한 '미술'교과서는 모사기술주의 교육을 벗어나 창조주의 교육을 강조하고 있다. 제2차 교육과정은 조형능력의 활용, 감상능력의 신장에 교과 목표를 두고 미술 교과서가 개정됐다.
1973년에 개정된 제3차 교육과정은 외국의 사조에서 탈피해 한국적인 미술교육 정립을 위한 교과내용을 체계화 하는 것으로 '회화', '조소', '디자인', '공예', '서예', '감상'이란 영역으로 구체적으로 설정된 것이 특징이다. 1981년 제4차 교육과정부터 8차 교육과정까지 미술교과서는 각 시대별, 사회의 변화에 따른 다각적인 요구를 반영했다. -끝- 원세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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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근·현대미술 115년간의 기록=1 전시실에는 해강 김규진의 서예교본(1913년)과 심전 안중식의 화보집 등 희귀 자료들이 전시돼 있다. 이 중 눈 여겨볼 만한 자료는 행서, 초서, 전서, 해서, 예서, 육서의 글씨체를 쓰는 방법과 필획을 설명하고 습자한 것을 목판복으로 제작한 '육체필론습자첩'. 김규진이 서예 교본으로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한말의 서양화가로 왕실의 어진화사였던 심전 안중식의 화보집인 '심전화보'도 있다. 안의 내용물을 볼 수 없어 아쉬움을 준다. 이종우, 고희동, 심정구 등 19명으 한국화가들에 대한 신문스크랩 자료도 있다. 관람객들의 관람 편의를 위해 내용물이 보기좋게 펼쳐져 있어 한번쯤 훑어보고 가길 권한다.
백남준이 유준상에게 준 연하장과 동아일보 5056호 부록으로 제작된 청전 이상범 배경 달력도 눈길을 사로잡는다. 청전 배경 달력은 당시 달력 제작 방식을 가늠해 볼 수 있어 색다른 즐거움도 준다.
2전시실에서는 정기간행물과 미술 교과서를 살펴 볼 수 있도록 구성돼 있다. 1930년대부터 만들어진 정기간행물과 1900년대부터 해방이전까지의 미술교과서가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지루하지 않게 볼 수 있다. 먼저 문예지부터 보자. 청전 이상범 화백의 견우직녀도가 표지에 수록된 '신생(1930년대)', 평양에서 격월로 발행된 '조선미술 1호(1958년)'에는 월북작가 배운성의 '널뛰기'가 표지를 장식하고 있다. 우리나라 최장수 문예지로 통권 540호 지령을 기록한 '현대문학' 표지 역시 2전시실에 있는 김환기의 '운월'과 비슷한 형태의 작품이다.
미술교과서는 1911년 조선총독부에서 간행한 미술교과서 '정정 보통학교학도용 도화임본'을 시작으로 1912년 일본 문부성이 발행한 '심상소학 신정화첩(新定畵帖)' 등 교과서 208점이 3·4(해방이후부터 1990년대 미술교과서), 5전시실(2000년대 교과서)로 이어지며 전시되고 있다.
해방이후 눈여겨 볼 교과서는 장면 총리의 동생이자 초기 서울대 미대 학장인 장발이 편저한 '고등 새미술'(1960), 이탈리아 에드워드 링글 교수의 데생집에서 선별해 중·고등학교와 사범학교용 교재로 제작된 '뎃상교본'(1960)이 있다. 1970-2000년대 주요 미술교과서는 표지 색이 점점 화려해지고 인물, 사물, 정물 등 다양한 작품이 등장하는 것이 특징이다.
◇한국 미술교과서 변천사=우리나라에서 미술교과서는 언제 만들어지고 어떻게 변해 왔을까?
근대 이후 우리나라 미술교과서의 변천사는 일반적으로 개화기(1895-1910), 일제 강점기(1911-1945), 광복과 수립(1945-현재) 이후 등 크게 세 시기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 근대식 미술교육이 처음 등장한 것은 1895년 소학교령에 따라 근대교육제도를 수립하고 각급 학교에 도화과를 도입하면서 부터다. 미술교과서의 처음 등장은 그로부터 수년이 지난 1907-09년에 '도화임본(圖畵臨本)' 4권이 발행됐는데 우리나라 최초의 국정미술교과서로 기록되고 있다.
1910년 일제강점기 시기에는 우리나라를 강제 합병한 일본이 조선총독부를 설치하고 1911년 제1차 조선교육령공포와 함께 교과서 편찬사업을 진행했는데 해방이 되기까지 총 4차에 거쳐 조선교육령을 시행했다. 이 시기 교과서는 한국인의 언어와 문화를 말살시키기 위해 만들어졌다.
해방이후 주권을 가진 미술교육을 서구 민주주의식 교육의 영향에 의해 전환의 계기를 맞이했다. 대한민국 정부수립 후 첫 국정 교과서는 '미술', '미술과 만들기'였다. 이후 1955년 제1차 교과과정이 공포되면서 오늘날의 교육과정의 첫 면모를 법령화하기에 이르렀다.
이 시기부터 기능중심의 임화로부터 학생들의 개성과 정서를 개발하려는 창조주의, 표현주의 미술이 모색됐다. 제1차 교과과정은 1954년 문교부령으로 초·중·고등학교·사범학교에 교육과정 시간을 배정하고 교과과정을 공포했다. 이때 발행한 '미술'교과서는 모사기술주의 교육을 벗어나 창조주의 교육을 강조하고 있다. 제2차 교육과정은 조형능력의 활용, 감상능력의 신장에 교과 목표를 두고 미술 교과서가 개정됐다.
1973년에 개정된 제3차 교육과정은 외국의 사조에서 탈피해 한국적인 미술교육 정립을 위한 교과내용을 체계화 하는 것으로 '회화', '조소', '디자인', '공예', '서예', '감상'이란 영역으로 구체적으로 설정된 것이 특징이다. 1981년 제4차 교육과정부터 8차 교육과정까지 미술교과서는 각 시대별, 사회의 변화에 따른 다각적인 요구를 반영했다. -끝- 원세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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