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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의 상상 8] 호모 사피엔스에서 트랜스휴먼으로

진중권



테크놀로지, 신을 대신해 영생을 약속하다?
IT, BT, NT로 인간 한계 넘어서는 '트랜스휴먼'
반대론자들은 '인간 존엄성 흔들어 놓을 것' 우려

“최근 생명공학, 유전공학, 줄기세포, 복제기술, 분자-나노기술을 활용해 인간의 노화를 방지하고 인간의 지적, 육체적, 심리적 능력을 증진시켜 인간능력을 진화시킨다는 트랜스휴먼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날로 증가하고 있다.” 작년에 김우식 과학기술부총리가 어느 신문에 서 한 말이다. 한국에서도 ‘트랜스휴먼’은 이미 공상이 아니라 정책이다.
‘트랜스휴먼’이라는 말은 1957년에 생물학자 줄리안 헉슬리(<멋진 신세계>의 저자 올더스 헉슬리의 친형)가 제일 먼저 사용했다. 하지만 그 표현이 오늘날처럼 ‘테크놀로지를 통해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존재’라는 뜻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에 이르러서다. ‘트랜스휴먼’을 이해하려면 먼저 ‘포스트휴먼’의 개념을 알아야 한다.
몇몇 과학자들에 따르면, 인간이 영생을 얻을 날이 멀지 않았다. 이미 2003년에 인간 게놈(genome) 지도가 완성됐다. 인공장기와 이식수술도 날로 발전하고 있다. 심지어 뇌의 기억을 다운로드 받아 다른 신체에 저장할 가능성까지 얘기되는 상황. 인간이 노화된 기관을 교체하거나 뇌 속의 기억을 새 신체에 다운로드 해가며 영원히 산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 전통적인 의미의 인간(human)이 사라질 것이다. 죽지 않는 인간은 더 이상 인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인공진화를 통해 탄생한 인간 아닌 인간, 이 새로운 종(種)이 바로 ‘포스트휴먼’이다. 포스트휴먼은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트랜스휴먼 아티스트 나타샤 비타-모어의 <프리모>(2005)는 이 포스트휴먼의 가설적 모델을 보여 준다. 두뇌는 나노테크를 이용한 데이터 저장 시스템으로 되어 있고, 눈에는 네트워크 소나 센서를 이용해 맵 데이터가 투영된다. 다리는 터보 엔진으로 유연성을 극대화하고, 태양광으로부터 안전한 피부는 언제라도 색깔과 질감을 바꿀 수 있다.
그녀의 설명에 따르면, 20세기 신체의 두뇌는 1조 개의 시냅스로 이루어지나, 프리모의 두뇌는 1,000조 개의 시냅스로 이루어져 있다. 자연적 신체는 기관이 닳아서 노화하나, 프리모의 그것은 업그레이드가 가능하다. 자연적 신체는 수명이 제한되어 있으나, 21세기의 프리모는 나이를 먹지 않는다. 심지어 성(性)도 마음대로 교체할 수 있다.
이 공상과학 같은 얘기를 눈앞에 닥친 현실로 보는 사람도 있다. 가령 프랑스의 미래학자 도미니크 바뱅은 현생인류가 포스트휴먼의 1세대라며, 곧 영생을 얻을 터이니 향후 20~30년 동안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죽지 말라고 권한다. 작년에 한국에 왔던 미래학자 호세 코르데이로 역시 “10년 안에 모든 장기를 교체할 수 있게 될 것”이라며,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 영생에 도달할 것이라고 말한다.
‘포스트휴먼’은 인공진화의 최종목표다. ‘트랜스휴먼’은 그리로 나아가고 있는 과도기적 존재를 가리킨다. 한 마디로 트랜스휴먼은 IT, BT, NT와 같은 테크놀로지를 통해 신체의 결함을 극복하고 신체의 기능을 극대화하는 존재다. 이렇게 테크놀로지를 이용해 인간의 자연적 한계를 초극하는 트랜스휴먼이 되는 데에는 크게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미디어는 인간의 확장”이라는 마셜 맥루언의 말대로 기계장치를 이용해 인간의 신체적, 정신적 능력을 향상시키는 방법이다. 애니메이션 혹은 컴퓨터게임에나 나올 법한 사이보그가 오늘날 현실이 되고 있다. 일례로 미 국방성은 2003년 화학공격을 견뎌내고 빌딩을 건너 뛸 수 있는 ‘슈퍼 솔저 프로젝트’를 공개했다.
다른 하나는 유전자 조작으로 신인류를 창조하는 것이다. 일례로 몇 년 전 한국을 방문한 철학자 페터 슬로터다이크는 <인간 농장을 위한 규칙>이라는 책에서 이렇게 물었다. “미래의 인간공학은 형질설계로까지 나아갈 것인가? 인류가 종 전체에 걸쳐 탄생운명론에서 선택적 탄생 및 탄생 이전의 선택으로 방향 전환을 실행할 수 있을까?”
미국에서는 이런 주장을 하는 트랜스휴머니스트를 흔히 볼 수 있지만, 독일은 미국과 사정이 달라 이런 물음을 던지는 것 자체가 벌써 터부다. 아니나 다를까, 독일의 언론은 일제히 이를 ‘짜라투스트라 기획’이라고 비난하고 나섰다. 독일인의 머리에는 과거 나치 정권에서 행했던 우생학 실험의 기억이 아직 생생하게 살아 있기 때문이다.
트랜스휴머니스트들은 유전자 조작으로 탄생할 신인류가 현생 인류보다 지능과 외모만 뛰어난 게 아니라, 덕성도 뛰어나다고 주장한다. 한 마디로 트랜스휴먼이 고전적 휴머니즘에서 말하는 ‘휴머니티’를 뛰어넘어 이른바 ‘트랜스휴머니티’라는 더 고차원적인 도덕을 갖게 될 거라는 것이다. 이 얼마나 멋진 신세계인가?
하지만 반대자들은 트랜스휴먼의 미래를 디스토피아로 바라본다. 형질설계에 드는 비용을 댈 수 없는 경제적 약자들이 유전적 약자로 전락하고, 인간 사회가 과거 네안데르탈인과 호모 사피엔스가 공존하던 시절처럼 두 개의 종으로 분리되며, 궁극적으로는 우월한 트랜스휴먼이 열등한 휴먼을 절멸시키게 되리라는 것이다.
반대자들은 트랜스휴먼이 신을 모독하는 바벨의 프로젝트로 인간의 존엄성과 도덕성의 근거를 흔들어 놓을 거라고 비난한다. 반면, 트랜스휴머니스트들은 인간이 트랜스휴먼으로 진화하기를 거부하는 것은 마치 청학동 사람들처럼 문명을 거부하는 천진한 태도이며, 과거 산업혁명기의 기계파괴운동처럼 가망 없는 몸짓에 불과하다고 비웃는다.
이미 인간은 유전자 조작으로 생쥐의 수명을 2년에서 5년으로 늘리는 데 성공했다. 인간의 수명을 늘리는 것도 시간문제로 보인다. 이미 인간은 진화론 이후의 시대로 진입했다. 인간이 생사를 주관하는 신의 영역을 침범하는 순간, 제일 먼저 종교가 사라질 것이다. 이제 종교를 대신하여 부활과 영생을 약속하는 것은 테크놀로지다.
최초의 트랜스휴먼 철학자 에스판디아리는 FM-2030이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2030년을 아예 필명으로 삼은 것은, 자신이 100세가 되는 그 해에 “인간이 나이를 먹지 않고 모두 영원히 사는” “마술적 시대”가 열리리라 확신했기 때문이다. 불행히도 그는 2000년에 사망하고 말았는데, 지금 저온 보존 장치에서 냉동된 채 부활의 그날을 기다리고 있다.
● 똑똑해진 기계… 인간의 친구? 적?
“신체는 고루하다.” 신체를 이용한 행위예술로 악명이 높은 스텔락의 홈페이지는 이런 도발적 구호로 방문객을 맞는다. 놀라운 속도로 발전하는 테크놀로지에 비하면, 인간의 신체가 진화하는 속도는 느리기 짝이 없다. 스텔락은 점점 벌어지는 이 격차를 메우기 위해 기계를 이식하여 신체를 인공적으로 진화시킨다.
팔뚝에 칩을 이식하고, 팔목에 기계장치를 장착하고, 여섯 개의 다리가 달린 기계를 타고 이동하고, 피부를 낚시 바늘로 꿰어 공중에 매단 뒤, 네티즌들의 원격조종으로 자신의 신체를 움직이게 하더니, 최근에는 BT로 관심을 돌려 제 팔뚝에 귀를 이식하는 파격적인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그의 비전은 온통 장밋빛 낙관으로 가득 차 있다. 그 동안 인간은 주어진 신체의 한계에 갇혀 살았으나, 이제 자기의 신체를 제 마음대로 디자인해 쓰는 창조적 시대가 열렸다는 것이다. 그의 말이 맞는다면, 언젠가 ‘초인의 시대’가 올 것이라고 했던 니체의 예언을 테크놀로지가 현실로 바꿔주고 있는 셈이다.
<헥사포드>를 타고 돌아다니는 스텔락의 모습은 영화 <스파이더맨>에 나오는 닥터 옥토푸스를 연상시킨다. 그 역시 스텔락처럼 신체에 기계를 장착하여 슈퍼맨이 되려고 했으나, 결과는 치명적이었다. 목 뒤에 붙은 칩이 말썽을 일으켜, 기계가 인간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떤 트랜스휴머니스트는 30년 후면 인공지능의 발전이 ‘특이점’(singularity)에 도달할 것이라 예상한다. 기계의 지능이 인간의 두뇌를 넘어서는 특이점에 도달한다면, 인간보다 똑똑해진 기계가 과연 인간이라는 열등한 존재를 어떻게 대접해 줄지 궁금하다. 그때에도 기계는 여전히 ‘인간의 확장’일까? 아니면 이미 인간의 절멸자(terminator)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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