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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의 상상 11] 화려한 휴가

진중권


일해공원, 끝나지 않은 '화려한 휴가'
지자체 차원에서 내란의 수괴 '공적으로' 기념
'우리가 남이가' 출세한 고향사람의 허물 덮어
정치권의 지역감정 조장·최근의 보수화 경향 탓

경남 합천에 ‘일해공원’이라는 이름의 공원이 있다. 최근 영화 <화려한 휴가>의 개봉과 함께 이 명칭이 논란이 되는 모양이다. 그 지역의 시민단체는 그 공원 안에서 합천 군민들과 함께 <화려한 휴가>를 보는 행사를 추진하고 있단다.
어느 나라나 제 분량의 돌 머리를 갖고 있기 마련이다. 독일에 히틀러를 찬양하는 네오나치가 있다면, 한국에는 전두환을 사랑한다는, 자갈로도 쓰지 못할 구제불능의 돌멩이가 인터넷에 약 1만 4,000개나 널려 있다.
일해공원 사태는 이와는 차원이 다르다. 그것은 개인적 차원에서 몰취미를 ‘사적으로’ 드러내는 게 아니라, 지자체 차원에서 내란의 수괴를 ‘공적으로’ 기리는 일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21세기에 학살자를 기념하는 야만이 가능할까?
의료보험의 혜택도 못 받는 이 사회적 정신질환에는 크게 두 가지 요인이 작용한 듯하다. 하나는 '한국' 사람들에게서 흔히 나타나는 전국적 요인이고, 다른 하나는 ‘지역’ 사람들에게 주로 나타나는 향토적 요인이다.
전자는 출세한 사람이라면 수단의 정당성을 굳이 묻지 않는 태도를 말한다. 아무리 전두환이 학살자라고 하나, 그는 명색이 일국의 대통령이었다, 대통령을 지낸 이라면 경위야 어찌 됐든 충분히 기념할 만하다는 발상이다.
후자는 고향 사람이라면 ‘우리가 남이가’ 하면서 허물을 덮어주는 태도를 가리킨다. 아무리 전두환이 전국적으로 욕을 먹어도, 적어도 고향 사람들만은 타지인들의 부당한(?) 비난에서 그를 옹호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두 가지 사고방식이 하나로 합류하여 극단에 도달한 지점에서 탄생한 것이 바로 일해공원의 해프닝. 동료 시민을 학살한 자의 이름을 기리는 이 정치적 사디즘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기념’한다는 것은 과거의 기억을 현재에 되살려 후세에게 전해준다는 의미다.
오늘날 공식적 기억 속에 전두환의 12ㆍ12 쿠데타는 내란으로, 5ㆍ18 시민항쟁은 민주화운동으로 기입되어 있다. 합천군에서는 후세들에게 다른 기억을 물려줄 모양이다.
집권을 위해 내란을 일으키고, 동료 시민에게 발포를 하고, 집권 중에는 거액을 갈취하다가, 퇴임 후에는 “단돈 29만원”으로 호화생활을 하는 것. 이것이 앞으로 합천군에서 태어나는 아이들의 모범적 인간상이자 이상이다.
합천 사람들 모두가 일해공원이라는 명칭에 찬성하는 것은 아니리라. 하지만 합천군에서 이런 야만을 버젓이 저질러도 된다고 보는 것은, 자기 지역에는 상당 정도 이를 뒷받침하는 지역정서가 있다고 굳게 믿기 때문일 게다.
수백 명의 무고한 시민의 목숨을 앗아간 내란의 수괴를 공적으로 기념하는 것은, 한 마디로 군 차원에서 대한민국 전체를 향해 “우리 합천군민은 인간이기를 포기합니다”라고 공식적으로 선언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합천군의 정신상태가 이 지경으로 망가진 데는 정치권의 탓이 크다. 물론 정치권에서 공개적으로 지역감정 조장하는 일은 많이 사라졌지만, 아직도 그 행태가 은밀히 계속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게 바로 일해공원 사태다.
전두환의 복권 움직임은 최근의 보수화 경향과 관련이 있다. 비록 완성된 것은 아닐지라도 한국 사회는 이미 상당한 수준의 민주화를 이루었다. 민주화는 더 이상 삶의 절실한 욕구가 아닌 빛 바랜 과거의 구호가 되었다.
게다가 ‘민주화’ 세력을 자처하는 정권들에게 시민들은 이미 식상함을 느끼고 있다. 그러다보니 한나라당의 영향을 받는 일부 지역에서 정권에 대한 반감을 넘어 아예 민주화의 기억 자체를 지우려는 대담한 시도까지 하는 것이다.
한편, 이른바 민주화 세력 역시 광주를 사유화함으로써 그것을 모두가 공유하는 공적 기억으로 만드는 것을 방해한다. “광주를 털고 가자”는 손학규 전 지사의 발언을 둘러싼 논란은 광주의 기억이 정쟁의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합천군은 일해거사를 기림으로써 대한민국의 공식 기억을 다른 지역과 공유하기를 거부했다. 이는 일본이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함으로써 식민통치와 침략전쟁의 기억을 이웃 나라들과 공유하기를 거부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기억의 공유는 더불어 살기 위한 전제조건이다. 우리가 일본에게 기억의 공유를 주장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반면 일본이 기억의 공유를 거부하는 것은 미국만 있으면 아시아에서 혼자 살아갈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일본이 미국 의회에서 위안부 결의안이 채택되는 것을 필사적으로 저지하려 한 것은 그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의 의회는 일본에게 이웃나라와 기억을 공유하라는 사인을 보냈다. 이는 우리가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지 보여준다.
공원에 이름을 붙이는 것은 물론 표현의 자유라고 강변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다른 지역의 지자체가 경남 의령에서 하룻밤에 수십 명의 무고한 인명을 희생시킨 ‘우순경’을 기린다고 해 보라. 기분이 어떻겠는가?
게다가 일해라는 이름의 사내는 법정에서 내란의 수괴로 인정됐다. 공원에 헌정을 파괴한 내란의 수괴의 이름을 갖다 붙이는 것은 표현의 자유를 넘어선 것이다. 한 마디로 그것은 헌법에 도전하는 행위다.
‘화려한 휴가’는 끝나지 않은 모양이다. 1980년의 화려한 휴가가 광주 시민의 육체를 학살했다면, 2007년 합천군의 화려한 휴가는 그것도 모자라 그때 죽은 영혼들의 머리에 총구를 대고 확인사살까지 한다. 당신들도 인간인가?

■ 문화적 기억
독재자에 대한 기억 고치려…대한민국 정체성 부정 행위
생물은 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데 기억을 사용한다. 기억은 생명체가 살아가면서 습득한 경험을 자신의 내부에 저장한 정보를 말한다. 이 정보가 많을수록, 그리고 올바를수록 생명체는 환경에 성공적으로 적응한다.
생물이 기억을 통해 자신을 유지해 나가듯이, 사회 역시 기억을 통해 제 정체성을 유지한다. 한 사회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이 집단적 기억을 독일의 역사학자 얀 아스만은 '문화적 기억'이라 부른다.
모든 사회는 자신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기억의 제도를 갖고 있다. 가령 우리의 헌법에는 3ㆍ1운동과 4ㆍ19 혁명이 국가의 정체성을 이루는 기억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것이 대한민국의 '문화적 기억'이다.
기억은 시간이 지날수록 잊혀진다. 공동체가 자신을 유지하려면 이 망각과 싸워야 한다. 사회는 기념일과 기념식이라는 시간적 매체, 기념비와 기념물이라는 공간적 매체로 문화적 기억을 영속화하려 한다.
새로 태어나는 세대에게는 과거의 기억이 없다. 사회는 기념식과 같은 퍼포먼스, 기념관과 같은 건축물 등을 이용해 이들의 눈앞에 과거를 생생히 데려다 놓으려 한다. 물론 자신의 기억을 후세에 계속 전달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한 사회의 집단적 정체성을 놓고 성원들 간에 늘 견해가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이들은 자신이 속한 사회의 정체성을 바꾸고 싶어 한다. 그리하여 기억은 늘 정치적 투쟁의 대상이 되곤 한다.
사회의 정체성을 바꾸고 싶은 이들은 현재 공유되는 집단의 기억을 뜯어고치려 한다. 그릇된 기억이 올바르게 고쳐지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가끔은 올바른 기억을 그릇되게 고치려는 뒤집어진 시도도 있다.
후자를 역사학에서는 흔히 '수정주의'라 부른다. 가령 독일의 수정주의는 아우슈비츠의 기억을 지우려 하고, 일본의 수정주의는 위안부와 남경학살의 기억을 지우려 하고, 한국의 수정주의는 6ㆍ25가 남침이라는 기억을 수정하려 한다.
우리 사회에서 이 싸움은 종종 동상이라는 구체적인 물건을 둘러싸고 일어나곤 한다. 몇 년 전 구로동의 박정희 흉상, 인천 자유공원의 맥아더 동상을 둘러싸고 일어난 사회적 갈등은 결국 집단의 기억을 보존하거나 수정하기 위한 싸움이라 볼 수 있다.
합천군의 '일해공원' 역시 기억의 싸움이다. 합천군은 공원에 전두환의 이름을 붙임으로써 이 독재자에 대한 사회적 기억을 뜯어고치려 한다. 이는 물론 나라의 정체성을 수정하려는 시도로 봐야 한다.
한 마디로, 헌법에 기록된 3ㆍ1운동과 4ㆍ19의 기억을 합천군에서는 5ㆍ16과 12ㆍ12의 기억으로 고쳐 놓고 싶은 것이다. 이는 물론 3공과 5공으로 돌아가고픈 그들의 시대착오적 욕망에서 나온 제스처다.
- 진중권 문화평론가ㆍ중앙대 겸임교수/ 한국일보 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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