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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워드로 본 부산 울산 현대미술

고충환



키워드로 본 부산 울산 현대미술 


고충환 | 미술평론가


지역 현대미술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 그 전에, 지역 현대미술이라는 용어 설정이 가능한가. 아니면 타당한가. 밑그림 그러므로 인식론적 지도가 그려지고 나서야 비로소 정의 문제로 건너갈 수도 있는 일이다. 그러므로 우선 밑그림에 해당하는 인식론적 지도를 그리는 일에 착수하기로 했다. 크게는 연대기에 바탕을 둔 미술사적인 서술 방식과 양식적 특징을 통해 본 양식사적 서술 방식이 있을 것이지만, 그보다는 장소와 사건 그러므로 미술관과 전시를 좌표로 삼기로 했다. 좌표 그러므로 아트신을 통해 지역 현대미술의 특수성의 윤곽이 그려지기를 바라면서...


부산시립미술관. 1998년 3월 개관한 부산시립미술관은 개관 기념전으로 <부산 현대미술 재조명전>, <미디어와 사이트전>, 그리고 부산시와 자매결연을 맺고 있는 세계 유명 미술관의 소장품을 전시한 <자매도시 미술관 소장품전>(3.20-6.20)을 동시 개최했다. 그리고 연이어 김남진, 이태호 등 지역에 기반을 둔 3.40대 작가 8명이 참여한 <사실과 사실 표현전>(7.20-10.21)을 열었다. 각 지역미술과 동시대 미술 그리고 소장품 관리에 기반한 지역미술관의 특수성을 반영한 전시로 보인다. 그리고 이후 2015년 4월에는 부속 동으로 이우환 공간을 별도 개관하기도 했는데, 향후 본격적인 미술관 개관을 위한 사전 작업으로도 보인다. 

주요 전시를 보면, 미술관 개관과 함께 그동안 부산에서 개최된 3대 국제전인 부산 청년 비엔날레, 바다 미술제, 그리고 국제 야외 조각 심포지엄을 하나로 합친 <부산국제아트페스티벌>(1998.11.1-30)이, 2007년에는 인도 현대미술을 테마로 한 <인도 현대미술전 - 배고픈 신> 전시가, 그리고 2023년 1월에는 일본 팝을 대표하는 <무라카미 다카시> 전시가 주목할 만하다. 

특히 인도 현대미술전은 아라리오 갤러리와 부산시립미술관이 협력해 만든 전시로서, 오랜 식민역사를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소위 문화적 다양성으로 승화시킨 인도 현대미술의 현재와 그 역동성을 엿볼 수 있다. 문화적 다양성을 바탕으로 서로 무관계하고 이질적인 이미지의 편린들이 자유자재로 결합하는 것이나, 그 결합이 불러일으키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끝도 없이 이어지는 서사가 혼성문화의 전형을 예시해준다. 차이 나는 것들에 대한 포용력과 자기화에 바탕을 둔 인도의 문화적 정체성을 반영한 전시로 평가된다. 한편으로 무라카미 다카시 전시는 현대미술도 블록버스터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전시로 평가된다. 


부산국제아트페스티벌/ 부산비엔날레. 1998년 부산시립미술관 개관에 맞춰 열린 <부산국제아트페스티벌>(1998.11.1.-30)을 발판으로 2001년 1월 부산비엔날레로 명칭을 변경한 이후, 2002년 9월 비엔날레를 정식 출범시켰다. 지난 1998년에 이어 2회째에 이른 부산국제아트페스티벌(2000.10.2.-11.27)은 민간 주도로 열린 국제 비엔날레의 사실상의 유일한 사례란 점에서 광주비엔날레와 미디어시티서울과도 변별성을 갖는다. 전시는 부산시립미술관의 국제현대미술전(분과위원장 정진윤), 해운대 해수욕장을 배경으로 한 국제바다미술제(분과위원장 김광우), 올림픽동산 야외조각공원에서 열린 국제야외조각심포지엄(분과위원장 송근배)을 중심으로, 국제미술학세미나(분과위원장 백영제), 그리고 국제미술시장(분과위원장 김창수)으로 각각 구성했다.

그 세부를 보면, 1981년 시작된 부산청년비엔날레에 그 뿌리를 두고 있는 국제현대미술전은 전시에서 「고도(孤島)를 떠나며」라는 주제로서 동일자로서의 세계관으로부터 다양성이 공존하는 세계관에로의 인식의 전환을 꾀했다. 이영철, 후한 루, 로자 마르티네즈가 공동 기획한 것으로서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공동 큐레이팅제를 도입한 점이 특징이다. 전시는 큐레이터들이 선정한 국내외의 60여 명의 작가 외에 톰 반 블리트가 단독 기획한 40여 점의 싱글 채널 비디오를 포함하고 있다.

그리고 국제바다미술제는 1987년 프레올림픽 문화행사에, 국제야외조각심포지엄은 1991년 부산야외조각대전에 각각 그 기원을 두고 있다. 다른 전시에 비해 부산의 지역적 특수성을 반영한 국제바다미술제는 국제현대미술전의 본전시와 함께 부산국제아트페스티벌의 사실상의 주요 행사로서 인식되고 있다. 그리고 국내외에서 초대된 작가 12명이 약 2개월간 현장에서 작품을 제작한 것으로서 국가 간 상호교류의 가능성을 모색한 국제야외조각심포지엄에서 작품은 전시가 끝난 후 야외조각공원에 영구 전시된다. 

한편, 국제미술학세미나는 각 변화된 미술의 지형도, 가상현실에 대한 비평적 접근, 바다 조형 인간, 한국현대미술의 근대성과 그 이후, 현대미술과 새로운 패러다임의 미학, 그리고 PICAF 2000과 부산 미술의 내일을 주제로 상정함으로써 동시대 미술의 정체성으로서 미디어아트 담론을, 바다의 장소적 특수성이 갖는 조형적 가능성을, 그리고 현대미술 속에서 부산 미술의 위상을 묻고 있다. 

본 행사의 중심이랄 수 있는 국제현대미술전에 대해 큐레이터 이영철이 부산청년비엔날레의 실험성과 진취성을 이어받고 있음을 밝힌 것에 비해, 강선학은 지역 미술인이 자발적으로 탄생시킨 비엔날레라는 고유의 정체성을 살리지 못했음을 지적하는 상반된 견해를 내놓고 있는 점이 흥미롭다. 지역적인 특수성과 탈지역적인 동시대의 경향을 조율하는 현명한 접근이 요구된다. 이와 함께 강선학은 동영상과 설치의 혼합으로 요약되는 광주비엔날레나 미디어시티서울과 변별력이 없는 점을 들어 국제현대미술전의 키워드인 현대성과 국제성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기억에 남는 전시로, 2008년 9월 현대미술전(전시감독 김원방, 공동 큐레이터 톰 모튼, 낸시 바튼, 마이클 코헨, 게스트 큐레이터 아주야마 타카시, 프랑신 메울)이 25개국 92명의 작가가 참여해 부산시립미술관과 수영요트경기장에서 열렸다. 특히 <낭비, 항상 이미 지나치기 때문에>로 설정된 주제는 전시가 열리기 전부터 여러 면에서 관심을 끌었는데, 그 주제가 비엔날레로 대변되는 전시시스템에 대한 비판과 반성적 성찰을 암시해주기 때문이다. 실제로도 비엔날레 무용론까지 공공연하게 제기되는 터라, 그 주제가 암시하는 의미는 상당한 설득력을 갖는 한편 은근한 기대감을 갖게 하는 것이었다. 

주지하다시피 전 세계적으로 비엔날레는 현재 다만 그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대개는 제3세계의 지역적인 특수성에 그 초점을 맞추는 것이 하나의 경향처럼 자리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정작 이를 통해 생산되는 산물이나 이를 바탕으로 한 담론을 보면 의구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제3세계란 것이 서로 어슷비슷한 근대화의 과정을 거친 탓에 그 역사적 경험이 개별적 경험에 머무르지 않고 보편적인 경험으로 귀속되고 마는 맹점을 떠안고 있는 것이며, 나아가 그 발상, 그 관점 자체가 이미 후기 식민주의적 혐의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허점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쉽게 말해 비동일성을 내세우지만 결국에는 동일성의 논리로 귀속되는, 차이를 주장하면서도 종래에는 보편성의 원리에 통합되고 마는, 나아가 단순한 차이들의 열거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이 되기 쉽다는 말이다. 

감독 자신도 밝히고 있듯 낭비라는 개념은 조르주 바타이유에게서 빌려온 개념으로서, 단순히 비엔날레로 대변되는 전시관행에 대한 문제의식을 제기하는 이상의, 더 본질적인 지점(이를테면 문명사적인 어떤 관점)을 향한다. 적어도 감독은 바타이유가 이 개념을 고도로 제도화된 사회의 관성에 대한 일종의 대립항으로서 설정했다고 본다. 이를테면 형이상학, 진리와 진실, 제도와 관습, 도덕과 윤리 등 일체의 의미를 생산하는 시스템에 대한 대척점으로서의 살인과 폭력과 린치, 소비와 소진, 퇴폐와 악과 추, 에로티시즘과 죽음 등 일체의 무의미한 행위(그러므로 의미로 축조된 세계를 무력화하는 행위)를 내재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통해 생산 지향적인 세계에 대해 놀이를, 의미론적 세계에 대해 무의미를 대립시키는 것이다. 

거칠게 말해 아무런 의미 있는 것도 제시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명처럼 읽히고(의미화한다는 것은 결국 제도화의 관성에 복무하는 것이므로), 더불어 이를 통해 쾌락의 순수한 의미를 묻는다는 것이 이 주제의 핵심인 것 같다. 그런데 인간의 지성은 아무리 의미 없어 보이는 행위, 지리멸렬한 행위에서마저 끝내 의미를 찾아내고야 마는 관성을 가지고 있음을 생각할 때 그 기획은 논리적으로는 가능할지 모르나 실제로는 실현 불가능하다는 결론이 도출된다. 그리고 감각적 쾌 역시 이에 대한 순수한 경험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생각이다(우리 모두 이미 언제나 충분하고 과도할 정도로 제도의 수혜자들이며, 따라서 순수는 이상일 수는 있어도 일상일 수는 없다). 
낭비, 쾌락, 소모, 허비, 무의미, 덧없음, 지나침, 과도함, 잉여와 여분, 과잉과 포화, 죽음과 에로티시즘, 악과 추, 도발과 퇴폐의 순수한 의미를 겨냥한 주제 그대로 전시로 옮기기에는 주제가 지나치게 열려있고, 지나치게 광범위하고, 지나치게 포괄적이다. 낭비라는 주제를 어떻게 전시로 옮길 수 있는지와 관련한, 낭비라는 (탈)문명사적 개념을 어떻게 자본주의가 첨예화된 지금 여기에 이식시킬 수 있는지와 관련한 문제의식을 과제로 남겨놓은 것이 성과라면 성과일 수 있겠다. 

그 연장선에서 2016년 전시 또한 주목되는데, 90년대 이전의 자생적 로컬 아방가르드 시스템과 90년대 이후 글로벌 비엔날레 시스템과의 관계를 통해 전시형식으로서의 비엔날레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제기했다. 부산시립미술관에서 열린, 한중일 3개국 5명의 큐레이터가 참여해 60-80년대 한중일의 자생적 실험미술인 아방가르드를 조망한 전시 <프로젝트 1 아시아 아방가르드>가 기억에 남는다. 최근 수년 내에 한국의 아방가르드 미술이 미국의 뉴욕 현대미술관 모마에 진출해 세계적인 주목을 받은 것과 맞물려 그 의의를 더하고 있다. 

그리고 고려제강 수영공장에서 열린 <프로젝트 2 혼혈하는 지구 다중지성의 공론장> 전시가 주목되는데, 그동안 임시창고로 사용해온 폐공장을 복합문화공간(F1963)으로 재생한, 재생과 친환경이라는 생태 개념과도 맞물리는, 도시재생과 구도심 문화 재생사업을 전시를 위한 개념으로 도입한 의미 있는 사례로 생각된다. 미술관 중심의 화이트큐브 전시와는 판이한, 더 역동적이고 가변적인 전시 뷰로 인해 전시공학적으로도 성공적인 사례로 기억된다. 


부산현대미술관. 세계적인 철새 도래지로 유명한 을숙도생태공원에 자리한 부산현대미술관은 2018년 개관했다. 서부산권 문화 지형 개발과 함께, 원래 비엔날레를 위한 전용관으로 구상 설계된 것인 만큼 현대미술을 위한 최적화된 전시 및 공간환경을 가지고 있다. 자연과 뉴미디어 그리고 인간을 주요 의제로 설정했는데, 중장기적으로 현대미술을 매개로 한 자연 친화적이고 환경친화적인 밑그림을 그리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프랑스 출신 식물학자 파트리크 블랑이 설계한, 수직 정원을 조성한 건물 외벽으로도 유명한데, 그 자체 미술관의 성격을 표상하는 외관으로 봐도 좋을 것이다. 현대미술 중 특히 뉴미디어 중심을 표방하는데, 미술관 전체 소장품 중 영상과 뉴미디어를 포함한 작품이 75% 이상을 차지하고, 그나마 2000년 이후 제작된 작품이 90% 이상을 차지하는 것에서 동시대성을 표방하는 미술관의 방향을 엿볼 수 있다. 

지역작가 조명과 미술사적 전시 및 사료 연구 그리고 소장품 관리와 같은 어느 정도 미술관 본연의 역할에 충실한, 그렇게 체제 안정적으로 갈 수밖에 없는 부산시립미술관과 함께, 생리적으로 역동적이고 가변성이 강한 현대미술을 위한 전시를 도맡아 부산 현대미술을 견인하는 축(굳이 비교하자면, 인천아트플랫폼과도 같은)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아트부산. 최근 수년 내에 부산은 적어도 양적인 면에서만 보자면 아트페어 붐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각종 아트페어가 활발한 편이다. 전통적으로 부산화랑협회가 주관하는 부산국제아트페어와 부산미술협회가 주관하는 아트페어 등 여럿이 있지만, 그중 아트부산이 단연 돋보인다. 2012년에 처음 시작한 이후, 2018년부터는 예술 가구를 중심으로 한 디자인아트부산을 병행하고 있는 아트부산은 비교적 후발주자임에도 국내 최고의 미술시장인 키아프와 수위를 다툴 만큼 급성장했다. 단순한 추정이라기보다는 예술경영지원센터에서 최근 수년 내에 실시한 평가 등급으로도 확인되는 부분이어서 신뢰가 가는 편이다. 

그렇다면 이 경쟁력은 어디서 어떻게 유래하는가. 말할 것도 없이 우수한 작가와 화랑과 컬렉터를 유치하는 것이 관건이지만, 여기에 전문적이고 투명한 경영이 경쟁력을 뒷받침하고 있다. 아트 바젤과 프리즈 등 세계 정상급 아트페어들처럼 협회 또는 지자체가 아닌 민간법인이 행사를 주관하고 있고, 아마도 이런 경쟁력이 가능해지는 결정적인 지점이라고 해도 좋다. 문턱이 너무 높다는 일부 화랑들의 불만에서도 엿볼 수 있듯 회원 작가나 협회 소속 화랑들의 눈치를 볼 일이 없고, 철저하게 이익과 경쟁력만을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부산의 지역적인 특수성을 적극 활용 하는 면도 눈에 띄는데, 전시가 열리는 벡스코 인근에 부산시립미술관과 F1963(구 고려제강 수영공장을 재생해 오픈한 복합문화공간)이 있어서 최근 수년 내에 문화 벨트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 그렇다. 그리고 해양과 휴양도시의 이미지와 함께, 영화의 도시 부산의 도시 이미지에 맞춰 예술영화 상영과 같은, 필요하다면 미술관과 같은 다른 기관과의 연계 프로그램을 마련한 것도 성공의 비결로 보인다. 


레지던시/ 대안공간. 대안공간 역시 부산 현대미술을 견인하는 전초기지 역할을 한다. 전통적으로 홍티아트센터와 같은 공간들이 있지만, 그중 오픈스페이스배가 대표적이다. 2006년 3월 기존 대안공간인 아트 인 오리 출신 작가들을 중심으로 부산 기장군 일광면 삼성리 일대에 개관했다(부산현대미술관의 김성연 초대 관장이 대안공간 오리 출신 작가이기도 하다). 개관하면서 오리라는 명칭을 배로 개칭했는데, 아마도 일대에 배 밭(과수원)이 있어서 붙여진 이름일 것이다. 이후 해운대로 이전했다가, 현재에는 부산 중구 중앙동에 다른 대안공간들과 함께 콤플렉스를 이루고 있다. 지금은 없어진 반디와 함께 부산지역을 대표하는 대안공간으로 자리를 잡았다. 신진작가지원사업과 국제 레지던시 교환 프로그램과 같은 대안공간의 기본적인 기능과 함께, 국내외 타 지역 대안공간과 전시 교환 프로그램이 활발한 편이다. 지역주민이 참여하는 지역 커뮤니티 활동과 함께 전시도 활발한 편인데, 비엔날레에 대한 대안을 제시한, 행사 종료와 함께 일본 트리엔날레에 초대 전시되기도 했던 무빙비엔날레(2014)가 기억에 남는다. 
    

부산형상미술. 부산형상미술을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작가가 안창홍이고, 그보다 먼저 부산 공간화랑을 언급하지 않을 수가 없다. 신옥진 대표는 부산시립미술관을 비롯한 유수의 미술관에 소장작품을 기증한 것으로도 유명한데, 부산시립미술관에서는 특별히 작가 초상을 제작해 그 뜻을 기리기도 했다. 1975년 3월 부산시 중구 광복동에 공간화랑 다실이라는 이름으로 개관했고, 1985년 11월 부산진구 부전동으로 옮겨 부산 공간화랑으로 개칭한 이후, 몇 번의 이사를 거쳐 2001년 현재 부산 해운대구 우동에 정착했다. 1989년부터는 지역 신진작가 후원을 위한 부산청년미술상을 제정 운영해오고 있기도 하다. 

공간화랑은 각 1981년과 2011년 두 차례에 걸쳐 안창홍 개인전을 연 적이 있고, 안창홍은 그 전 1976년에 이미 안창홍 정복수 2인전을 부산 현대화랑에서 개최한 바 있다. 당시 전시된 작품을 보면, 위험한 놀이와 새 연작으로서, 아이들의 전쟁놀이를 통해 폭력적인 정치적 현실을, 그리고 눈이 타버린 불구의 새를 통해 무기력하고 암울한 현실을 세기말적 풍경으로 그려낸 것이었다. 작가에게 눈은 현실 인식을 위한 창을 의미하는 것인 만큼 시대적이고 사회적인, 그리고 여기에 존재론적인 상징적 의미를 내포하는 편인데, 1981년 공간화랑 전시에 출품된 가족사진 시리즈에서는 가족사진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눈이 하나같이 훼손돼 추락하는 가족 공동체(그리고 사회 공동체)와 함께,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억압적인 현실을 암울한 비전으로 표현한 것이었다. 

대략 1990년대, 그리고 빠르게는 1980년대 들어서 부산 형상미술이 형성된 것으로 보는데, 그 형성 배경에는 분명 이 전시가 퍼트린, 마치 불안을 예고하고 있는 것도 같은 불안정한 현실 인식이 그려낸 그로테스크한 비전이 영향을 미쳤고, 이로써 최소한 부산 형상미술을 예비한, 그러므로 전사에 해당하는 전시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지금의 시각에서 유추해 보면, 안창홍(불안한 현실과 불구의 현실을 대비시킨)과 정복수(창자의 추억)를 비롯해, 정진윤(극화된 현실), 최석운(소시민의 풍자), 방정아(소시민의 해학), 김춘자(성의 경계를 넘보는 꽃), 김난영(공공연한 성), 김승룡(편집광적이고 신화적인 현실), 그리고 이태호(포지티브로 표현된 사물과 네거티브로 표현된 사람을 대비시켜 물신 사회에서의 인간소외 현상을 표현한) 같은 일군의 작가들이 부산 형상미술로 범주화될 수 있을 것이다. 
국내적으로 1980년대는 민중미술(현실참여미술)이 지배적인 현실이었고, 민중미술과 이념을 같이 하면서도 형식적인 면에서 뚜렷하게 구별되는 차별성을 견지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환상적인 요소와 현실적인 요소를 날실과 씨실 삼아 긴밀하게 직조해내는 식의 지역적 양식을 보여주고 있다고 해도 좋다. 민중미술의 지역적 특수성을 반영한 버전이라고 해야 할까. 참고로 2020년 부산시립미술관에서 관련 학술 세미나(부산, 형상미술)가, 2021년에는 관련 전시(거대한 일상, 지층의 역전전)가 개최된 바 있다. 여기에 2021년 강선학의 평론집 <한 도시의 급진성 혹은 진정성-부산형상미술>을 통해 후학들의 후속 연구에 지침을 마련해놓고 있기도 하다. 


울산시립미술관. 2022년 1월 울산시립미술관이 개관했다. 웬만한 지자체들마다 시립미술관이 있는 것을 생각하면 개관이 한참 늦은 편이다. 뒤늦은 만큼 다른 미술관과의 차별성을 의식할 수밖에 없었고, 미술 풍토에 대한 시대적 변화와 더불어 산업도시 울산의 지역적 특수성을 반영해 미디어아트로 특화된 전문 미술관으로 그 방향이며 성격을 정했다. 초대 관장으로 백남준 미술관 관장을 지낸 서진석을 개관 이전 단계에서부터 미술관 준비 단장으로 초빙해 그 초석을 다졌다. 개관 이후 미디어 전문 미술관으로 특화된 방향 설정이 시립미술관 본연의 위상과 기능에 충실해야 한다는 요구와 충돌이 있었고, 그 와중에 2년 임기를 마친 관장이 부산시립미술관 관장으로 옮겨간 상태다. 크게는 장르 중심으로 특화된 미술관과 주제 중심으로 특화된 미술관을 생각해볼 수 있지만, 어느 경우이건 특화된 미술관이 생각만큼 쉽지 않음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생각된다. 

참고로 미디어아트로 특화된 미술관은 그 성격이 기왕의 미술관과는 다를 수밖에 없다. 소장품 관리와 전시 그리고 교육을 미술관의 핵심 기능이며 역할로 본다면, 이런 모든 면에서 그 성격이 판이할 것이다. 미디어아트의 상당 부분은 비물질 형태로 존재하고, 작품의 한정마저 불분명한 경우가 많다. 이를테면 웹아트나 넷아트에서처럼. 그리고 여기에 원본과 카피 문제에 이르기까지. 따라서 자연스럽게 아카이브 중심의 미술관 체제가 만들어질 개연성이 높고, 실제로도 그렇게 되어야 한다. 중장기적으로는 관객참여와 상호작용성과 같은 미디어아트와 관련한 주요 미술 행위가 가상현실에서 이루어지는 행태, 그러므로 미술관 없는 미술관의 형태로 가야 한다. 현재 미완의 프로젝트로 남겨진 미디어아트 전문 미술관의 실현 가능성과 지속 가능성에 대해서는 향후 그 추이를 지켜볼 일이다. 

태화강국제설치미술제. 2007년 울산시가 광역시로 승격한 지 10주년이 되는 해에 맞춰 태화강국제설치미술제가 창설되었다. 처음에는 태화강 변을 따라 전시가 열리다가, 이후 2015년부터는 울산광역시 중구 태화강 대공원 일대에서 열리면서 현재에 이르고 있다. 매년 임용된 예술 감독 체제하에 주제를 정하고, 그 주제에 맞춘 학술 세미나와 전시, 두 축을 중심으로 행사가 이루어지고 있다. 매년 주어진 주제는 다르지만, 대개 자연미술과 생태 미술, 공공미술과 도시재생 프로젝트와 같은 미술의 공공성으로 귀결된다. 세계적으로 난민 문제를 불러일으킨, 터키 해변에 잠든 것처럼 죽어있는 거대한 난민 아기를 폐목으로 재구성한 살리 코스쿤의 작업이 기억에 남는다. 정치 사회적 현실과 함께 사회생태학을 실현한 작업으로 보인다. 

국내에서 열리는 유사 설치 미술제로는 국내 최고의 금강국제자연미술비엔날레(야투), 매해 한 겨울에 열리는 겨울대성리전(바깥미술회), 원래 부산비엔날레의 원조이면서 현재 행사의 중요한 한 축으로까지 성장한 부산국제바다미술제, 그리고 과거 대구현대미술제의 정신을 계승 발전시킨 강정대구현대미술제가 있고, 여기에 그 결이 좀 다른 경우로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를 벤치마킹한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가 있다. 

참고로 독일 북부의 작은 마을 뮌스터는 1977년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가 처음 열리면서 이후 세계적인 명소로 자리 잡았다. 매 10년 주기로 열리는 행사 철이 되면 전 세계에서 몰려온 예술가와 관광객 그리고 도시주민이 어우러진 축제 한마당이 펼쳐진다. 경제적인 이익도 이익이지만, 문화적 인프라와 같은 눈에 보이지 않는 이익은 돈으로 환산할 수조차 없다. 태화강국제설치미술제 역시 이런 현대미술의 전초기지로 발돋움할 수 있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중장기적 안목과 지원이 뒷받침되어야 할 것이다. 


울산국제목판화비엔날레. 2012년 울산국제목판화페스티벌로 시작해 2019년 울산국제목판화비엔날레로 개명한 이후 현재에 이르고 있다. 원래 한중일 3국을 중심으로 시작했지만, 이후 점차 참여 국가를 다양화함에 따라 참여 작가 수도 덩달아 확장되는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동양에서는 전통적으로 판화 하면 목판화를 의미했고, 그만큼 목판화가 강한 편이다. 여기에 목판화로 특화된 비엔날레는 세계적으로도 그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것인 만큼 향후 세계적인 전시 행사로 발전할 수 있는 개연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레지던시/ 대안공간. 현재 울산에서는 1960년대 석유화학단지 조성 시기 남구 매암동 철거민들이 이주해 정착한 신화마을(남구 야음동 신화마을 174번지), 옛 고래 포구로 유명한 울산 장생포창작레지던시, 그리고 울산북구예술창작소 감성갱도 2020과 같은 창작공간이 활발한 편이다. 도시재생사업으로 용도 변경된 경우로서 다공성의 도시(발터 벤야민의 개념으로, 신도시와 구도시가 어우러진 도시)를 실현하는 것과 함께, 울산 현대미술을 견인하는 또 다른 한 축으로서 기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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