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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이 발전하려면 화랑은 유통업이 아닌 제조업이 되어야

조윤선

<조윤선의 문화 읽기>
미술이 발전하려면 화랑은 유통업이 아닌 제조업이 되어야

화랑이 뭘 하는 곳이 길래 기업 비자금 조성의 조역으로 신문지상에 자주 등장하는 것일까... 요즘 젊은 화가나 사진작가들을 만나면 국내 화랑의 전속 작가가 되고 싶지 않다는 말을 듣는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외국의 유명 갤러리에 소속되고 싶어하고 소속 작가까지는 못될지언정 그 화랑에서 전시라도 한번 열 수 있기를 갈망한다. 어느 정도 인정받는 작가가 되기까지 시간과 비용이 필요함에도 그 정도 투자를 계속할 형편이 되는 국내 화랑은 그렇게 많지 않다는 설명이다.

화랑이 작가에게 날개가 되기보단 족쇄가 되는 때가 더 많은 것 같다는 하소연도 있었다. 수년전 한 중견 화가가 전시 준비를 하는 모습을 몇 년 동안 본 적이 있다. 자신이 전속된 화랑의 갤러리스트가 부지런히 스튜디오를 방문해 작품을 채근하고 작품의 방향을 집요하게 토론하는 바람에 잠시도 쉴 틈이 없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던 터라 요즘 젊은 작가들의 토로가 더욱 의아하기만 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갤러리스트는 작가가 나태해지는 걸 막기도 하고, 의기소침해 질 때 북돋아주기도 하는 멘토같은 존재였다. 잭 니콜슨이 나오는 영화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에도 정서적으로 불안정한 화가가 진정하고 작품 활동을 할 수 있게 하기 위해 갤러리스트가 혼신의 힘을 다 해 비위를 맞추는 모습이 코믹하게 그려진 장면이 나온다.

흔히 화랑업을 하는 사람이면 으레 자신을 갤러리스트라고 부른다. 그런데 갤러리스트는 엄밀히 말하면 작가의 작품을 미술 시장에 처음으로 내 놓는 사람을 말한다. 한번 거래되었던 작품을 다시 거래하거나, 작품을 사두었다가 팔거나, 경매시장의 거래를 하는 사람은 미술품 거래상이지 원칙적으로 갤러리스트는 아니다. 지금은 둘 간의 경계를 분명히 긋기 어려울 정도로 미술품의 거래가 복잡 다단하게 변했지만, 적어도 두가지 행위의 근본 ‘정신’은 분명히 구별되어 있다.

파리에 출장을 갔다가 유명한 화랑의 갤러리스트를 만날 기회가 있어 물어보았다. 그 갤러리 소속 화가들 중에는 유명해진 사람들도 많은데, 젊었을 때 싼 가격으로 샀을 법 한 그들 작품을 지금 팔면 큰 돈을 벌 수 있지 않느냐고. 대답은 의외였다. 자기는 갤러리스트이기 때문에 그런 일은 하지 않는 다고 했다.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은 미술품 거래상(art dealer)이라고 했다. 한 화가의 전시회를 하면 갤러리는 화가가 받고 싶은 금액을 확인하고 소비자들에게 두 배의 가격을 제시한다. 판 가격의 반은 화가의 몫이고 나머지 반에서 액자비용, 전시에 들어가는 비용, 홍보비용등 제반 비용을 제한 나머지가 갤러리스트의 몫이라 했다. 한번 거래되었던 작품을 다시 거래하는 경우는 단 한가지. 자기들이 팔았던 작품을 되팔아 달라고 하는 고객이 있을 때 뿐이다.

갤러리스트를 하는 것 보다 미술품 거래상을 하는 것이 훨씬 돈을 많이 벌 수 있는데 왜 미술품 거래상을 하지 않는지, 적어도 두 가지를 함께 할 수도 있을 텐데 왜 하지 않는지 물었다. 답은 단순했다. 두가지는 너무나 다른 일이어서 한번에 같이 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엘리트 갤러리스트 여럿을 두고 있는 그 화랑 조차 20명의 화가들을 관리하는게 너무나 바쁘고 힘든지 벅차다고 했다. 그 화가들이 요새 어떤 작품을 하는지, 시장에서 인기가 있다고 늘 같은 화풍에만 천착하지 않는지, 슬럼프에 빠지지 않았는지, 건강은, 특히 정신 건강은 괜찮은지를 챙기느라 늘 바쁘다 했다. 가족의 안부나 대소사를 챙기는 것도 보통이다. 전시를 통해 작품과 작가를 노출시키고, 언론과 비평가들에게 그 작가의 의도와 변화, 성장을 홍보하는 데에도 너무나 많은 정성과 공이 들어간다고 했다. 동시에 일단 화랑 소속 작가가 되면 시장의 충격에 대해 작가를 보호하는 것도 갤러리스트의 책임이라고 했다. 소속 작가의 작품이 해를 두고 조금씩 가격이 올라가도록 수급을 조정하는 것도 갤러리스트의 역할이라고 했다. 영국의 악명 높은 한 갤러리처럼 젊은 작가의 작품을 모조리 산 후, 시간이 지나 더 가지고 있고 싶지 않은 작가의 작품 전체를 경매 시장에 한 번에 내 놓겠다고 협박하는 그런 갤러리는 있어서는 안된다고 열변을 토했다. 그러면서 최근에 발견한 동구권의 젊은 작가들의 기특한 작품 세계를 나에게 설명하느라 분주했다. 마치 진흙탕 속에서 진주를 발견한 사람의 모습 같았다.

팝 아트의 교황이라고 불렸던 레오 카스텔리(Leo Castelli). 아무도 미국의 미술에 관심을 주지 않을 때 그는 부지런히 미국의 미술을 유럽에 소개했다. 이태리 출신으로 유럽의 여러개국 언어를 자유 자재로 구사했던 그는, 미국 미술을 경박하다 여긴 당시 유럽의 편견을 유창한 그들의 언어로 불식시켰다. 그의 손을 거친 작가를 대자면 끝도 없다. 잭슨 폴락, 윌리엄 드 쿠닝, 싸이 톰블리, 노만 골룸, 로버트 라우센버그, 재스퍼 존스, 프랑스 스텔라, 래리 푼스, 제임스 로젠키스트, 앤디 와홀, 로버트 모리스, 도날드 주드, 리처드 세라..... 현대미술사에 이름을 낸 작가들로서 미국을 배경으로 활동한 이들은 거의 그의 손에서 태어났다. 그는 늘 자신이 그 작가를 발견하는 ‘첫번째’ 갤러리스트이기를 원했다. 이미 다른 사람이 발견해 소개한 작가에게는 굳이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1991년 나이 91세에 생을 마감한 그가 처음 화랑을 시작한 건 그의 나이 쉰을 갓 넘겼을 때 였다. 50년을 쌓은 안목과 결단력이 바로 뉴욕을 현대의 아테네로 만들고 미술사의 한 획을 긋게 되었던 것이다.

진정한 갤러리스트를 보면, 창작은 결코 작가 혼자서 하는 것이 아니었다. 수많은 작가와 작품을 통해 폭 넓은 식견을 지닌 갤러리스트와 작가는 토론하는 과정을 거쳐 작가의 작품세계를 형성해 나간다. 그야말로 작가와 갤러리스트는 진정한 ‘창작의 파트너’인 것이다.

화랑이 작가와 함께 작품을 창조하는 제조업이 되지 않고, 물건을 떼다 파는 유통업에 머문다면 아마도 우리 화랑계에 작가는 한 사람도 남지 않는 때가 올런지도 모른다.

- 한나라당 국회의원 / 문화체육관광통신위원회 위원
- 월간 [아츠앤컬처] 2011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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