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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주 / 빛의 성전

고충환

박현주, 빛의 성전

박현주는 빛을 그린다. 그저 빛을 그린다기보다는 빛을 조형하고 연출한다. 주로 직사각형이나 정사각형 형태의 나무 패널을 만들고 그 표면에 물감을 입히고 금박을 입힌다. 이렇게 만든 나무 패널을 가로나 세로 형태로 배열해 전체적으로 기하학적 패턴과 구조가 두드러져 보이게 연출한다. 전체 구조를 이루는 일종의 원자 내지 세포에 해당할 각 나무 패널들은 일정한 두께로 인해 벽에서 돌출돼 보이고 그 자체 자족적인 오브제처럼 보인다. 이로써 평면이면서 동시에 평면을 공간으로까지 확장하는 공간설치작업을 아우른다.

물감은 주로 전면에서 보이는 나무 패널의 표면에 도포되는데, 점차 밝아지거나 점차 어두워지는 빛의 스펙트럼을 아님 빛의 빔을 표현한 것으로, 전체적으론 마치 화면이 미세하게 일렁이는 것 같은 옵티컬한 효과를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빛은 금박으로 변주되는데, 금박은 주로 나무 패널의 좌우측면과 위 아래쪽에 덧붙여 빛이 직접적으로 부각되는 것을 피한다. 이처럼 간접적인 연출이 오히려 빛의 물성이며 성질을 더 감각적으로 와 닿게 만든다. 측면과 측면이 위쪽과 아래쪽이 서로 무한 반사하는가 하면, 여기에 벽면에서 돌출돼 보이는 나무 패널 자체의 그림자에 의한 간섭이 가세해 은근하면서도 섬세한, 정적이면서도 드라마틱한 빛의 장관을 연출해 보인다.

아무래도 금박을 각 오브제의 측면에다 부가한 것, 그래서 빛과 빛이 서로 부닥쳐 간섭하게 하고 반사하게 한 것, 그렇게 광도를 일정정도 떨어트리면서 빛의 물성을 은근하게 만든 것이 주효해 보인다. 전면에 부가된 빛의 스펙트럼 내지 빔과 어우러진, 인공적인 색깔로는 도무지 흉내조차 낼 수 없는 이 은근하고 부드러운 빛의 간섭이며 직조며 질감이 작가의 그림에 흔히 따라붙는 수사적 표현처럼 빛의 성전을 보는 것 같고 빛의 신전을 보는 것 같고 빛으로 상징되는 영혼이 거주하는 집을 보는 것 같다. 인공적이고 세속적인 빛의 질감이며 성분과는 다른, 정신적이고 영적인 어떤 빛의 실체가 발하는 아우라에 감싸이게 만든다.

그리고 근작에서 작가는 기왕의 작업과 함께 평면작업을 제안한다. 나무 패널 대신 캔버스에 그린 그림으로서, 빛의 스펙트럼 내지 빔도 그리고 금박도 모두 캔버스의 평면 위로 불러들여진다. 평면작업에서 빛은 빛의 스펙트럼 내지 빔과 크고 작은 빛 알갱이가 하나로 어우러지는 형국을 취한다. 일종의 빛다발 내지 빛기둥이랄 수 있는 바 형태의 단위원소가 얼기설기 엮이면서 건축물 내지 구조물을 연상시키는 빛의 성전을 연출해 보인다. 정적인 구조물 위로 부유하듯 떠도는 빛 알갱이가 구성주의의 변주된 버전을 보는 것도 같고, 파이프오르간 위로 퍼져 나가는 리드미컬한 운율을 떠올리게도 한다. 옵티컬한 시각효과에다 운율을 암시하는 청각효과가 더해져 빛의 성전에 깊이를 더한다.

국내 미술계에도 빛의 물성에 천착한 경우가 없지 않지만(이를테면 하동철, 우재길, 이승조), 빛은 아무래도 회화 중 특히 재현회화와 관련이 깊다. 회화의 본질이 여럿 있지만, 그 중 핵심적인 것이 빛이다. 좀 과장해서 말하자면, 빛이 없으면 사물도 없다. 빛이 있은 연후에야 비로소 어둠도 음영도 계조도 아우라도 스퓨마토도 키아로스큐로도 극적인 연출도 가능해진다. 미술사에서 빛은 이를테면 성스러운 빛(중세 기독교와 불교 등 종교 성상화와 이콘화)과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빛(카라바치오와 램브란트), 그리고 자연광(인상파)과 인공광(팝아트) 등으로 변주된다. 이 가운데 박현주의 빛은 비록 추상의 형태를 띠고 있지만(보기에 따라서 중세 기독교 문화는 고도로 추상화된 시대며 문화로 볼 수 있다), 그 성분이며 의미가 성스러운 빛의 그것을 닮았다. 특히 오브제 설치작업은 그대로 빛의 성전 같다. 그 빛은 세상에 속한 것이라기보다는 내면적이고 관념적이고 형이상학적인 빛이다. 어쩌면 작가는 그 성스러운 빛으로 세상을 비추고, 세상을 안온하게 감싸게 하고, 세상을 정화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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