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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의 상상 7 ] 워홀에서 남준으로

진중권


'모니터가 캔버스 대신할 것' 예언 실현시킨 백남준
앤디 워홀의 '복제 이미지' 넘어 '생성 이미지' 도래시켜
예술의 쌍방향성·공감각성 불러온 '미디어아트의 아버지'

백남준 탄생 75주년을 기념하여 경기문화재단에서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다음 달 25일까지 계속되는 이번 전시회에는 관객의 목소리를 이미지로 바꾸어주는 <참여 TV>, 자기장을 이용해 미국 대통령의 얼굴을 일그러뜨리는 <닉슨>, 최초의 로봇 아트로 꼽히는 <로봇 K-456>, 그 밖에 위성중계를 이용한 작품 등 1960~70년대의 작품들이 전시되고 있다고 한다.
백남준은 아직까지도 저평가되어 있다. 아마 ‘테러리스트’ 이미지 때문일 게다. 그는 존 케이지의 넥타이를 자르고, 샬롯 무어먼의 옷을 벗기고, 빌 클린턴 앞에서 바지를 내렸다. 하지만 그를 엽기적 퍼포먼스를 연출하는 플럭서스 멤버로만 규정하면, 그의 가장 본질적 측면을 시야에서 놓치게 된다. 백남준이 일으킨 가장 중요한 ‘사건’은 플럭서스와의 ‘연장선’이 아니라 ‘단절면’에서 일어났다.
백남준은 현대예술에 ‘이미지의 혁명’을 일으켰다. “콜라주가 회화를 대신했듯이 언젠가 음극관이 캔버스를 대신할 것”이라는 그의 예언은 실현되었다. 과거에는 미술관에서 움직이지 않는 액자 속의 그림을 보았다면, 요즘은 미술관에서 모니터 위의 움직이는 그림을 본다. 과거의 화가들이 캔버스 위에 붓으로 그림을 그렸다면, 요즘 작가들은 키보드와 마우스로 모니터 위에 그림을 그린다.
앤디 워홀과 비교해보면 그 변화의 본질이 뚜렷이 드러난다. 가령 워홀의 이미지는 캔버스 위에 붙어 있다. 반면, 백남준의 것은 모니터 위에 붙어 있지 않다. 물질성이 없기에 그의 이미지는 자유로이 변조하고, 이리저리 합성하고, 새로이 생성할 수도 있다. 워홀의 것이 인쇄매체로 만드는 ‘복제’ 이미지라면, 백남준의 것은 전자매체로 만드는 ‘생성’ 이미지다.
워홀은 원작 이미지의 몰락과 복제 이미지의 도래를 예언했다. 실제로 늘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복제하고픈 게 오늘날 대중의 욕망이다. 그 때문에 60년대만 해도 이해받지 못했던 워홀은 어느새 대중의 아이콘이 되었다. 워홀의 이미지는 오늘날 대중들이 대형마트의 진열장 혹은 신문 잡지의 지면에서 늘 보는 것들이기도 하다.
워홀은 “대중이 모두 실크스크린을 하여 그들의 작품이 내 것과 구별되지 않는 날”이 오기를 기대했다. 하지만 그의 기대와 달리 요즘 실크스크린을 하는 대중은 거의 없다. 다루기에 힘들고 비용이 들기 때문이다. 전자매체는 다르다. 물질성이 없기 때문이다. 오늘날 대중은 실크스크린이 아니라 포토샵으로 이미지를 변조하고, 합성하고, 생성하고 있다.
그 일을 백남준은 이미 60년대에 했다. “이제까지 TV는 우리를 공격해 왔다. 이제 우리가 반격할 차례”라고 외치며, 그는 관객이 직접 자석을 움직여 TV 모니터에 간섭무늬를 만들어내는 작품을 내놓았다. 간단한 조작이지만, 이것이 TV 매체의 성격을 완전히 바꾸어 놓는다. 이미지를 받기만 하던 수상기(受像機)가 이미지를 만드는 제상기(製像機)로 변했기 때문이다.
영상의 변조를 위해 백남준은 TV의 다이오드를 거꾸로 결합시키곤 했다. 영상의 합성을 위해 일본인 엔지니어 아베 슈야와 함께 아예 신디사이저를 개발하기도 했다. 이미지의 변조와 합성은 이미 대중의 일상이다. 한 가지 차이가 있다면, 백남준은 그렇게 하기 위해 하드웨어를 디자인해야 했지만, 오늘날의 대중은 같은 일을 간단히 소프트웨어로 한다는 것.
“나를 만지지 말라(noli me tangere).” 부활한 예수는 막달라 마리아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 말이 예전엔 미술관의 상식이었다. 관객은 절대 작품을 만지면 안 된다. 하지만 이제 달라졌다. 미술관에 가면 외려 작품들이 제발 자기를 만져달라고 아우성을 치곤 한다. 이 모든 변화가 백남준에서 시작된 것이다. 이미 쌍방향성을 도입한 <자석 TV>나 <참여 TV>를 생각해 보라.
관객의 목소리를 영상으로 바꿔주는 <참여 TV>의 공감각에는 또 다른 디지털 특성이 있다. 디지털은 모든 것을 0과 1로 환원시킴으로써 아날로그 감각들 사이의 질적 차이를 지운다. 감각의 횡단은 오늘날 디지털 예술의 일상. 요즘 작가들은 종종 그림을 음악으로, 음악을 그림으로 출력한다. 재미있는 것은, 이 모든 작업을 백남준은 아날로그 매체로 했다는 것이다.
TV나 비디오에 머문 채 디지털 매체로 나가지 않은 것이 종종 백남준의 한계로 지적된다. 하지만 디지털로 디지털이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디지털로 이미지를 합성하고, 쌍방향성을 구현하고, 공감각을 연출하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다. 백남준은 그 일을 아날로그 매체로 해냈고, 바로 거기에 포인트가 있다.
퍼포먼스 시절의 장난기는 미디어 아트 시절에도 여전히 살아 있다. 미디어를 조롱하는 그의 광대적 제스처를 ‘테크놀로지에 대한 비판’으로 읽는 상투적 어법을 종종 듣는다. 하지만 기술에 대한 백남준의 태도는 그보다 복잡하다. 어느 비평가의 말대로, “그는 테크놀로지를 사랑했으면서도 그것을 우습게 만들었다. 그럼으로써 그것을 인간화했다.”
흔히 백남준을 ‘비디오아트의 아버지’라 부른다. 하지만 그는 그 이상이었다. 비디오를 넘어 로봇, 레이저, 인공위성 등 다양한 매체로 실험을 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를 ‘미디어 아트의 아버지’라고 부르는 게 온당할 게다. 실제로 미디어 아트의 역사를 다룬 책들은 최근 백남준에 관한 언급으로 시작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물론 그보다 먼저 워홀이 비디오를 사용했고, 그에 앞서 포스텔이 TV모니터를 설치했다. 퍼포먼스 위성중계 역시 백남준이 처음 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누구도 백남준처럼 미디어 자체를 주제로 삼아 철저하고 일관되게 미디어를 사용하지는 않았다. 그런 의미에서 ‘미디어 아트의 아버지’는 역시 백남준이다.
20세기 전반은 피카소, 20세기 후반은 워홀, 그리고 20세기 전체를 뒤샹의 시대라 부른다면, 다가오는 21세기는 백남준의 시대가 될 것이다. 대중은 카메라로 이미지를 복제하는 수준을 넘어, 컴퓨터로 이미지를 변조, 합성, 생성하고, 나아가 UCC라는 이름의 동영상을 만들고 있다. 어떤 의미에서 디지털의 대중은 모두 백남준의 후예다.
■ TV 이용해 TV의 한계 탈출 백남준의'마술같은 사기'
예술은 사기다?
'예술은 사기'라는 그의 말은 진지하게 받아들여져야 한다. 맥락을 보니, 마르세 뒤샹을 염두에 둔 발언이다.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뒤샹은 소변기를 미술관에 가져와 작품으로 둔갑시켜 버렸다. 오늘날 그의 소변기는 미술관에서 가장 좋아하는 소장품이다. 어떤 의미에서 이는 '사기'라 할 수 있다.
'기계'를 의미하는 그리스 단어 메코스(mechos)는 트로이 목마처럼 속임수를 목적으로 하는 장치를 의미한다. 아니, 기계(mechanic) 자체가 어쩌면 자연을 속이는 '사기'일지 모른다. 가령 인간은 날 수 없으나 기계를 타고 날아다닌다. 자연에 충실하면서 그것의 법칙(베르누이 정리)을 이용해 (인간은 날 수 없다는) 자연의 한계를 넘어선 것이다.
백남준의 '사기'도 비슷하다. 기계를 사용하는 인간은 기계가 허용하는 것만을 할 수 있다. 하지만 백남준은 TV가 허용하는 것만 하면서도 그 한계의 밖으로 나가, TV를 더 이상 TV가 아닌 것으로 만들어 버렸다. 자석을 이용한 간단한 속임수로 TV의 뒤통수를 쳐서 수상기를 제상기로 둔갑시킨 것이다.
매체 안에 머물면서 동시에 매체 밖으로 나가는 것. 이는 탈출의 마술과 비슷하다. 출구 없는 공간에 갇혀 있던 마술사가 밖에서 나타난다. 우리는 이게 속임수임을 안다. 마법사는 물리적으로 가능한 방법을 이용해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을 한다. 백남준의 '사기'는 이 마술을 닮았다.
'올드 미디어의 아방가르드는 뉴미디어의 선구자'라는 말이 있다. 백남준은 TV라는 올드 미디어에 머물면서도 동시에 그것을 이용해 바깥으로 빠져나갔다. 그는 아날로그 장치에 머물면서 동시에 그것으로 디지털의 효과를 구현했고, 그로써 앞으로 도래할 새로운 테크놀로지의 시대를 예견했다. 이것이 백남준의 '사기'다.
/진중권 (문화평론가ㆍ중앙대겸임교수)
-중앙일보 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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