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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도 한국 미술계 전시행사 및 사건 회고

고충환

2013년도 한국 미술계 전시행사 및 사건 회고


주요 전시들 

올해도 어김없이 피카소(10월 예술의 전당미술관)를 비롯한 반 고흐(3월 예술의전당 디자인미술관)와 고갱(6월 서울시립미술관)의 블록버스터 급 전시가 사람몰이를 했다. 예술가의 소명의식을 광기와 맞바꾼 표현주의자 반 고흐와 지상낙원을 꿈꾼 이상주의자 폴 고갱을 비교하면서 애와 증으로 교직된 그들의 관계를 유추해보는 재미가 있었다. 이런 블록버스터 급 전시를 한 방에 날려 보낸 초특급 블록버스트 전시가 있었으니, 영화감독 <팀 버튼전>(작년 말에서 올해 4월까지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린)이 그것이다. 대학에서 애니메이션을 전공한 후 월트 디즈니사에서 수석 디자이너로 근무한 이력을 가지고 있는 팀 버튼은 이 이력을 바탕으로 이후 크리스마스의 악몽, 가위손, 유령신부, 화성침공, 배트맨과 같은 애니메이션과 공상이 믹서 된 일련의 환상적인 영화들을 만든다. 이번 전시에서는 애니메이션과 스케치 그리고 각종 캐릭터의 모형 등 영화들이 만들어지는 과정이며 스튜디오 그대로를 재현한 것 같은 생생한 현장감으로 흥미를 더했다. 최근 다원예술로 변화하고 있는 미술환경의 생리에 맞춰 블록버스트도 미술의 경계를 넘어 영상과 영화, 패션과 생활사와 같은 인접영역으로까지 확장을 꾀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올해 국내에서 열린 해외작가 관련 전시를 보면 중국현대미술이 주춤한 사이에 일본현대미술의 약진이 두드러진다. 그 와중에서도 한중수교 20주년을 기념해 열린 <신중국미술전>(2월 아르코미술관)은 그동안 국내 미술계에 알려진 중국현대미술에 대한 선입견을 재고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소위 사대천왕을 중심으로 한 중국 현대미술의 아방가르드로 알려진 냉소적 사실주의 이후 세대를 조명함으로써 중국현대미술의 세대교체와 함께 또 다른 저력을 예고하는 것이었다. 일본현대미술과 관련해선 올해 3월 서울대학교미술관에서 열린 <1970년대 이후의 일본 현대미술전>이 주목되는데, 1970년대 모노하 및 개념미술, 80년대 현실주의 미술과 여성주의 미술, 그리고 90년대 이후 뉴미디어아트의 흐름을 개괄 조명한 것이었다. 흥미롭게도 국내 현대미술의 진행과정과 유사한 변화를 보여주고 있는 만큼 상호영향관계를 확인해볼 수 있었던 보기 드문 기회를 제공하지 않았나 싶다. 그리고 일본 전통 채색화를 전공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만큼 파격적인 그림이며 조각으로 세계현대미술계의 미각을 사로잡은 재팬팝 내지 마이크로팝의 선두주자 무라카미 다카시(7월 삼성미술관 플라토), 특유의 땡땡이 문양이며 패턴으로 환각적인 비전을 예시해주는 쿠사마 야요이(7월 대구미술관) 역시 주목된다. 그리고 여기에 올해 10월 소마미술관에서 열린 <아시아 코드전>이 있는 것이 없는 것이고 없는 것이 있는 것이라는, 충만한 빈 것이라는 소위 공(空)의 개념을 내세워 아시아 중심의 담론형성에 힘을 실었다. 


아시아권 외의 해외작가 관련전시를 보면 아니쉬 카푸어(작년 10월에서 올해 2월까지 삼성미술관 리움에서 열린), 데이비드 살레(각각 3월과 4월 리안 갤러리 서울과 대구에서 연이어 열린), 알렉산더 칼더(7월 삼성미술관 리움), 채프만 형제(8월 송은아트스페이스), 그리고 데이비드 호크니(올해 9월에서 내년 2월까지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가 주목된다. 인도계 영국작가인 아니쉬 카푸어는 스케일 면에서나 정신적인 면에서 공간에 대한 개념이며 감각을 바꿔놓은 것으로 사료된다. 데이비드 살레는 줄리앙 슈나벨이나 신디 셔먼과 함께 포스트모더니즘 미술의 선두주자로서 상호 이질적인 이미지며 서사의 계기들이 하나의 화면 속에 중첩되고 합류되는 다중화면을 통해 소위 포스트페인팅을 예시해준다. 채프만 형제는 영국 YBA 대표작가로서 롤리타 신드롬과 세기말적 상상력을 결합시킨다거나, 원시부족미술과 다국적기업의 로고를 합치시킨다거나, 마치 악몽과도 같은 미니어처 풍경을 통해 소위 그로테스크리얼리즘이라고 부를 만한 미학적 지점을 예시해준다. 그리고 데이비드 호크니의 이번 전시는 특이한데, 높이 4.5m 폭 12m에 달하는 대형 풍경화 단 1점으로만 이루어진 전시다. 고향 요크셔의 풀 한 포기며 나무 한 그루 한 그루를 일일이 손에 잡힐 듯 세심하게 그린 사실적이면서 환상적인 그림이다. 

올해 열린 전시 중 전통과 관련해선 작가 탄생 300주년을 기념해 열린 <표암 강세황전>(6월 국립중앙박물관)이, 그리고 근대와 관련해선 한국적 미의식의 개념규정과 관련해 일종의 길목과도 같은 <야나기 무네요시전>(5월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이 각각 주목된다.  

이외에도 정신의 흔적을 그리는 윤명로(3월 국립현대미술관), 마치 무대세트 같은 인공풍경을 통해 실재와 이미지와의 관계 내지 현실인식의 문제를 건드리고 있는 한운성(2월 갤러리 인), 의미를 지워 물성이 드러나게 한 최병소(작년 말에서 올해 2월까지 대구시립미술관에서 열린), 인간 내면의 심연을 들여다보는 듯한 김정욱(작년 말에서 올해 1월까지 갤러리 스케이프에서 열린), 좋은 노동과 나쁜 미술을 주제화한 김홍석(3월 삼성미술관 플라토), 무지개를 그리는 법을 주제화한 안규철(11월 갤러리 스케이프), 이중으로 분열하고 다중으로 분화되는 주체를 그린 권여현(3월 오시아이미술관), 설악산의 작가 김종학(6월 갤러리 현대), 물방울 작가 김창열(8월 갤러리 현대), 소나무 작가 배병우(10월 가나아트센터), 현실주의 조각의 작고작가 10주기를 기념해 열린 구본주(8월 성곡미술관), 이승택, 이건용과 함께 한국 아방가르드 미술 1세대 작가 회고전으로 열린 김구림(7월 서울시립미술관), 한국 추상미술의 독창적인 형식을 연 최욱경(9월 가나아트센터), 기하추상을 생활감정과 접목시킨 김봉태(9월 부산시립미술관), 수묵의 본질이며 본성에 천착한 김호득(10월 금호미술관), 한국 수묵화의 대표작가 박대성(11월 가나아트센터), 수묵화를 생활감정과 접목시킨 박병춘(올해 11월에서 내년 1월까지 성곡미술관에서 열린),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넘나드는 초상화를 그리는 강형구(10월 영은미술관), 한국 팝아트의 대표작가 이동기(9월 송원아트센터), 기계생명체의 최우람(11월 갤러리 현대), 자타가 공인하는 키치작가로서 플라스틱 생활용품을 예술용품으로 탈바꿈시킨 최정화(2월 대구미술관), 방주와 강목 사이를 순환하는 여행을 통해 일종의 생태학적 존재론을 예시해주고 있는 차기율(올해 11월에서 내년 1월까지 오시아이미술관에서 열린), 그리고 각각 서사의 순간, 움직이는 풍경, 일상과 환영 사이의 소주제별로 묶어낸, 평면을 넘어 설치와 영상으로까지 확대 재생산되고 있는 한국화의 신경향을 짚어낸 <진경전>(9월 오시아이미술관) 같은 전시가 주목된다. 


사건과 사고

올해 주요 미술상과 관련한 수상내역을 보면 소위 종이부인으로 한국화의 새 지평을 연 정종미 작가가 이인성미술상을, 도대체 이 사람의 형식실험은 어디까지일까 감잡히지 않는, 영원한 이단아 내지 영원한 청춘이라는 수식어가 딱 어울릴 법한 안창홍 작가가 이중섭미술상을, 한국의 마욜 고정수 작가가 문신 미술상을 각각 수상했다. 특히 안창홍은 이인성미술상과 이중섭미술상 모두를 수상한 작가라는 이력을 하나 더 보태게 됐다. 그리고 주지하다시피 국립현대미술관의 올해의 작가상과 에르메스 미술상은 먼저 후보 작가를 선정해 전시를 하고, 그렇게 실제 전시된 내용을 보고 최종 수상자를 선정하는 방식으로 수상제도에 대한 공신력을 높인 사례로 평가받는다. 이렇게 각각 공성훈, 신미경, 조해준, 함양아 4인의 후보 중 공성훈 작가가 올해의 작가상을, 그리고 나현, 노순택, 정은영 3인의 후보 중 정은영 작가가 에르메스 미술상을 수상했다. 좋은 일이 있으면 나쁜 일도 있는 법이다. 올해 미협 이사장을 지낸 이두식, 민미협 이사장을 지낸 여운, 한국 금속공예의 1세대 작가 유리지, 문인화의 정신을 현대적으로 계승한 박노수, 한국화와 관련한 수묵화 운동을 이끈 남천 송수남 작가가 각각 세상을 떠났다. 

이외에 미술관들이 새로 문을 열었는데, 지난 5월에 왈종미술관이, 9월에는 종로구립 박노수미술관이 각각 개관했다. 제주 서귀포시에 소재한, 한국화가 이왈종 작가가 자신의 작업실로 쓰던 건물을 미술관으로 증개축한 왈종미술관은 흔히 개인미술관의 고질적인 문제점으로 지적돼온 운영에 따른 경제적인 어려움을 타개해 자력으로 유지할 수 있는 가능성을 예시해준 것으로 평가된다. 그리고 현재 세종시립미술관이 건립 중인데, 거의 1000억원대에 달하는 천문학적 돈이 든다는 얘기가 있고, 벌써부터 이런저런 우려와 잡음들이 많다. 국립현대미술관 분관 체제가 제안되기도 한다. 부디 예상되는 잡음들을 일소할 수 있어야 하고, 그렇게 다만 미술관을 하나 더 보탤 뿐인 비생산적인 일의 반복은 없었으면 한다. 특히 국공립미술관과 관련해선 지난 9월 서울시립미술관 북서울관이 개관했는데, 이로써 서울시립미술관은 각각 글로벌네트워크 중심의 본관, 공예생활관 중심의 남서울관, 주요 협회 내지 단체전을 위한 대관중심의 경희궁관에 이어 공공성 위주의 퍼블릭아트 중심의 북서울관을 아우르는 콤플렉스 체제를 갖추게 되었다. 그리고 올해 사건으로 치자면 단연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개관을 들 수가 있을 것이다. 향후 서울관을 현대미술 전시중심으로, 덕수궁관을 근대미술 전시중심으로, 과천 본관을 소장품을 매개로 한 아카이브 및 연구센터 중심으로, 그리고 현재 진행 중인 청주관을 수장고 중심으로 운영한다는 밑그림이 그려진 상태이다. 

마지막으로 보태자면 그동안 상당한 준비기간을 거쳐 마침내 지난 11월 한국아트아카이브협회가 정식으로 창립했다. 현대미술이 다원화되면서 장르도 형식도 다양화되고 있는 실정이고, 따라서 전에 없이 아카이브의 중요성이 대두되고 있는 실정이다. 마치 작품의 명세표와도 같은 아카이브의 체계적 발전방안이 모색되어져야 할 것이다. 미술시장이 얼어붙었다고도 하고, 젊은 작가들에 비해 중진 내지 중견작가들의 위상이며 입지가 줄어들었다고도 한다. 계절에 상관없이 추운 한 철을 보냈던 것 같다. 내년엔 사시사철 봄날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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