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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정 / 인공풍경과 대체자연

고충환

김민정, 인공풍경과 대체자연



김민정의 작업에 대한 첫인상은 무슨 공사 현장 같았다. 하나의 전체로 오는 타블로나 매스에 길들여진 눈으로 보기에 종이 박스에 늘어트려진 가녀린 실에 주렁주렁 매달린 이미지의 조각들이며 사진을 오려 붙여 세운 미니어처 펜스가 부실해 보였고 어수선해 보였다. 일종의 사진설치조각으로 범주화할 만한(작가의 작업은 장르적 특수성이 무색해지는, 장르와 장르가 그 경계를 허물고 하나로 합류되는 지점에 위치해 있다) 작가의 작업에선 실제로 건축 현장이며 개보수 현장, 재개발 건축현장과 도시공학의 아카이브가 소재로서 도입되고 있었다. 이를테면 콘크리트 골조 위로 분홍색 스티로폼이 뒤덮이고, 녹색 가림막이 그 이면에 얼기설기 엮인 철제 아시바를 숨기고 있는 것과 같은.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녹색의 이미지며 오브제들이 이 건축현장을 꾸미기 위해(?) 도입되고 있다는 점이다(문명을 꾸미고 치장하는 자연?). 이를테면 아래로 늘어트려진 녹색 실이며 녹색 실에 매달린 숲이나 잔디 같은 자연 이미지(잉크젯 투명사진 조각), 페트병과 캔, 팩과 비닐 캡 같은 녹색 쓰레기들과 녹색 가림 막, 그리고 나무로 대체된 미니어처 펜스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여기에 취급주의 표시나 출입금지 표시 그리고 검정색과 노란색 줄무늬가 교차된 일종의 간이 바리게이트가 더해져 그 자체가 무슨 보호막이나 보호 장치처럼 건축현장을 에두르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것들은 다 무엇인가. 작가는 무슨 건축 현장이나 공사 현장처럼 어수선한 풍경(인공풍경?)을 통해 뭘 말하고 싶은 것일까. 작가의 작업을 이해하기 위해서 작업 Plastic Beauty(인공미)를 보자. 작업에서 작가는 공간 속에 자연을 들여다 놓았다. 나무가 우거진 숲에선 새소리가 들려 올 것 같고, 비와 폭포로 흘러내리는 물이 그 숲이며 대기를 촉촉하게 적셔줄 것만 같다. 그리고 작가는 자연 속을 거닐면서 대지에 귀를 대보기도 하고, 흐르는 폭포 앞에선 정자세로 앉아 명상에 잠기기도 한다. 힐링인가? 세상사에 지친 몸과 마음을 치유하고 회복시켜주는 명상체험인가? 아님 자연회귀사상인가? 이도저도 아닌 것 같다. 알고 보면 투명 필름에 프린트된 폭포나 숲, 아래로 늘어트려진 비닐 위에 프린트된 비, 그리고 흐르는 대신 밀봉된 비닐봉투 속에 담긴 물이 어우러진 인공자연에선 힐링도 명상도 자연에로의 회귀도 쉽게 일어날 것 같지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인공자연이 무슨 자연인 양 정색을 하고 그 속을 거닐고 귀 기울이고 명상한 작가의 제스처는 무슨 의미인가. 가만히 보면 그 공간은 한정돼 있고 구획돼 있다. 철조망과 바리게이트가 겹겹이 공간을 에두르고 있는 것. 

결국 작가는 자기만의 공간 속에 가짜 자연을 조성해 놓고 그 가짜 자연에 자족하고 있었다. 자기 내면이 밀어올린 이 인공자연이며 가짜자연을 통해 작가는 사람들이 저마다 자기 내면에 자기만의 방이며 집을 짓고 있음을, 마치 동물들이 영역표시를 하듯 자기만의 경계를 설정하고 있음을, 그리고 그렇게 설정된 경계 안쪽에다 상실된 자연을 들여놓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자기 마음속에 경계를 설정한다는 것, 그리고 그 경계 속에 자기만의 자연을 조성한다는 것, 그리고 무슨 공사 현장처럼 어수선한 마음풍경을 그렇게 조성한 자연으로 치유하고 자족한다는 발상 내지 상황설정이 공감과 냉소를 불러일으킨다. 이처럼 작가의 작업은 적어도 자연을 통한 치유 내지 힐링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오히려 그와는 정 반대편에, 이를테면 가짜자연을 통해서나마 상실된 자연을 회복하고 싶은 현대인의 삭막한 마음 쪽에 가깝다. 


그렇게 작가는 Plastic Beauty(인공미), Plastic Falsity(인공적인 허위), Plastic Green(인공 녹색)과 같은 일련의 Plastic Series를 조형한다. 그리고 그 조형은 심정적으로 Plastic Surgery(인공성형)를 아우른다. 보다시피 Plastic에 대한 이해가 핵심적인데, 플라스틱 소재의 물질과 사물, 그리고 인공과 조형의 의미가 하나로 포개져 있다. 그 이면에선 일말의 비판적 의미기능이 수행되고 있는데(인공적인 허위), 인조잔디나 인공폭포 같은 자연을 인공적으로 만들고 조성하는 행위에 대한(자연을 만들기 위해 자연을 훼손한다는 자가당착?), 얼굴을 인공적으로 뜯어고치는 행위에 대한, 규율과 질서 같은 제도적 장치를 자연에마저 적용하는 행위에 대한, 그래서 종래에는 인공이 자연을 대체하는 것에 대한(조화의 목적은 생화처럼 보이는 것에 있고, 인공성형의 목표는 자연 미인을 만드는 것에 있다) 비판의식을 잠재하고 있는 것이다. 롤랑 바르트는 문화적 사실을 자연적 사실인 양 가장할 때 신화가 발생한다고 했다. 작가는 말하자면 인공자연을 자연인 양 하는 현대판 신화를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엄마와 나는 우리만의 울타리를 만들기 위해 녹색 펜스를 쳤다. 녹색 펜스가 숨 막히는 현실을 숨 쉬게 하고, 상실된 자연을 보상해준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내 그 생각은 착각이었음이 드러났다. 사람들이 자연을 폐기할 때, 울타리 속에 숨어있던 우리를 미처 알아보지 못한 그들에 의해 우리는 자연(녹색 펜스)과 더불어 버려졌다(Mother and I). 깨지기 쉬우니 취급할 때 주의가 요망된다는 섬세한 마음이며 배려와 함께. 현대인은 온통 상실의 시대를 살고 있다. 신을 상실하고 형이상학을 상실하고 거대담론을 상실하고 자연을 상실하고 존재를 상실하고 정체성을 상실한 시대를 살고 있다. 상실감은 이제 현대인의 존재론적 조건이 되었다. 이런 상실의 시대에 작가는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 대한, 문명과 인공자연과의 관계에 대한, 문명화된 자연에 대한 현실인식을 그려 보인다. 그렇게 그려진 풍경이 무슨 공사판처럼 그리고 현대인의 마음처럼 부실하고 어수선하고 황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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