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실회화의 새로운 지평
- 박광진화백의 최근 작품과 작가 활동
김달진(가나아트센터 자료실장)
2001년 11월 서울에서 대형 개인전을 준비 중인 박광진화백을 인터뷰하였다. 국내에서는 1976년 미술회관 개인전, 1977년 변화랑 초대전 이후로, 1980년 스웨덴 스톡홀룸 한국문화센터, 83년 LA 삼일당화랑, 85년 뉴욕 한국문화원, 96년 LA 아름화랑, 2000년 11월 파리 유네스코본부 미로홀에서 전시회를 가진 후에 이번에 24년만에 서울전을 마련하는 것이다. 이 해외전은 작가로서의 꾸준한 활동과 파리에서 먼저 전시회를 열어 반응을 타진을 해보려는 생각이 깔려 있었다.
우리의 자연을 충실히 재현한 작품
박화백은 홍익대 재학중인 1957년 6회 국전에서 박물관 진열장을 그린 <국보>로 특선을 시작으로 1963년 추천작가에 오른 순수 국전파이다. 그후 우리나라 명산, 농촌의 초가집, 제주도 풍경 등을 즐겨 화폭에 담아 왔다. 시간과 계절 그리고 풍토와 빛의 분위기를 가지고 한국의 산야를 표현해서, 즉 전체의 분위기 속에서 빛으로 둘러싸인 시각적인 환경을 묘사하는 인상파를 반영하는 작가이었다. 박화백의 작품세계는 초기에 소재주의적 성향이 강한 사실에 충실했지만 마티엘 등 재질의 연구와 나이프를 사용하며 새로운 가능성을 탐구했다. 판자집과 닭장, 토끼장 등을 소재로 비교적 모노톤한 색조와 면의 확대 등으로 단순 구성을 이루었다. 갈색과 연두빛 등 비교적 안정감이 있는 단색의 절제된 작품이었다. 1960년대 중반부터 80년대 초까지 자연을 흠모하는 사실주의에 충실했다. 우리의 자연을 빛에 의한 발랄하고 화사한 색채로 조화시켜 새로운 감각의 자연을 재창조에 몰두한 것이다. 자연의 진실을 정직하게 묘사해내고 그 진수에 접근하려는 시도는 그림에서 곱게 밝아지는 양식상의 변화를 가져왔다. 1980년대 이후 특히 제주도의 한라산, 토담벽, 돌각담, 초가집, 유채꽃, 갈대 등 그곳에 정착하고 싶을 만큼 제주의 풍물을 좋아한 것이다. 그후 자연의 사실을 재해석 기간을 걸쳤다. 장황한 설명이나 광범위한 소재에 시계(視界)를 축소시켜 바위, 계곡, 갈대숲, 잔디밭 등 자연의 한 부분을 집중적으로 드러내는 작업을 특징적으로 구사했다. 이런 작품세계를 미술평론가 이경성씨는 “박광진의 작품을 가장 예술적으로 성공시키고 있는 것은 그의 작품 구석구석에까지 침투되고 있는 광선에 대한 배려이다”로 평한 바 있다.
미술계에서의 활동
박화백은 미술활동을 해오면서 목우회 창립에서 활동, 한국일요화가회 창립, 미술대전에서 구상 비구상 분리 개최 등으로 구상미술 중흥과 미술의 대중화에 기여해 왔었다. 자연주의적 사실을 지향하는 그룹 목우회는 1957년 6월 덕수궁 나무 밑에서 창립되어 이종우, 도상봉, 김인승, 박득순, 박상옥, 손응성 씨 등 17명이 동인이었고, 그 당시 대학 재학생으로 대선배들과 참여하여 10여년간 총무를 맡아 일을 했다. 목우회는 1958년 10월 창립전 이후 한국의 아카데미즘을 이끄는 가장 규모가 큰 사실화가들의 단체로 국전에도 큰 영향력을 행사하였으며 1963년부터 공모전을 개최해오고 있다.
지금은 신문사 백화점 문화센터, 각 대학 미술교육원 등 그림을 배울 수 있는 환경과 기회가 조성되었지만 당시는 그림을 접하기도 쉽지 않았다. 당시 목우회 총무로 있던 박화백이 주축이 되어 순수미술 동호인 그룹의 필요성을 역설해 1965년 한국일요화가회를 탄생시킨 것이다. 이 그룹은 서울 종로1가 종로화방 빌딩 3층에 종로미술연구소에서 우리나라 처음으로 생긴 아마추어 미술인 단체였다. 그렇지만 정치인, 경제인, 언론계, 문화계 인사들을 미술이란 동아리로 묶은 것으로 힘이 실려졌다. 정기적인 스케치대회, 회원전 등으로 미술의 대중화에 관심을 모았다. 미술이 일반 대중에게 가까워지는 지름길은 직접 체험하는 것을 실행시킨 것이다.
박화백이 현대미술을 비구상으로 만 생각하여 위축받던 구상미술 중흥의 기틀을 위해 가을에 개최해오던 대한민국미술대전을 1993년부터 다시 비구상-봄, 구상-가을로 분리 운영을 결정하여 지금 껏 이어지고 있다. 이 일은 당시 시대에 역행한 국전 망령이 되살아난다는 비판까지 받았다. 그러나 미술대학 교육이 비구상 일변도로 나가고 공모전에서 구상미술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는 것을 매우 안타깝게 생각하고 보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또한 구상으로 단단한 기초를 다져야 하는데 비구상에 매달려 기초교육을 소홀히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소신이었다.
한국화단의 외교관
박화백은 한국미협 이사장, 유네스코 산하 IAA(국제조형예술협회) 수석 부회장, 1995년 미술의 해 조직위원회 집행위원장을 역임하였고, 예술의 전당 이사, 국립현대미술관 운영자문위원, 문화관광부 문화비전 2000위원, 국무총리 정책자문위원 등 미술행정에도 많은 관여를 하였다. 미협 이사장 재임시 문화예술진흥법 중 미술관련 조항인 건축물에 미술작품을 건축비의 1% 설치하는 권장사항을 의무사항으로 개정된 것은 박화백의 공로였다. 이 법은 실제로 미술 창작인에게 창작의욕을 북돋아 주었고 예술 환경 조성에 공헌한 바가 크지만 소수에 의한 독점과 수준 낮은 작품 등으로 비판도 받고 존폐가 위협받기도 했다.
박화백은 한국미협 이사장 재임기간 동안에 누구보다 많은 일을 추진했고 업적이 남았다. 우리나라 미술계에 외교관이라고 알려졌다. 1992년 국제조형예술협회(IAA) 제13차 정기총회를 아시아에서 일본에 이어 30여년만에 유치하여 잘 치루어 냈다. 그리고 1994년 개최한 서울정도 600주년기념 서울국제현대미술제는 한국미협이 주최가 되어 언론사와 공동주최로 대림그룹과 관의 후원을 받아 치러낸 대규모 국제적 행사였다. 이 때 박화백이 운영위원장, 프랑스 미술평론가 피에르 레스타니가 총 커미셔너를 맡고 40여개국 79여점, 국내작가 407여점이 초대된 대형 전시회였다. 이어 1995년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개관에도 일익을 담당했고, 프랑스 유네스코 초대로 열린 한국현대미술 50인전도 주관하여 기록될만한 행사였다.
새롭게 달라진 최근 작품
지난 5월 예술의 전당에서 열린 제7회 마니프-서울국제아트페어에 가서 최근작을 보았는데 새롭게 바뀐 작품앞에서 한참을 살폈다. 예전의 사실적인 그림에서 상당부문 추상으로 변화해서 달라진 화면 구성이 눈길을 끌었다. 사실은 나이나 화단에서 위치를 보아 우리 풍토에서는 쉽지않은 변신이었다. 새로운 작품은 1992년 이후 자주 프랑스 쪽을 왕래하며 자연스럽게 시야가 넓어졌다. 구상회화도 시대에 따라 변화의 필요성을 느꼈던 것이다. 지역성을 탈피해 국제적 흐름을 간파한 셈이다. 인간의 추상 본능에도 귀를 기울여야 된다고 느꼈고 현대성이 강한 구상작품을 생각한 필연적인 결과였다. 작가는 사실적인 작품을 지속하며 너무 안일한 작품세계에 함몰하는 것을 경계해야 하는 부분이다.
작가는 스스로 변신의 노력이 필요하다. 아름다운 자연을 그대로 옮기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박화백은 광활한 들판에 서있는 억새풀에서 오묘한 생명력을 찾았다. 그 공간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시도한 것으로 그간 즐겨 다루어온 억새에서 변화가 찾아온 것이다. 억새풀 속에 숨겨진 생명력, 자연속에 묻힌 비장의 혼을 캐내어 하나의 물상으로 표현해내고 있는 것이다. 이는 예술의 기능적 측면보다 형이상학적인 정신세계에 대한 관심이 고조된 것이었다. 새로운 작품들은 구상과 비구상의 공존, 수평과 특히 수직에 의한 엄격한 화면 구조를 보여주고 있으며 특히 수직의 그래픽적 요소가 많아졌다. 박화백이 즐겨 쓰고 있는 붉은 갈색과 녹색 색조는 우리 농경문화, 향토색, 억새와 깊은 관련이 있다.
이에 대해 미술평론가 유준상씨는 “박광진의 공간은 자연과 조형의 종합으로 발전된 기본적인 패러다임을 보여주고 있다. 지표(地表)와 수직으로 짜여지는 공간위상이다. 수직은 지표의 형상이며, 지표는 수직의 소지(素地)이다. 이러한 어우러짐이 게슈탈트의 정태(靜態)가 아닌 자연의 진폭(振幅)을 연상시켜줌은 발생적인 공간과 조형적인 공간의 어우러짐 때문이라고 하겠다. 강가 혹은 해변의 능선에 자생하는 갈대들의 싱그러움은, 밑에서 위로 자라 수직은 발아(發芽)의 현상이며, 수액(樹液)의 변용으로 자라나는 자연의 섭리를 형상화한 것이라고 하겠다. 이것이 자연의 자족적인 공간구성이며 그래서 자연이다. 그리고 이것이 박광진의 자연이기도 하다” 라고 설명했다.
현재 하루 작업이 6 - 8시간 정도지만 앞으로 한계를 10년으로 볼 때에 마무리 단계이다. 이번 개인전에 연연하지 않고, 한국 구상 미술의 새로운 지평을 열겠다는 각오로 임하고 있다. 성공을 보장받기 보다는 최선을 다한 결과가 작품으로 남아 평가를 받을 것이다. 이번 전시에 보여주는 삼차원 공간을 평면화하는 최근 작품들은 시각실험이나 새로운 시도로 끝나지 않고 자연과 인간의 섭리, 그리고 위상을 표현코자 한 것이다. 무한히 펼쳐지는 직선의 배열속에 우리가 미쳐 알지못한 아우성, 생명력, 소망이 담겨져 있다. 지금 박화백은 예술의 정점을 위해 올라선 것이다. 지금 껏 추구해온 사실회화에서 오랜 산고 끝에 새롭게 펼치는 변모된 작품은 시대성을 담고 신선하게 다가오고 있다. 박화백은 진부하고 획일적인 양식이 만연된 우리 사실회화에 새로운 돌파구를 제시해 놓은 발전에 기대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