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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근, 감각의 산책

고충환



권혁근, 감각의 산책 

고충환 | 미술평론가


작가는 자신의 근작을 프로메나드(Promenade), 산책이라고 부른다. 산책이 있는 곳에 산책하는 사람, 산책자, 그러므로 플라뇌르(Flaneur)가 있다. 산책 자체는 일반적인 용어지만, 신도시와 구도시가 공존하는 다공성의 근대 도시 파리를 배경으로 한 보들레르(파리의 우울)와 루이 아라공(파리의 농부) 그리고 발터 벤야민(아케이드 프로젝트)의 도시의 산책자 이후 이 말은 비로소 지금의 문화적 의미를 얻게 되었다. 

전통 산수화의 주요 덕목으로도 알려진, 우리에게 좀 더 친숙한 표현으로 치자면 소요다. 그리고 주지하다시피 소요는 할 일도 없이, 목적도 없이, 생각도 없이 그저 걷는 것을 말한다. 그렇게 무작정 걷다 보면 안 보이던 것이 보이고, 안 들리던 것이 들린다. 세계가 자기 속에 품고 있던 잠재적인 세계(그러므로 비전)를 내어주는 것이다. 그렇게 다른 세계가 열리는 것인데, 그렇게 열린 세계는 전에 없던 새로운 세계가 아니라, 세계가 진즉에 자기의 한 본성으로서 품고 있었던 세계, 미지의 계기로 인해 발견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세계, 그러므로 사실은 오래된 미래(발터 벤야민)가 열리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처럼 할 일도 없이, 목적도 없이, 생각도 없이 새로운 비전을 열어 보이는 산책은 작가의 그림 어디에 어떻게 있는가. 작가의 그림에서 산책은 무슨 의미가 있는가. 작가의 그림은 몸 그림이다. 엄밀하게는 손가락으로 그린 핑거페인팅이다. 손가락으로 그렸지만 몸이 실린 것 그러므로 몸의 연장이란 점에서 보면 행위가 강조되고 몸의 궤적이 강조되는 액션 페인팅의 또 다른 버전이라고 해도 좋다. 
손가락에 물감을 묻혀 수직으로 그어 내린, 그리고 물감이 닳아 없어진 자리에서 다시 그어 내린, 그렇게 다시 시작한 곳에 층을 만드는 그림이 반복 수행을 떠올리게 하고, 차이를 생성하는 반복(질 들뢰즈)을 떠올리게 만든다. 두툼하게 덧바른 물감층으로 물성이 강하게 어필되는, 시각적이면서 촉각적인, 그렇게 시각 언어 중심의 회화의 문법을 확장하는 그림이다. 여기에 위 색 아래로 밑 색이 배여 나와 어룽어룽한 비정형의 실루엣을 형성하는 그림이, 이면에서 빛(빛살)의 기미가 설핏 감지되는 것도 같은 그림이 감각의 직조(교직 되는 감각)를 떠올리게 하고, 들숨과 날숨의 상호작용을 떠올리게 만든다. 호흡과 숨결이 물화 된 생생한 형식을 얻고 있다고 해야 할까. 

전작과 비교해 보면, 색깔을 배제한 채 흑백 대비가 두드러져 보이는 무채색 위주로 간 것이, 좀 더 역동적일 수 있는 사선에서 수직과 수평이 강조되는 상대적으로 더 정적인 화면으로 간 것이, 그렇게 어쩌면 관념적이고 내면적이고 명상적인 분위기로 흐른 것이 다른 점으로 보인다. 외면에서 불던 바람이 내면으로 옮겨가면서, 감각과 감각이 직접 부닥치는 대신 내면화하면서 오히려 더 격렬해지는, 침잠하면서 격렬해지는, 정중동의 파토스를 일깨운다고 해야 할까. 

그렇다면 여기서 다시, 산책은 작가의 그림 어디에 어떻게 있는가. 작가의 그림에서 산책은 무슨 의미가 있는가. 감각의 산책이다. 감각의 산책? 감각이 산책하고 소요하는 것인데, 여기서 산책은 다르게 말하자면 유목(질 들뢰즈)이다. 그리고 알다시피 들뢰즈에게 유목은 사유의 유목이다. 사유가 유목하는 것이고, 사유를 통해 유목하는 것이고, 사유의 유목을 통해 세계를 읽는 것이다(인식론). 반면 작가의 그림에서 산책 그러므로 유목은 감각의 유목이고, 감각을 통한 유목이고, 감각의 유목을 통해 세계를 느낀다는 것이(감각론) 다른 점이다. 둘 다 세계와 접속하고 세계에 반응하는 방법으로, 그중 예술적 버전을 작가의 작업이 예시해주고 있다고 해도 좋다. 

그렇게 작가의 그림에서 산책이 느껴지는가. 감각이 느껴지는가. 바람의 질감이 느껴지고, 바람이 흔드는 나뭇잎 사이로 어룽대는 빛의 질감이 느껴지는가. 어스름하고 어둑한 빛(아니면 어둠)의 두께가 느껴지는가. 공기의 깊이가 느껴지고, 빗줄기가 느껴지고, 기후가 느껴지는가. 그러므로 어쩌면 감각을 그린 작가의 그림은 기후를 그린 그림, 기후 미술, 그러므로 생태예술의 가능성도 열어 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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