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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사와 미술품 감정, 객관적인 절충안과 아카이브의 필요성

고충환

미술사와 미술품 감정, 객관적인 절충안과 아카이브의 필요성



미술품 감정의 정의


미술품을 감정한다는 것은 곧 미술작품의 가치를 평가하는 행위이다. 그렇다면 그 평가의 기준이며 근거는 무엇인가를 따져 물을 일이다. 모든 사람이 인정하고 수긍할 수 있는 객관적인 기준이 마련돼야, 이를 근거로 작품의 가치평가를 했을 때 문제가 없을 뿐만 아니라 건전한 미술시장도 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 기준으로는 무엇이 있을까. 미술작품의 가치를 평가하는 객관적인 기준으로는 크게 미학적 가치와 경제적 가치를 들 수가 있겠다. 여기서 미학적 가치는 작품의 독창성과 일품성, 오리지널리티와 같은 인문학에 정초한 가치로서 작품 자체의 가치를 말하며, 경제적 가치란 작품의 재화적인 가치를 의미한다. 이처럼 표면적으로 작품의 미학적 가치와 경제적 가치는 서로 구분되지만, 결국 이 두 가치는 하나로 합치되는 경우로 보아야 한다. 작품 자체의 가치 여부에 따라서 경제적 가치도 결정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미학의 관점에서 볼 때 감정은 미술사와 비평을 아우른다. 여기서 미술사는 작품의 사실판단을 그리고 비평은 작품의 가치판단을 수행한다고 볼 수가 있겠고, 따라서 감정은 그 두 기능, 이를테면 작품에 대한 사실판단과 가치판단을 동시에 수행하는 경우로 보면 되겠다. 이로써 감정가 내지 감식가에게는 이런 미술사적인 지식과 함께 비평가의 안목이 동시에 요구된다고 할 수가 있을 것이다. 


진위판단의 문제


미술품 감정은 크게 고미술의 경우와 현대미술의 경우로 구분된다. 고미술의 경우에는 사료에 근거해서 그리고 현대미술의 경우에는 작품 자체에 근거해서 그 가치를 판단할 수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 작고 작가의 경우를 더할 수가 있을 것인데, 작품 자체도 그렇지만 작품에 대한 일종의 명세서랄 수 있는 아카이브가 부수되지 않은 경우에 진품을 감정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여기서 미술품 감정에는 작품의 진위여부를 따져 묻는 진위판단의 문제가 더해질 수가 있겠다. 말하자면 특정 작품이 특정 작가의 작품이 맞는지 여부를 따져 묻는 것이다. 이로써 진위판단의 문제는 위작을 가려내는 행위 곧 위작판정의 문제에 연동되고, 때론 진짜가 가짜로 그리고 가짜가 진짜로 판명되는 경우의 문제, 여기에 판정 번복의 가능성 여부의 문제에 연동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특정 작품이 특정 작가의 작품이 맞는지 여부를 어떻게 알 것이며, 어떤 근거로 진품을 가려낼 것인가. 여기서 작품의 진위판단 문제는 미술사에 연동된다. 미술사에 근거한 데이터와 안목이 판단을 위한 객관적인 기준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여기서 데이터란 미술사적 사실에서 추출된 과학적인 기준을 말하고, 안목이란 특정 작가의 작품을 오랫동안 봐오면서 생긴, 그래서 특정 작품이 특정 작가의 작품임을 직감적으로 알아볼 수 있는 일종의 감과 같은 것일 수 있겠다(이로써 때론 풍부한 경험과 노하우를 가지고 있는 전문가의 첫인상이 작품의 진위여부를 판정하는 상당할 정도로 신빙성이 있는 근거며 기준이 될 수도 있겠다). 그리고 과학적인 기준은 다시 인문과학적인 기준과 자연과학적인 기준으로 구분된다. 인문과학적 기준이란 미술사적 사실에 근거한 기준을 말하고, 자연과학적 기준은 안료 분석이나 연대기 측정과 같은 작품 자체와 작품에 부수되는 일체, 이를테면 틀이나 액자 일체를 포함하는 질료 분석에 근거한 기준을 말한다. 그리고 여기에 스타일 혹은 양식분석을 더할 수가 있겠다. 특정작가가 그림을 그릴 때 나타난 자기만의 양식적 특징이며 습관을 분석하는 것이다. 

미술작품의 진위판단 문제는 이처럼 미술사적 사실에 근거한 과학적인 기준과 특정주체(전문가)의 안목, 그리고 여기에 스타일 분석이 서로 보충하고 보완하는 과정을 통해서 일종의 절충안을 찾아가는 지난한 과정이랄 수 있겠다. 절충안? 왜 절충안인가. 모든 면에서 진품이거나 위작임이 명명백백한 경우에는 당연히 문제될 것이 없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종종 있고, 많은 경우에 미술품 감정에서 문제시되는 것은 바로 그런 경우이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의 수에 대비해서 일종의 객관적인 절충안이 해법이 될 수가 있겠다. 어쩌면 실제로 미술품 감정은 이런 객관적으로 수긍할 수 있는 수준의 절충안을 찾아내는 과정일 수 있겠다. 

객관적인 절충안이라고는 했지만, 그 과정이 쉽지 않은 것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무엇이 감정을 어렵게 하는가. 감정의 주요 대상은 진품인지 위작인지 애매모호한 경우에 집중된다고 했다. 그리고 여기에 진품처럼 잘 그린 위작과 위작을 의심케 할 만큼 못 그린 태작이 그 주요 대상이 된다고 이해하면 되겠다. 여기에 감정을 어렵게 하는 요인으로서 일종의 선입견이나 편견을 들 수가 있을 것인데, 작품의 진위여부나 진품여부에 대해서는 다른 누구보다도 작가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이 그것이다. 물론 이 믿음의 상당부분은 정당하지만, 그 자체가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때론 작가조차 자신이 그린 그림을 못 알아볼 때가 있음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면 문제가 없지만, 문제는 작가 자신이 이러한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일이 종종 발생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진작 판정을 위해선 작품 자체의 판정도 중요하지만, 여기에 작가 연구가 부수되어져야 한다. 말하자면 평소 특정작가와 관련해 수작과 태작을 가려내는 일이 선행된다면 감정을 좀 더 효율적이고 기술적으로 진행할 수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위작과 관련해서 고미술을 비롯한 특히 근대 작품의 경우에 진품과 같은 시기며 시대에 속한 바탕재(서포터)며 같은 재료(안료)를 사용해 위작한 경우에 감정이 어려울 수 있다. 이처럼 감정을 어렵게 하는 것으로 치자면 작품 자체를 위조할 뿐만 아니라, 여기서 더 나아가 작품의 명세표랄 수 있는 아카이브 자체를 위조하는 경우, 그리고 아예 미술사적 사실을 끌어들여 그럴 듯하게 작품의 히스토리를 만들어내는 경우를 들 수가 있겠다. 여기에 에디션이 가능한 매체들, 이를테면 판화와 사진의 경우에 진위판정을 어떻게 적용할 수 있느냐는 문제, 그리고 더욱이 작가 사후에 작품이 제작된(이를테면 사후판화와 같은) 경우의 문제가 부가될 수가 있겠다. 


아카이브의 필요성


작품의 진위감정과 관련해서 문제시되는 경우로는 이처럼 특히 현대미술이 다원화되면서 나타난 특수현상이나 특정장르의 경우를 들 수가 있겠고, 판화와 사진을 비롯한 각종 영상매체와 같은 멀티플 장르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대략 에디션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적용할 것인가의 문제(이 경우에는 복수 제작된 작품 모두의 오리지널리티를 인정하는 것이 해법으로 제안될 수 있고, 실제로도 그렇게 통용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애초에 A.P(예술가 소장용)로 제작되고 표기된 판화의 경우의 문제, 사진의 사이즈를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적용하는 경우의 문제(이를테면 사진을 인화할 때 그 크기를 다르게 해 또 다른 원본을 주장하는 경우의 문제), 그리고 작품이 아예 데이터로만 존재하는 경우의 문제를 생각해볼 수가 있겠다. 이를테면 USB와 CD, 그리고 각종 영상매체와 같은 복제 가능한 미디어가 여기에 해당하는데, 특히 디지털 매체인 경우에 잠금장치를 걸어놓는다고는 하지만, 이 경우에도 사실상 마음만 먹는다면 잠금장치를 풀 수 있는 것이 문제이다(사실상 모든 디지털데이터에 대한 잠금장치는 임의적이고 임시적인 것으로 보아야 한다). 그리고 여기에 사실상 원본과 사본과의 차이가 무의미한 경우에 원본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의 문제가 더해질 수가 있겠다. 이 경우의 수에 대해서는 발상전환이 요구되는데, 이를테면 전통적인 소유권 개념 대신 저작권 개념으로 문제에 접근하는 것이 해법이 될 수가 있겠다. 작품 자체에 대한 권리와 함께 작품에 딸린 매뉴얼과 작품의 사후관리에 대한 권리 일체를 포함하는 식이 되겠다.   

이 경우에 특히 작품의 명세서랄 수 있는 아카이브 문제가 대두된다. 아카이브란 작품에 부수되는 기록물 일체를 말하며, 여기에는 작품 자체의 명세표(이를테면 작품의 제작연도와 재료 및 기법, 작품의 유통경로 및 소장과 관련한 변동 상황을 기록한)를 비롯해 편지나 일기 같은 작가의 사사로운 기록물들과 서명 일체를 포함한다. 이런 아카이브와 관련해서는 감정가협회나 화랑협회 그리고 아카이브협회와 같은 공신력 있는 특정 단체가 지속적으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는 작업이 선행되어져야 하고, 그 이해단체들 간의 상호 긴밀한 공조체제가 구축되어져야 한다. 그리고 현대미술과 관련해서 특히 미디어아트의 경우에 그 진위여부며 소장가치를 판별할 수 있는 별도의 시스템이 구축되어져야 하고, 이를 위한 전문적인 논의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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