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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화가 김기창·박래현의 '운우미술관' 사라지나

한재수

세기의 아름다운 부부화가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가 사라질 위기에 있다. 운보 김기창과 우향 박래현이 살며 작업했던 서울 성북동 한옥 '운우미술관'을 재개발 조합이 철거하려 하고 있기 때문이다. 화가로서 업적도 대단했지만 청각장애자였던 김기창과 여류화가 박래현의 부부애는 우리에게 한층 더 크게 다가왔었다. 이들 부부가 군산에서 서울로 올라온 1954년 무렵 이곳은 피란민들의 판잣집으로 가득했다. 그러나 평소 검약했던 우향의 노력으로 산자락에 아담한 한옥을 장만했다.

이 시절 거리는 전쟁 상이군인들로 가득했기에 청각장애자 운보는 미술계의 관심대상도 되지 못했다. 하지만 우향의 내조로 그는 마침내 1971년 인사동에 운향화실을 열고 작품 활동에 박차를 가했다. 이런 우향에게 운보는 평소 입버릇처럼 '당신을 위한 미술관을 지어주겠다'고 약속했다. 점차 작품이 팔리고 생활이 안정되자 그는 우향을 미국으로 유학 보냈다. 1976년 그녀가 병환으로 위중하게 되자 운보는 성북동 한옥을 헐고 미술관 건립을 서둘렀다. 불행히도 미술관이 완공되기도 전에 우향은 세상을 뜨고 말았다. 당시 최신식이었던 이 건물은 그의 조형철학이 깃든 근대건축물로 내부에 매자닌(중2층)이 걸린 독특한 기둥의 건물이다. 운보는 우향을 추모하는 뜻으로 두 사람 호의 첫 자를 따서 '운우미술관'이라 했다. 우향이 떠난 뒤 운보는 이곳에서 1984년까지 홀로 살며 작품 활동을 하다 모친의 고향 청원으로 화실을 옮겼다. 2001년 운명하기까지 50여년 동안 자신의 분신처럼 소중하게 여겼던 이곳은 아들에게 상속되었다가 현재 다른 사람 소유가 되었으나 아직 운보의 뜻대로 운우미술관으로 존속하고 있다.

하지만 이 미술관이 재개발 사업으로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다. 근현대 많은 예술가의 산실이 주민과 시민단체, 정부의 노력으로 보전된 사례가 많은데도 말이다. 누하동 청전 이상범 가옥, 한국 최초 서양화가 고희동의 원서동 집, 장욱진 화백의 용인 마북동 가옥 등은 그 대표적 사례들이다. 운보와 우향의 혼이 깃든 운우미술관도 사라져서는 안 될 소중한 공간이다. 과연 우리는 이 시대의 보물이자 수많은 장애인의 희망이며 여성작가들의 소망인 이곳을 물거품처럼 사라지게 할 것인가?

-조선일보 2011.10.25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1/10/24/201110240229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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