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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시장 뜯어보기 <5> 작가는 같은데 가격은 다른 이유

편집부

세잔·폴록 등의 그림은 초기보다 후기作이 더 비싸
“나는 이제야 나의 목표와 이에 이르는 방법을 보다 분명하게 알게 됐다.”
화가 폴 세잔이 말년에 그의 동료 화가이자 친구인 에밀 베르나르드에게 쓴 편지 내용 중 일부다. 인상주의와 거리를 두기 시작한 이후 수많은 시행 착오 끝에 이룩해 낸 성과다. 입체파를 포함해 이후 전개되는 현대 미술사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 그의 작품이 마침내 탄생한 것이다.
미술시장에서 빠지기 쉬운 함정 가운데 하나가 동일 작가의 작품별 가격 차이를 쉽게 무시해버리는 것이다. 작품은 보지도 않은 채 작가의 인지도만 믿고 작품을 구입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그러나 세잔의 미술사적, 미술시장적 지위가 말년에 비로소 완성된 그의 작품에 의한 것이듯, 미술시장의 인정은 작가의 특정 작품에 대한 것이지, 특정 작가의 전체 작품에 대한 것이 아니다. 그래서 같은 작가의 작품이라 할지라도 작품 가격은 크게 차이가 난다.

잭슨 폴록의‘화이트 앤젤(The White Angel·1946년작·왼쪽)’은 2006년에 214만4000달러에 팔렸지만, 폴록의 대표적 스타일인‘12번(Number12·1949년작·오른쪽)’은 2004년 1165만5500달러에 팔렸다.
작품 가격에 차이를 만드는 가장 큰 요인은 작품의 대표성 여부다. 작가의 대표작인지 여부, 즉 특정 작가가 이룩한 고유한 화풍을 어느 정도 담고 있는지가 관건이다. 입체파 화가라면 입체파적 요소를 담고 있어야 하고, 인상주의 작가라면 인상주의적 요소를 갖고 있어야 한다.
작가의 일생 작품 가운데 무엇이 대표작인지에 대해 시카고대 경제학 교수 데이비드 갈렌슨은 보다 일반적인 설명을 시도한다. 그에 따르면 작가들의 작품 제작 방식은 크게 개념적인(연역적인) 방식과 실험적인(귀납적인) 방식으로 나뉜다. 그림을 그리는 과정을 계획(planning)과 실행(working), 그리고 마침(stopping)으로 구분할 때 개념적 작가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계획과정이고, 실험적 작가들에게 중요한 것은 실행과정이다. 개념적 작가들은 계획 단계에서 이미 자신의 작업활동에 대한 분명한 비전과 목표를 갖고 있는 반면 실험적 작가들은 그림을 그리다가(실행) 이 과정에서 드러난 이미지를 검토하고, 이를 반복한다. 그래서 개념적 작가들은 자신의 활동이 언제 끝나는지 분명하게 알지만 실험적 작가들은 자신들의 작업이 언제 끝나는지 알지 못한다.
이에 따라 실험적 작가들에 있어 훌륭한 작품은 오랜 기간의 시행 착오 끝에 주로 말년에 등장하는 반면, 개념주의적 미술가들의 대표작은 초기에 나오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실험적 방식의 미술가들의 경우 후기 작품이 초기 작품에 비해 더 비싼 반면 개념적 방식의 작가 작품은 초창기 작품이 후기 작품보다 비싼 경우가 일반적이란 것이다. 피카소, 마르셀 뒤샹, 로버트 라우센버그, 앤디 워홀, 솔 르윗 등은 개념적인 미술가에 해당되고, 세잔, 칸딘스키, 마크 로스코, 잭슨 폴록 등은 실험적 미술가에 속한다.
실제로 개념주의 작가로 구분된 라우센버그(83)의 경우 미술시장에서 높게 거래되는 작품 대부분은 작품 활동 초기인 1950년대와 1960년대 것들인 반면 실험적 작가 세잔(1839~1906)은 1890년 이후의 말년 작품이 고가에 거래되고 있다. 로스코(1903~1970) 역시 색면 추상이 본격화된 1950년 이후 작품이 이전 작품보다 훨씬 더 비싸고 잭슨 폴록(1912~1956)도 드로핑(바닥에 캔버스를 놓고 물감 떨구기) 작업이 나타나는 1948년을 기점으로 이후 작품이 이전보다 높은 가격에 거래되고 있다.
물론 이러한 식의 구분을 지나치게 일반화해서 적용하면 많은 위험이 따른다. 이러한 식의 구분으로 설명되지 않는 작가들이 있다. 카미유 피사로나 게르하르트 리히터 등 중간에 작품 제작 방식이 크게 바뀌거나 원래 다양한 화풍을 갖고 있는 작가들이 대표적이다. 또, 작가의 대표적 시기에 제작된 작품들 가운데서도 작품의 소재, 구도, 색감 등에 따라 적지 않은 가격 차이가 난다. 워홀의 같은 60년대 작품들 가운데서도 다른 이미지보다 팝아트의 이념을 가장 잘 보여주는 마릴린 먼로 작품의 인기가 가장 높은 식이다.
개별 작품이 갖고 있는 히스토리도 무시돼선 안 된다. 유명한 미술관이나 화랑에서 전시 경력을 갖고 있다거나 유명 컬렉터가 소장한 적이 있다는 사실은 중요하다. 미술 관련 서적에 인용된 적이 있는 작품인지 여부도 중요하다.
컬렉터들은 작가의 대표적 시기가 언제인지, 그리고 대표적 시기 작품들 가운데서도 작품의 질적 차이를 만들어 내는 변수는 무엇인지, 작품의 출처는 어떻게 되는지 등을 꼼꼼하게 살펴봐야 할 것이다. 나아가 지금 시장에 형성돼 있는 작품의 가격 결정 요인들이 과연 정당한가에 대해 스스로 연구하는 자세도 중요하다. 시장에선 A라는 작가의 작품 B가 작품 C보다 더 비싸게 거래되지만, 이에 대한 근거는 매우 취약할 수 있다. 컬렉터 스스로 작품 가격 결정 요인들에 대해 공부하고 스스로 판단할 수 있을 때 컬렉션은 보다 세련되게 지속될 것이다.
-최윤석 서울옥션 기획마케팅팀 과장/ 조선일보 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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