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지숙 서울시립미술관장(56)은 올해 세계 도시를 연결하는 전시에 중점을 두고 있다. 실험적인 설치 작품으로 세계 미술 중심에 올라선 이불 작가와 한글 글꼴 `안상수체`를 만든 디자이너 안상수 전시를 아시아 주요 도시에 펼치는 순회전을 추진하고 있다. 팔다리가 여러 개 달린 괴물 의상을 입고 거리를 활보하던 퍼포먼스 등 1980년대 후반~1990년대 초반 이불이 발표한 초기 작품을 조명하는 `비기닝`이 오는 12월 서소문 본관에서 출발해 아시아를 순회할 예정이다. 안상수의 문자 디자인 세계를 깊게 들여다보는 `문자반야` 순회전은 오는 11월 중국 베이징 CAFA미술관에서 펼친다.
백 관장을 비롯해 최근 국공립 미술관장에 오른 40·50대 여성 리더들의 올해 화두는 `경계 넘기`다. 미술관 담장을 넘어 지역민들과 친밀하게 소통하고 세계 미술관과 연결하는 데 역점을 두고 있다. 지난해 유리천장을 깨고 새로운 수장이 된 김성은 백남준아트센터 관장(48), 기혜경 부산시립미술관장(56), 선승혜 대전시립미술관장(50), 최은주 대구미술관장(57), 안미희 경기도미술관장(53) 등의 새해 목표는 미술관의 경계 확장이다. 이보다 앞서 2018년 임명된 최정주 제주도립미술관장(51), 2017년 취임한 김은영 전북도립미술관장(59)도 비슷한 행보를 보일 예정이다. 부드러운 카리스마와 체계적이고 빠른 업무 추진력을 보여주는 이들은 대내외 소통을 강화할 계획이다.
김성은 관장은 최근 신년 간담회에서 '경계를 넘는 미술, 관계를 쌓는 미술관을 지향한다'고 밝혔다. 미술기관들과 전시 협력, 소장품·아카이브 대여뿐만 아니라 학술기관들과 공동 연구, 출판 부문 국제 교류 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다. 프랑스 파리 8대학·10대학, 독일 카를스루에 ZKM, 크로아티아 자그레브 현대미술관 등과 공동 기획 전시·연구 프로젝트도 진행할 예정이다.
기혜경 관장은 1960~1970년대 지역 미술가 김종근 추연근 김원 김홍석을 연구한 `부산미술조명`(5월 22일 개막), 서구 모더니즘에 대응하는 중국 대표 작가 쑹둥 주진스 류웨이를 조명하는 `중국현대미술`(9월 25일 개막), 세계적 비디오 아티스트 빌 비올라 전시(10월 23일 개막) 등으로 새해 전시장 문을 연다.
선승혜 관장은 세계적 미디어 아트 축제인 오스트리아 아르스 일렉트로니카 등과 협업하는 `대전과학예술비엔날레:AI`(8~11월), 지역 미술가들을 조명하는 `광자진취:대전미술 7080`(2월 11일~4월 5일) 등을 추진하고 있다.
최은주 관장은 올해 프랑스 현대미술 거장 다니엘 뷔랑이 어린이를 위해 기획한 교육형 전시 `어린아이의 놀이처럼`(5월 5일~8월 30일), 현대인의 소외와 사회문제를 그린 독일 대표 작가 팀 아이텔 전시(6월 2일~10월 4일)를 열 계획이다.
안미희 관장은 대만 미디어퍼포먼스 작가 유청타의 관객 참여형 퍼포먼스 전시 `두리안 GX룸`(2월 6일~5월 10일), 우리가 함께 살아가게 될 세계의 조건과 이미 변화하고 있는 `함께 사는 방식`을 진단하는 전시 `우리와 당신들`(3월 1일~5월 31일)을 펼칠 예정이다.
서울시립미술관은 네덜란드 로테르담 개방형 미술관 `보이만스 반 뵈닝겐 미술관 창고` 소장품 걸작전 `브뤼겔에서 로스코까지`(12월 북서울미술관 개막)를 펼친다. 렘브란트, 모네, 세잔, 고흐, 뭉크, 칸딘스키, 몬드리안, 피카소, 로스코 등 거장들의 걸작을 소개하는 전시다.
50·60대 남성이 주로 맡던 제도권 미술 수장 자리를 꿰차며 여풍(女風)을 일으킨 이들이 올해 어떻게 미술관을 운영할지 주목받고 있다. 그동안 미술계 종사자는 여성이 압도적으로 많은 데 반해 관리자는 주로 남성 차지였다.
2019년 미술계 이슈로 여풍을 뽑은 김달진 김달진미술연구소장은 '미투(Me Too·나도 성폭력 피해자)` 등으로 사회 분위기가 여성을 주목하고, 실무 역량을 갖춘 여성이 많아서 여성 미술관장이 늘고 있다'며 '그동안의 성적 불균형이 사회적 변화에 맞춰 자연스럽게 개선된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