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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자크 상페, 여백이 있는 그림

고충환

전 세계 어린이 독자를 사로잡았던 꼬마 니콜라의 아버지, 전 세계 어른 독자들을 사로잡았던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좀머 씨 이야기>에 삽화를 그린 화가, 프랑스가 낳은 세계적인 일러스트레이터 장 자크 상페 특별전(고양 아람누리미술관)이 아시아 최초로 열렸다. 이후 원화 반출을 금지한다고 하니 작가의 원화를 접할 수 있는 기회로는 이번이 마지막이지 싶다. 사실을 말하자면 필자는 <좀머 씨 이야기>를 통해서 상페를 처음으로 만날 수 있었고, 그나마도 책에 삽화를 그린 화가가 다름 아닌 상페라는 사실을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다. 혹 이러저러한 기회를 통해서 꼬마 니콜라의 존재는 스쳐지나가듯 접했던 것 같다. 여하튼 이런 일천한 만남에도 불구하고(참고로 필자는 롤랑 바르트의 저작 이미지와 글쓰기를 통해서 역시 프랑스 출신 유머작가인 레몽 사비냑을 상페보다 먼저 알고 있었다) 니콜라에 관한한 전혀 낯설지가 않았고, 그러면서도 그의 아버지가 상페라는 사실을 이번 기회에 새삼스럽게, 그리고 뒤늦게 확인할 수가 있었다.

상페의 그림은 만화와 만평과 삽화를 아우른다. 서사적인 줄거리를 따라 그림이 전개된다는 점에서 그렇고(만화), 한 컷의 그림 속에 대개는 시사적인 주제가 함축적으로 표현된다는 점에서 그렇고(만평), 따로 마련된 텍스트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그림이 첨부된다는 점에서 그렇다(삽화). 작가의 그림은 이 가운데 특정 경향으로 한정된다기보다는 자유자재로 그 경계를 넘나든다. 그러면서도 굳이 그 지배적인 경향을 따지자면 한 컷 속에 함축적인 그림과 최소한의 텍스트가 어우러진 만평의 형태를 취하면서, 이렇게 모인 컷들이 하나의 주제 아래 시리즈로 묶이는 형식을 띤다. 말하자면 한 컷 한 컷이 어떤 부수적인 기능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 자족적인 구조와 독자적인 존재를 획득하고 있는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 꽤나 긴 텍스트가 따라 붙는 때도 있지만, 대개는 텍스트 없이 그림 자체만으로 제시되는 경우가 많다. 이처럼 그림이 함축적이려면 당연히 남다른 주의력과 상상력이 요구되기 마련이다. 그림 자체만으로 텍스트에 해당하는 의미를 암시하고 전달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소시민의 소소한 일상을 그리다
그렇다면 상페는 자신의 그림 속에 어떤 주제를 함축하고 어떤 의미를 전달하는가. 그는 다른 만평들에서처럼 정치적인 이슈와 같은 거대담론에는 별반 관심이 없는 듯하다. 그의 관심은 현실의 층위에 속해 있으되 그 현실은 시대적 요청이나 당위를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그저 별 볼일 없는 소시민의 소소한 일상에 가까운 것이고, 미시담론이나 개인적인 서사에 밀착된 것이다. 그의 그림이 광범위하게 읽히고 널리 사랑을 받는 이유다. 소시민의 일상 곧 나의 일상에 그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이며, 그래서 쉽게 공감하게 하는 탓이다. 그의 성향은 무엇보다도 소시민적이다. 그의 시선은 소시민의 일상을 관찰할 때 예리해지고, 그 일상으로부터 발견된 모순을 내치기보다는 감싸고 보듬는데서 따뜻해진다.

한 여자가 집안청소하고 빨래하고 옷을 곱게 차려 입은 연후에 집을 나선다. 그리고 장을 보고 가판대에 들러 신문을 사고 종종걸음으로 귀가한 연후에 신문을 본다. 주부의 일상을 그린 이 그림에서 그녀가 모처럼 단장하는 이유는 장을 보기 위해서다! 단조롭고 반복적인 일상과 그녀가 신문을 통해 접하는 복잡한 세상이 부닥치면서 역설의 미덕이 생겨난다(모든 것이 복잡해). 세상은 복잡하게 돌아가지만 정작 쁘띠부르주아의 일상은 심심하리만치 정적이다. 대저택에서 TV 퀴즈쇼에 열중하는 중년부부 뒤쪽으로 연장된 실내가 그네들의 공허함만큼이나 크고 황량해 보이고, 퀴즈쇼의 드라마틱한 상황이 드라마틱하지 않은 일상과 대비되면서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여운을 남긴다. 어쩌면 퀴즈쇼는 가상현실에 속한 것일지도 모르고, 퀴즈쇼에 열중하는 부부는 현실로부터 도피하게 해주는, 소시민이 선택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돌파구에 열심인지도 모른다(모든 것이 복잡해).

세상은 복잡하지만 정작 그의 일상은 단조롭고 심심하다. 공허하고 고독하다. 어쩌면 그는 세상에 관심이 없는지도 모르고, 오히려 자신의 고독과 마주하는 시간에 그의 유일한 그리고 진정한 관심의 초점이 맞춰져 있는지도 모른다. 그가 보기에 세상은 터무니없을 만큼 복잡하고 우스꽝스러울 만큼 진지하고 필요 이상으로 내모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 강박의 와중에서 자기 자리를 찾을 수가 없다고 느끼는지도 모른다. 몸은 비록 세상에 속해져 있지만 정작 그의 의식만큼은 세상 밖을 향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세상의 강박과 개인의 자기소외!

한 남자가 풀장에 발을 담그고 앉아 있다. 크고 작은 주택들에 빼곡하게 둘러싸인 풀장이 딸린 대저택의 남자가 부감법으로 내려다본 시점 탓에 실제보다 더 왜소하고 더 고독해 보인다(사치와 평온과 쾌락). 그리고 네온으로 휘황한 거리 뒤편 어둠 속에서 자신의 쪽방에 불을 밝히고 있는 남자가 빛과의 대비로 인해 더 어둑하고 더 고독해 보인다(가능한 사람을 구하라). 작가의 그림은 이처럼 현란함으로 유혹하는 세상과 개인의 고독한 일상을 대비시키는 것에서, 개인의 공허와 고독을 공간적 크기로 환치시키는 것에서 그 기지를 발한다. 그는 자신에 갇힌 만큼 곧잘 착각에 빠진다. 인사하는 남자를 떠나보내며 그의 초상사진을 손으로 찢는 여자 그림에서 기대에 들뜬 남자의 눈웃음과 무심한 여자의 담배연기가 대비된다(겹겹의 의도). 그는 이처럼 착각도 잘하고, 때로 실수에 마저 너그럽다. 광장을 가득 메운 군중들 앞 단상 위에서 어제 저녁 뉴스를 못 본 탓에 군중들이 왜 모였는지, 자신이 왜 여기에 서 있는지, 그래서 자신이 무슨 말을 해야 할 지 종잡지 못하는 정치인이 그렇다. 무심하거나 무심한 척 하기!

그는 이처럼 자신에 갇혀있고 곧잘 착각하고 때로 실수를 하지만 그래서 오히려 더 그의 일상은 아름답다(아름다운 날들). 가구를 보러 왔다가 그만 전시된 소파에 누워 잠이 든 여자와 그 여자를 물끄러미 지켜보는 남자! 무슨 정신분석의사와 최면에 걸린 피분석자의 정황을 보는 것 같은 느낌? 노아의 방주에 선승하기 위해 황급하게 청혼하는, 늑대 같은 남자와 여우같은 여자 커플에서는 삶의 꾀바름을 들킨 것 같아 멋쩍은 웃음이 묻어난다(가능한 사람을 구하라).

상페는 유머는 곤경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우리가 일시적인 궁지에서 빠져나오는 방법을 제공한다고 했다. 우울함과 향수 역시 삶의 일부분이며, 마치 와인 병마개를 열면 와인 향기가 사라지듯 현재의 행복한 순간조차도 분명 서글픈 순간이며, 삶이란 그런 것이라고도 했다. 그리고 자신의 작품이 현실적이지만 시사적인 것을 피한다고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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