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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석원 / 자연의 내재율을 쌓다

이선영

자연의 내재율을 쌓다


이선영(미술평론가)


[accumulation-일련번호]로 붙여진 박석원의 시리즈 작품은 캔버스 위에 한지를 붙인 평면 으로, 그의 주요 조각 작품들처럼 ‘쌓는다’는 개념이 깔려 있다. 평면작업에서 쌓기는 우선 캔버스 위에 종이를 (붙여서)쌓는다는 물리적인 의미가 있고, 붙여진 종이들끼리도 쌓기라는 관계를 가진다. 수평선을 떠올리는 평행 방향의 배열을 포함해서, 여러 조합의 구성이 있다. 그의 평면 작업은 수직적으로 수평적으로 쌓이는 것이다. 박석원의 ‘쌓기’는 회화보다 더 중력의 지배를 받는 조각 작업에서 먼저 시작됐지만, 3차원과 2차원 간의 연동은 절묘하다. 같은 양식의 제목은 양자의 연속성을 암시한다. 고양시 외곽의 작업실에는 색색의 한지들이 쌓여있다. 그의 작업에 쌓기라는 개념이 있기에 더욱 그렇지만, 잘 생산된 제품은 있는 그대로의 자연처럼 그자체로 감탄할 만한 부분이 있다. 따지 않은 한 통의 물감 그대로가 좋다고 한 개념미술가도 있지 않나. 








데이트갤러리 전시전경(이하 모든 사진 출전은 데이트 갤러리)



그래서 그 미술가는 작업 대신에 이런저런 미학적 언명, 즉 개념 그 자체를 작품으로 제시한다. 하지만 작가란 주어진 것 이상의 무엇을 해내야 하는 이다. 대화 내내 작업, 노동 등을 자주 말하고 강조했던 박석원에게 물질적 재료와 맞부딪혀 행위하는 몸은 관념보다 더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평면 작품의 경우 캔버스라는 바탕 면은 거의 고정되어 있기에, 어떤 색의 한지를 쓰는가에 따라 작품의 전체적 색감이 달라진다. 캔버스의 색과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 한지부터 진한 색까지 캔버스에 추가되는 종이는 물감인 셈이다. 인사동 등에서 구입하는 수제한지는 공산품으로 나오는 것이 아니며 손수 찢는 작업이기에 완전한 반복은 없다. 한 작품에 한색의 한지만 쓰고 여기에 미세하게 가필을 한 화면은 전체적으로 모노크롬 분위기다. 한지를 붙인 화면에 보이는 듯 보이지 않는 듯 가늘게 첨가한 선들은 자연의 내재율을 떠올린다. 가는 선들은 여러 진폭을 가지는 띠로 이루어진 화면에 추가된다. 


그가 쓰는 전형적인 조각적 재료에 비해 얇고 가볍고 부드러운 이 재료를 강화하기 위해 가는 철선이나 실로 보충한 듯한 효과다. 찢어내어 가장자리가 자연스럽게 풀린 한지를 캔버스에 완전히 밀착시키기 때문에, 그의 ‘물감’은 두텁지 않다. 붙인 한지 사이사이로 화면에 날 것으로 드러나는 캔버스는 그의 3차원 작품처럼 자연을 품는다. 그것들은 숨구멍같은, 바람길 같은 여백으로 나타난다. 가령 그의 작품 중 용접으로 만들어진 투각 기둥 형태는 작품 전체에 불규칙적인 구멍이 숭숭 뚫려있다. 조각작품에서 일정한 크기로 잘려진 돌의 가장자리도 자연스럽게 남겨둔다. 그렇게 함으로서 재료의 물성도 살리며, 의미있는 형태를 재료에 관철하는 조각가의 의지도 실현한다. 이러한 과정은 평면 작품에서도 마찬가지다. 미술사에서 화면의 평면성을 확인하는 절차로 인증받은 입체파의 파피에 꼴레처럼, 캔버스에 찰싹 붙여진 종이는 평면의 조건을 재확인한다. 




Accumulation-2022, 2020, Korean paper on canvas, 132x162cm



Accumulation-2058, 2020, Korean paper on canvas, 132x162cm



Accumulation-2369, 2023, Korean paper on canvas, 132x162cm



회화는 더 이상 이전 시대처럼 세상을 들여다보는 창이나 거울이 아닌, 자체의 규칙에 지배된다. 그렇게 자율화된 화면에서 현대미술에 대한 많은 개념이 파생되었다. 다소간 얼마간은 평평한 캔버스가 창조적이거나 생산적인 토대였던 셈이다. 하지만 그러한 평면은 곧 벽이 되어 버렸다. 기능이 없는 벽은 장식화되었다. 조각이나 평면이나 모두 깔끔한 마무리감이 있는 박석원의 작품은 추상미술가들이 초창기 때부터 고민했던 추상과 장식의 관계를 생각하게 한다. 표면적 아름다움을 넘어서 의미에 도달해야 하는 것이 장식과 구별되는 미술의 정체성이다. 형태 심리학자 루돌프 아른하임은 [미술과 시지각]에서 훌륭한 예술작품은 어떤 내용을 표현하고 해석하는데 봉사하지만, 장식은 그렇지 못하다고 말한다. ‘예술적 상상은 낡은 내용을 대신하는 새로운 형태의 발견이요, 또는 낡은 주제에 대한 참신한 개념’(아른하임)이다. (물론 의미를 전달하는 기능으로서의 예술에 대한 관념을 거부하는 입장도 있다.) 


아른하임에 의하면 장식은 세상의 한 부분인데 반하여 예술작품은 이 세상의 한 이미지이다. 그에 의하면 예술작품은 먼저 세상으로부터 뚜렷이 분리되어야 하고 다음으로 세상의 전체 특징을 드러내야 한다. 박석원의 작품은 형태심리학이 가정하는 ‘분리’라는 점을 확실히 한다. 그것은 그의 작품이 ‘사물의 편’(프랑시스 퐁주)이 아닌 예술의 편에 속해 있음을 말한다. 현대미술의 한 축이 예술을 지양하고 사물을 지향하면서 사물화 되어가는 경향이 있다면, 박석원의 작품은 그것이 속한 주변과 뚜렷하게 구별되는 예술의 질적 기준을 갖추려 한다. 한편 그의 작품 형식은 단순한 요소의 반복이라는 점에서 장식적 특성을 공유한다는 점도 인정돼야 한다. 하지만 그의 작품의 추상적 속성은 장식과 달리 ‘통일된 인지 과정의 근본 성질’과 관련된다. 통일된 인지란 ‘그가 하는 모든 일에 자기 정신력의 통합된 전체를 적용할 때’(아른하임) 가능하다면, 그의 작품 또한 한눈에 들어오는 통일성을 가진다. 




Accumulation, 2016, Oriental ink on Korean paper, 145x77cm



Accumulation-20189, 2018, Oriental ink on Korean paper, 192x98cm



Accumulation, 1982-2017, Korean paper-drawing&union, 170x81cm



추상미술이라고 해서 환영(幻影)이 완전히 배제되는 것이 아니다. 평면 작품의 경우, 선택된 한지의 색감에 따라 관객의 상상력은 백자부터 바다까지 다양한 차원으로 이동한다. 평면에 붙여진 또 다른 평면인 한지는 원재료인 닥나무 섬유질이 자연스럽게 풀려 있어서, 붓질로 친다면 회화적이다. 일정 간격을 둔 줄로 평행하게 붙여 만들어진 수평선은 작품마다 다양한 파동으로 잔잔하게 출렁인다. 박석원의 작품은 기하학과 자연스러움이 공존한다. 한지가 교차로 붙여진 작품들은 촘촘한 섬유같은 짜임새가 특징이다. 십자형의 여백 때문에 창같은 효과를 주는 작품도 있다. 평면 시리즈에서 변주는 조각보다 자유롭다. 돌과 금속, 나무 등을 교차로 쌓아 올린 [積意] 시리즈는 1980년 전후로 시작되었으며, 민간 풍습에서의 돌탑 쌓기와 비유되어 해석되곤 했다. 그의 작품은 조각의 수직적 기념비성을 가지고 있지만, 실제 작품의 물리적 무게감이나 견고함과 별개로, 통상적인 기념비 스타일의 조각작품보다 융통성 있다. 


고인돌같은 하나의 덩어리가 아니라, 그 내부에서 관계와 흐름을 만들어 낸다. 요컨대 그의 작품은 구성적이다. 조각의 경우 구축적이다. 작가가 확정한 단위들을 조합한 작품이다. 구성, 구축, 구조 등 가족 유사성을 가지는 개념들은 현대의 과학적 방법론과 연결된다. 과학은 본질보다는 관계를 강조한다. 무엇인가 구축된 것이라 함은 해체의 가능성도 포함한다. 벵상 데콩브는 [동일자와 타자]에서 ‘해체’라는 단어는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에서 언급된 ‘Destruktion’를 번역하기 위해 데리다에 의해 최초로 사용되었는데, 이는 부정적인 의미가 아닌(전복시키다) 긍정적 의미로(경계를 정하다) 이해된다고 말한다. 중력을 거스르지 않고 어떻게 쌓였는지가 직관적으로 알게 되는 박석원의 조각은 해체와 구조의 연동성을 알려준다. 그의 작업실에는 전시장에서 다시 순차적으로 조립될 구성 요소들이 질서 있게 쌓여있다. [시각적 사고]에 의하면 관계는 구조에 의존하며, 본다는 것이 세부 내용의 무분별한 기록에 있지 않고 구조 특성의 파악에 있다. 




Accumulation, 2011, Iron welding, 39x234x39cm



Accumulation, 2011, Iron welding, 39x240x39cm



다양한 현상의 흐름 가운데서 구조적 특징, 즉 상대적으로 안정적 구조를 찾아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재현적 대상에 의지하지 않고도 그것이 가능할까. 철학에서의 구성주의는 가능하다고 본다. 지크프리트 슈미트가 편집한 [구성주의]에 의하면, 구성주의는 존재보다는 인지적인 것을 강조한다. 구성주의적 사고에 의하면 우리가 현실이라고 부르는 것은 존재론적인 현실이 아니라, 우리가 결정한 합의에 근거한다. 구성주의의 맥락에서 해석은 어디에선가 쪼갠 조각들을 다시 가져와서 조립하는 가운데 생긴다. 박석원의 구성적 작품에는 현실이 재현되어 있지 않지만, 작가가 채택한 적절한 구성적 요소로 인해 안정된 세계상을 구축할 수 있다. 그가 고수해 온 재료를 자르고 쌓는 방식은 주체가 대상에 정신적 육체적 작용을 통해 적극적으로 무엇인가를 구축함을 말한다. 건축처럼 인공적이지만, 돌의 가장자리를 자연스럽게 남겨 놓는 등, 자연과 협업한다. 


평면 작품에서도 마찬가지다. 작가는 돌의 돌다움, 금속의 금속다움, 나무의 나무다움을 부정하지 않는다. 평면 작품에서 사용되는 한지도 자연적 소재에 속한다. 단순한 요소를 반복하는 그의 작업은 미니멀리즘과 연결된다. 하지만 작가는 자기 작품이 미니멀리즘과 갈라지는 지점이 이러한 자연스러운 부분이라고 말한다. 미술사에서의 미니멀리즘은 휴머니즘의 전통을 거부하며 미술작품보다는 연극의 무대로 확장되고, 결국은 예술을 지양한다. 박석원의 작품은 일정 간격으로 분절화되어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인간과 마주 서 있다는 점에서 연극성과 거리가 있다. 그의 작품에서 추상적 형태의 반복은 기존의 재현주의에 기대지 않는다. 대상과 동일한 무엇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차이를 나타낸다. 벵상 데콩브는 [동일자와 타자]에서 반복은 동일자의 귀환이나 동일한 것의 되풀이가 아니라, 차이의 생산(존재하게 하다, 보여주다라는 두 가지 의미에서)과 관련된다고 말한다. 




Accumulation-24010, 2024, Korean paper on canvas, 89x89cm



Accumulation-24023, 2024, Korean paper on canvas, 182x182cm



현대철학에서 강조되는 반복과 차이는 무엇보다도 재현주의를 거부한다. 물론 추상미술도 본질이나 구조를 강조하다 보면 재현주의에 가까워질 수 있다. 가령 이상적 형태에 대한 플라톤적 관념을 재현하는 것이 그렇다. 다행히 신체와 물질이 맞부딪히는 조각 예술은 재현적 관념이 일관성 있게 관철되기 힘들다. 박석원은 1969년부터 한국 아방가르드 협회(AG)의 창립 멤버로, 1975년부터 ‘에꼴 드 서울’ 전에 참여하면서 한국 현대미술 운동에 참여했다. 첫개인전은 1974년에 했다. 1942년 생으로, 한국 전쟁 후의 피폐한 시기에 청년기를 보낸 작가는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린 폐허에서 시작한 세대에 속한다. 미술사에서도 세계대전의 폐허와 추상미술의 관계가 언급된다. 재현할 만한 가치도 대상도 없는 전무후무한 세계가 열린 것이다. 1960년대에 미술대학을 다니던 그는 ‘대학생들이 경찰 노릇까지 했던’ 정치적 혼란기를 통과했다. 


1960년대 서구는 이성의 질서에 대한 거부감이 팽배한 반(反)문화가 유행했지만, 한국의 경우 건설, 생산, 질서 등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있었다. 작업은 논리보다는 행위라고 보며, 자신은 작업에 정신을 쏟았다고 본다. 관념이 앞서기보다는 작업을 통해 깨우쳐 나가는 과정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다루기 힘든 재료를 사용하는 작업이다 보니, 작품이란 역경을 이겨내는 인내와 수행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작가는 자신의 작업이 ‘보여지는 현상을 내 에너지로 밀어내고 다시 내 쪽으로 끌어내는 행동’과 비유한다. 그것은 이성과 노동을 통해 주어진 자연을 변형시키는 주체의 면모이다. 자연적 재료를 자신의 방식으로 잘라내고 다시 붙이는 것이다. 그의 구축 방법은 반복이다. 작가는 이에 대해 ‘본질은 같고 현상은 다르게’, ‘무한히 거듭한다’고 말한다. 반복의 조건은 단순함이다. 박석원의 작품에는 단순함이 공통적인데, 그 바탕에는 기하학보다는 자연이 있다. 




Accumulation-24419, 2024, Korean paper on canvas, 89x89cm



Accumulation-24420, 2024, Korean paper on canvas, 89x89cm



‘불필요한 것을 행하지 않는’ 자연은 ‘단순에 만족하며 필요 이상의 과잉을 유발하지 않기 때문’(뉴턴)이다. 루돌프 아른하임은 [미술과 시지각]에서 단순성이란 의미와 가시적 패턴 사이의 구조적인 일치성이라고 말한다. 그러한 구조적 일치성이 동형성(isomorphism)이다. 자연이든 인생이든 예술이든 본질적인 구조가 중요한 것은 그에게도 마찬가지다. 종이 또한 돌이나 나무처럼 절삭을 통해 반복적 관계를 재생한다. ‘바벨탑을 쌓듯이’. 또는 ‘되새김질하듯 끝없이 연마’하는 중첩의 과정에서 의미와 가치가 생겨난다. 최근 여러 전시에서 발표되는 평면작업은 조각만큼이나 그에게 친숙하다. 독학으로 뒤늦게 미대 입시 준비를 시작했던 그는 회화과 지망이 좌절되고, 2지망으로 조각과에 합격했다. 하지만 조각과에서 흙 작업을 하는 순간, 앞이 바다고 뒤가 산인 고향에서 흙장난으로 보낸 어린 시절의 기억이 되살아나 조각을 숙명으로 여기고 조각과를 계속 다녔다고 한다. 


교육체제가 제대로 정비되지 못했던 시절, 종일 산과 바다를 보고 하루를 보내곤 하던 자연과의 교감은 이후에도 그의 감성적 밑천이 되어준 셈이다. 미술대전에서 수상하며 박석원을 ‘공식 무대’에 처음 알린 작품 [초토(焦土](1967)는 육중한 금속조각이지만, 마치 공중에 붓으로 힘차게 점을 찍은 듯한 궤적으로, 조각에만 한정되지 않았던 그의 예술적 이력을 보여준다. 입체든 평면이든 자연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리듬과 흐름에 상응하는 것을 생산한다. 90년대 초에 홍익대 조소과에 재직하면서 동료이자 스승이기도 했던 이일(1932-1997) 선생과의 만남도 중요하다. 한국 추상미술의 이론적 지주였던 이일 선생은 그의 전시 평문을 집필해 주기도 했다. 이일 선생이 주장한 ‘환원과 확산’의 미학은 그의 작품 해석에도 설득력 있으며, 역으로 이일 선생의 비평적 관점에 대화적으로 상호작용했을 것이다. 핵심적인 형태소로의 환원은 마치 언어처럼 다양한 의미로 확산될 수 있다. 박석원의 작품에서 환원과 확산은 이항대립이 아니라 서로를 포함하는 관계다. 


출전; 데이트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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