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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근병 / 비데오크라시

고충환

육근병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가 모니터 속에서 깜박거리는 눈이다. 모니터를 문명화된 시대에 걸 맞는 일종의 미디어 눈으로 본 것이다. 자신은 카메라를 통해서 세상을 본다고 한 사진작가도 있지만, 아마도 육근병은 자신이 모니터를 통해서 세상을 본다고 생각할 것이다. 모니터 속에서 깜박거리는 눈은 재차 봉분 속에 담기고(1992 카셀 도큐멘타), 원통형의 철제 프레임 속에 실리고(1995 리옹 비엔날레), 치렁치렁한 전선다발과 함께 나무처럼 자란다. 봉분 속에서 깜박거리는 눈은 삶과 죽음이 순환하는 존재의 섭리를 상징하고, 원통 속에서 깜박거리는 눈은 파노라마처럼 흐르는 인류의 역사를 헤아린다. 그리고 나무처럼 자라는 미디어 눈이 자연과 문명의 조화며 상생(혹은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상생?)을 떠올리게 한다. 그런가하면 대개의 경우에 여기에 퍼포먼스가 부가되는데, 그에게 퍼포먼스는 살풀이며 푸닥거리처럼 보인다. 

2013년 뉴욕의 UN본부 외벽에 설치할 프로젝트에서도 역시 이런 미디어 눈이 작업의 축이 될 터인데, 현재 190여 개 국가들을 순회하면서 현지 어린이들의 눈(미디어 눈)을 채집 중이다. 널리 알려진 것처럼 UN은 세계평화를 상징한다. 아마도 진정한 세계평화를 위해선 순진무구한 어린아이의 눈으로 세상을 보라는 주문이 담겨질 것이다. 이처럼 미디어 눈은 작가가 세상을 보는 창이며, 시공을 넘어선 심안 곧 마음의 눈에 대한 표상이며 메타포 랄 만하다. 

삶과 죽음의 순환이며 역사를 헤아리는 눈, 자연과 문명의 상생이며 세계평화를 기원하는 눈에서 감 잡았겠지만, 작가의 주제의식은 다분히 거대담론에 가깝다. 다큐멘터리와 상징형식을 결합시켜 강력하면서도 은유적인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이번 전시의 주제인 비데오크라시 곧 비디오 정치 역시 그러한데, 그에게 정치는 폭 넓은 의미에서의 한을 의미하고, 한은 살풀이며 푸닥거리로 와 닿는다. 존재의 역사를 파고들고 자연과 문명의 차이를 봉합하는 프로젝트며 실천논리가 바로 정치이며 한이다. 그리고 역사는 신화시대로 소급되고, 그로부터 작가는 세계 4원소설에 연유한 흙(인류의 발자취), 물(흐르고 순환하는 물), 불(메신저의 메시지, 프로메테우스? 문명의 폭력? 정화?), 공기(바람에 흔들리는 커튼)의 원형적인 의미소들을 캐낸다. 

본다는 것은 그저 보는 것이 아니다. 보면서 동시에 생각하고 판단하고 때로는 오지도 않은 미래를 예기하기조차 하는 총체적 행위이다. 그렇게 작가의 미디어 눈은 세계를 보고 존재의 원형적 이미지를 꿰뚫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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