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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형의 ‘큐레이터 따라하기’] ⑥ 예술과 폭력의 상관관계

이대형


빛 보다 빠른 놈이 나타났다. 상식을 뛰어 넘는 속도로 사람들을 오염시키고 있다. 빛처럼 눈에 보이지도 않는다. 영화·게임·뉴스·사진·언어를 통해 전세계로 퍼져나가는 전염성도 강하다. 얼마전 미국에서 일어난 황당한 사건은 녀석의 노골성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턱수염도 없다. 심지어 여드름도 없다. 복면을 쓰지 않는 대범함까지 보였다. 미리 계획해서였는지 총을 겨누면서도 떨림이 없었다. 확인 사살 차원에서 2발을 쏘는 잔인함까지 보이며, 아무 원한 관계도 없는 세입자까지 죽였다. 2008년 11월 8일 미국 아리조나에서 아버지를 총으로 쏴 죽이는 사건이 있었다. 엉덩이를 맞은 치욕에 대한 복수라고 하기에는 도를 지나친 비극이었다. 범인은 한창 뛰어 놀며 학교 숙제하기 바쁜 여덟 살 꼬마였다. 이 어린 일급살인범은 사건의 가해자인가, 아니면 오염된 사회의 피해자인가.
스타워즈, 매트릭스, 반지의 제왕, 괴물…. 흥행에 성공한 이들 영화는 소위 말하는 대박난 블록버스터 영화다. 이들 흥행작에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폭력을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칼과 총으로 서로를 죽이려는 싸움, 국가의 권력이 한 개인에게 가하는 보이지 않는 억압, 중간계를 놓고 벌이는 혈전, 제국의 확장을 위한 정치적 모략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폭력의 수위를 보여준다. 얼마나 재미있었는지 아직도 번쩍이는 칼 싸움 장면을 흉내내고, 총알을 피하는 ‘블릿타임’을 허리를 꺾어 가며 연습하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다. 남녀노소 가리지 않는 열광이다. 폭력미학이라는 말이 괜히 생긴 것이 아니다.
현대문화에서 폭력은 이제 피할 수 없는 담론의 대상이 되있다. 물리적인 힘을 동원해 타인을 위해하는 일체의 행위만이 폭력이 아니다. 폭력은 힘의 불균형이 일어나는 곳 어디에서든 지체없이 자행되는 보이지 않는 힘이다. 국가와 국가, 국가와 개인, 기업과 기업, 남자와 여자, 상사와 부하, 자본과 이념 등 힘의 불균형이 일어날 수 있는 모든 관계에 폭력이 기생한다. 없는자가 결핍을 채우기 위해 투쟁한다면, 더 가진자는 그 권력을 더 오랫동안 유지하고 싶어서 폭력을 행사한다. 가해자는 폭력을 감추고 빨리 잊고 싶어하는지만 피해자는 지워지지 않는 고통이 되는 경우가 많다.
찰나에 일어나는 폭력을 가장 잘 포획하는 수단이 예술이다. 1814년 프란시스코 고야가 그린 ‘1808년 5월 3일’은 나폴레옹 군대에 대항한 스페인의 저항과 학살 그리고 전쟁의 공포를 잘 담아내고 있다. 시대가 변했어도 스페인과 프랑스, 심지어 전세계가 기억하는 아픔이며 반성이다.
팔다리가 잘리고 사망한 이라크 사람들의 사진을 미국의 가정집과 교회, 슈퍼마켓, 교회, 주차장 등에 프로젝터로 쏘아 작업하는 작가 쟝 크리스티안 부르카 역시 전쟁의 상처를 획기적으로 표현해낸 작가다. 적군이라는 이유로 이라크의 희생자에 애써 무관심을 보이는 미국인들에게 폭력의 이중성을 고발하고 있다. 무관심이 또 다른 상처와 폭력을 부를 수 있다는 경고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작가는 온라인 웹상을 무의미하게 귀신처럼 떠돌아 다니는 이미지를 모아서 다시 가공하고 수정하고 프린트하고 다시 촬영해 실제 공간에 프로젝트로 쏜다. 이를 통해 이라크의 상처 받은 영혼들에게는 안식을 제공하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무관심한 척 하는 사람들을 부끄럽게 만들고 있다.
폭력을 아이들의 놀이처럼 구성하는 작가들이 있다. ‘최후의 반란’ 시리즈로 주목받고 있는 모스크바의 아티스트 그룹 AES+F(Tatiana Arzamasova, Lev Evzovitch, Evgeny Svyatsky+Vladimir Fridkes)가 주인공이다. 현대 시각문화의 이미지 과잉이 과장되고, 표현적이고, 데카당트한 표현이 넘쳐났던 바로크 시대와 닮아서 일까. AES+F는 바로크 회화의 도상에 게임을 비롯한 가상 공간의 껍질을 입히길 좋아한다. 매혹적으로 연출해야 하지만 지나치면 매너리즘처럼 추해진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작가들이다. 작품은 그야말로 파격이다. 깨끗하게 차려 입은 소년 소녀들이 등장한다. 백인 소년이 결박되어 무릅을 꿇고 있고, 그의 머리를 움켜쥐고 알루미늄 야구 방망이로 위협하는 중국계 소녀, 일본도를 가지고 위협하는 흑인 커플, 중세시대의 검을 들고 역시 위협하는 터키계의 소년, 이에 동조하는 어린 백인 소녀에 이르기까지 AES+F의 작업은 소년·소녀의 손을 빌려 다문화 속에 숨겨진 폭력을 노골적으로 보여준다. 이는 현대 유럽의 모습을 상징한다. 과연 다문화가 하나의 공간안에서 공생할 수 있을까. 유럽의 아이덴터티는 무엇인가. 처음부터 불가능한 유토피아를 꿈꿨던 것은 아닌가. AES+F는 현대사회를 비판하며 동시에 그 시각 이미지를 경배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만들어 내는 유토피아는 도다를 수 없기에 비극적일 수 밖에 없다.
당신은 폭력과 예술중 누구와 더 친한가. 사람들은 당연히 예술을 더 좋아하고 폭력을 멀리한다고 말한다. 과연 그럴까. 질문을 달리해, 남보다 더 소유하고 싶은 욕망이 강한가, 아니면 남들과 당신이 가진 것을 나누고 싶은 욕망이 강한가. 고민해 볼 것도 없다. 9시 뉴스를 딱 5분만 보고 있어도 알 수 있는 쉬운 답이다. 사람들은 더 가지고 싶어 경쟁한다. 폭력은 가진자와 그렇지 못한자가 있는 한 계속해서 찾아 올 것이다. 폭력의 미학에 취해 그 진짜 얼굴을 보지 못하는 순진함만은 피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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