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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은숙 / 렌즈훌라

박영택

렌즈훌라


파편화되어 흩어지는 이 작은 그림들은 벽 전체로 파생되어나간다. 크기의 차이에 따른 그리고 높낮이의 변화에 따라 기존 화화 감상과는 조금 다른 어질한 감각을 안긴다. 전체가 아닌 부분에 주목하는 시선이 훑어나가듯이 관찰한 것은 도시풍경, 그러니까 특정 공간의 디테이들이다. 젊은이들의 주로 모이고 서로가 서로를 탐닉하는 시선들이 끈적거리는 혹은 무심히 미끄러지는 장소, 다름아닌 클럽이나 까페, 커피빈, 노래방, 특급 호텔의 바 등이다. 간혹 고급 스시집, 회전초밥집도 있다. 그곳은 작가가 개인적으로 다니고 접하고 공간이자 일상이 이루어지는 곳, 세계에 대한 정보를 얻는 곳, 가장 볼거리가 많은 곳, 시선이 교차하는 곳이다. 그곳에는 가장 이상적인 모습들이 감각적으로 배치되어 있다. 실내인테리어가 그렇고 그곳에 모인 이들의 세련되고 ‘시크’한 패션과 화장, 악세사리, 구두와 가방 그리고 그것들과 한 쌍을 이루는 명품 몸매들이 고른 치아처럼 놓여있다.어쩌면 그 몸들도 주변 인테리어나 소도구들과 구분 없이 녹아있다. 아마도 오늘날 젊은이들은 까페나 커피빈과 같은 곳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고급브랜드, 이른바 명품 가방과 구두, 시계와 화장품 광고로 가득한, 신상품에 대한 세세한 정보로 채워진 잡지를 뒤적이며 올 시즌의 패션아이템과 사고 싶은, 마음에 드는 물건들의 목록과 이름을 암기하고 있을 것이다. 그 기억력으로 다시 영어책을 보고 단어를 외우고 토플과 토익 점수 올리기에 여념이 없는 것이다. 그러는 순간 친구들이 오고 그들은 연예인의 사생활과 그들의 패션에 대해 길고 긴 수다를 떨 것이다. 부모에 기생하는 백수의 존재로서, 혹은 88만원세대로서, 대학이나 대학원을 나왔지만 경제적인 독립은 요원한 이들이 이 소비공간에 모여 할 수 있는 일은 잡지에 실린 명품 브랜들에서 자신의 스타일이라고 여기는 상품의 이름과 목록을 외우고 이를 구입하기 위해 아르바이트비용을 어떻게 모을 것인가로 귀결될 것이다. 부모가 돈이 많은 이들은 그런 고민에서비교적 자유로울 것이다. 어쨌든 그들은 자신들이 갖고자 하는 명품 아이템과 가질 수없는 아이템 사이에서 전지구적 고민을 할 것이다.

더러는 셀카를 찍고 누구는 핸드폰으로 문자를 보내고 무엇인가를 살펴보는 데 오후의 긴 시간을 다 써버리고 있기도 하다. 슬쩍 슬쩍 주변 사람들을 훔쳐보기도 하고 마음에 드는 이성의 옷차림과 몸매를 살피기도 한다. 클럽에서는 멍하니 ‘죽’ 때리며 앉아 스테이지에서 춤추는 이들이 몸놀림을 표정없이 바라볼 것이다. 나른하고 권태롭게 말이다. 더러 썬글라스 너머로 써클렌즈 안에서 상대방의 패션과 감각, 취향과 기호, 그리고 그런 것들을 사고 걸칠 수 있는 경제적 능력 등을 환산하면서 머리속이 무척 복잡하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삶의 풍경도 빈부의 격차에 따라 사뭇 다르다. 강북과 강남의 까페나 클럽 분위기나 그곳에 모이는 이들의 자태 또한 다르다. 하여간 이러한 공간들은 동시대 젊은이들의 삶을 규정하는 핵심적 공간이자 그들의 정체성, 감각, 욕망 등을 발원시키는 소비적 공간이기도 하다.전은숙은 그러한 공간을 소요하듯이 바라보고 이를 휴대폰으로 촬영했다. 그리고 그 작은 화면을 ‘소스’로 이를 다시 그림으로 그린 것이다. 당연히 그림은 세련된 인테리어와 반짝이는 실내장식과 조명, 끊임없이 들려오는 음악소리, 소란스러운 분위기, 나른한 관능, 끈적한 시선들이 기이하게 흘러 다니는 공간에 맞게 유동적이다. 물감과 붓질은 흔들리고 대상의 윤곽은 불분명하고 시선, 구도 역시 느닷없는 절취의 프레임으로 보여진다. 그 작은 화면들이 벽면에 흩어져있다. 이 같은 디스플레이는 분산적인 시선과 그로인한 감수성과 욕망의 요동을 흥미롭게 그려가고 있다. 나로서는 전은숙의 그림에서 동시대 소비사회의 공간과 그 공간에 모인 젊은이들의 생태를 무심히 전달해내는 붓질과 시선을 재미있게 본다. 그것은 보들레르식의 도시산책자가 본 ‘현대성’만큼이나 우리시대의 동시대성을 전달해 주는 관찰자의 시선이다.

작가는 만화주인공도 아니고 서양사람도 아닌 아이 같은 이상한 눈동자로 변하는 써클렌즈를 끼고 일상의 공간을 바라본다. 세상을 분명 멀쩡하게 보고 있지만 상대방의 눈에는 사시처럼 눈동자가 궤도를 이탈하는 것처럼 보인다. 단지 써클렌즈가 미끄덩거리는 것이다. 이렇게 미끌거리는 현상을 ‘훌라현상’이라고 한다. 전은숙은 이른바 그 훌라현상으로 도시공간, 소비적 공간을 무심히 그러나 주의 깊게 보았다. 이 표피적이고 인공적인 화려함과 더없이 ‘시크’해보이며 덧없이 부유하는 관능성과 미끌거리는 욕망이 마구 혼재된 곳의 표면을 옮겨 다니고 있는 것이다. 너무 달라붙지도 않고 그렇다고 많이 떨어지지도 않는 거리에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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