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함께 떠나는 미술관 여행 2004. 2
김달진( 김달진미술연구소 소장)
몇 년 전부터 방학이 되면 미술관이나 화랑에서 아이들이나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몇몇 전시회를 마련한다. 이는 방학 동안에 주어지는 전시회 감상 과제도 해결해주고 부모님과 전시장을 찾는 관람객이 늘기 때문이다. 특히 겨울방학은 장기간이고 여름철과 달리 자연을 찾아 떠나기보다 달리 몇시간을 투자해 박물관, 미술관, 전시장을 찾기에 적합하다. 자녀들과 손잡고 가볼만한 전시회들이 봇물을 이루고 있는데 이 중에서 몇 전시를 살펴본다. * 북프로젝트전: 사람을 닮은 책, 책을 닮은 사람은 2월28일까지 금호미술관(T. 720-5114)에서 열린다. 13명의 어린이와 44명의 미술가가 책을 주제로 작업한 회화, 조각, 설치, 아트북 100여점을 선보이는 전시로 그림속으로 들어간 책, 물속에 지은 도서관, 책에게 말 걸기 등 세 가지 공간으로 어린이들을 책과 친구로 만들어 주는 전시이다. 소인국이나 거인국에 있을 법한 작거나 큰 책, 달걀껍데기에 깨알 같은 글자를 쓴 달걀책, 천장에 매달아 망원경으로 관찰하는 책 등 재치와 상상력이 넘치는 책들이 전시된다. * 재미있는 반복전은 가나아트갤러리가 매년 방학마다 교육은 반복이며 끊임없는 반복을 통해 독창성이 나온다는 주제 아래 마련된 전시회로 2월8일까지 인사아트센터(T. 736-1020)에서 열리고 있다. 같은 재료를 반복해 사용하거나 같은 기법을 되풀이하면서 창조적 작업을 해온 작가들의 작품을 모았으며 섬세한 공력이 들어간 작품들을 볼 수 있다. 1전시장: 반복 학습실, 2전시장: 무한반복, 3전시장: 춤추는 세상, 특별전시장: 이중공간으로 꾸며졌으며 1전시장에서는 소정의 참가비를 내고 움직이는 조각인 모빌을 만드는데 참여 할 수 있다.
박물관, 미술관, 화랑을 가기전에 신문이나 미술잡지, 또는 각각의 홈페이지를 통해 전시 성격, 교통편, 입장료 등의 정보를 파악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떠나기 전에는 가벼운 복장과 간단한 메모장들이 필요하다. 미술을 전공하지 않았어도, 미술에 특별한 지식이 없어도 미술관이나 화랑을 찾아 다니며 아이의 생각과 꿈을 키워주는 것은 그 자체만도 교육이다. 아이들 눈높이 맞춘 유명한 화가들의 이야기나 미술사에 관련 책들도 쏟아져 나오는데 평소에 관심을 가져 편하게 접해 놓는 것도 좋다. 그리고 미술을 지나치게 어렵다는 선입관이나 사실과 근접하게 잘 그린 것 만이 좋은 작품이라는 편견을 버려야 한다. 미술도 시대에 따라 변화하기 때문이다.
전시관람 에티켓
예전에 비해 문화예술에 대한 체감온도는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방학, 휴일, 주말이면 많은 사람들이 친근한 발걸음이 미술관이나 화랑으로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미술관 예절이나 관람 방식에서 혼란스러워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은 미술관 찾기가 어려서부터 자연스럽게 체화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전시장 예절을 몇 가지 언급하면
* 인솔한 선생님이나 부모의 지시에 따르되 되도록 자유럽게 감상하도록 한다.
* 작품에 손대지 않는다. 일부러 관람자의 동참을 유도한 작품이 아니라면 작품을 손상시키거나 지문 등을 남겨 작품이 훼손되므로 작품은 눈으로 감상해야 한다.
* 큰소리를 이야기하거나 뛰지말아야 한다. 이는 다른 사람의 관람 분위기를 방해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
* 전시장 내에서는 사진 촬영을 하지 않는다. 대개 후레쉬 사용이 작품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금지하고 있다.
간단히 이러한 것들이지만 기본만 지킨다면 특별한 예절이 필요치는 않다. 문화를 공유한다는 것은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 다가서고 상대방의 권리를 배려하면 되는 것이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왼쪽으로 가야 옳은지, 오른쪽으로 가야 옳은지 고민하는데 일반적으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도는게 자연스럽지만 전시장의 구조는 바뀔 수 있으므로 이에 따른다. 그리고 몇 개의 방들로 이어지는 경우는 하나의 주제를 지닌 방을 다 돌고 다른 방으로 이동하는 게 좋다. 그리고 작품 감상은 처음부터 그림 한점 한점을 너무 진지하게 관찰하려고 애쓰지 않도록 한다. 그러면 시간이 흐를수록 흥미를 잃고 마지막 그림 앞에 섰을 때 기진맥진해 있게 된다. 처음에 전시장에 들어서면 가벼운 마음으로 전체를 한번 둘러본다. 그런 다음 인상에 남는 작품 앞에 다시 가보며 그 작품과 좀더 진지한 대화를 나누는 것이다. 필요하다면 그 작품 앞에서 노트를 꺼내 스케치를 해보거나 메모를 하는게 좋다. 작품 앞에서 눈을 감고 잠시 명상에 빠져보거나 상상으로 연계시켜도 좋다. 모든 작품들이 다 좋을 수는 없고 개개인마다 좋아하는 작품 취향이 다르기 때문에 서로 더 좋아하는 작품 앞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 당연하다.
미술관을 통한 교육
성장기 아이들을 가진 요즘 부모들이 가장 관심을 기울이는 부분은 바로 상상력과 창의력이다. IQ보다 EQ가 중요시되면서 창의력을 키울 수 있는 미술교육이 중요시되고 있다. 미술은 시각언어다. 말을 배우듯 시각언어도 많은 작품과 대화를 통해 익혀야 한다. 아는 만큼, 본 만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겨울방학을 맞아 자녀들의 손을 잡고 미술관이나 화랑으로 나들이한다면 큰 돈 들이지 않고도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 아이들에게 보여주는 것만큼 좋은 미술교육이 없기 때문이다. 사실 미술감상은 단체로 일렬로 줄을 서서 작품보다는 앞사람 뒤통수 쳐다보고 나오는 방식을 탈피해야한다. 주최측과 사전 예약으로 한가한 날 오전시간을 이용해 작품 앞에서 설명하고 앉아서 발표하고 토의까지 발전시키는 게 좋다. 단체로 갔다면 자신이 좋아하는 작품을 심도 있게 접하고 난 후, 다 함께 그 작품 앞에 모여서 자신의 느낌을 이야기하게 하고 나중에는 질문을 받는 시간도 갖는 게 좋은 방식이다. 인솔자나 부모는 어린이가 관심을 보이는 작품을 잘 보아 두었다가 그 작품에 대한 감상을 물어보고 흥미를 발전시킬 수 있도록 도와준다. 주머니 사정이 허락한다면 도록이나 팜플릿을 구입하면 작품을 이해하는 길잡이가 되면서 기억을 저장하는 좋은 자료가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작품에 대한 더 많은 지식을 알고 싶은 호기심이 발동하면 그와 관련된 서적을 읽고 공부를 하면 된다. 가능하다면 따라 그리기나 만들어 보는 현장 학습까지 이어지면 좋다. 그렇지 않다면 돌아와서 자신의 느낌대로 그림을 그려보면 유익한데 흥미와 감동이 사라지지 않도록 당일에 이루어 지는게 좋은 방법이다.
좀더 욕심을 부려 본다면 미술관과 화랑의 겨울방학 프로그램에 참여해 보는 것도 바람직스럽다. 영어 수학 등 중요 과목에 많은 시간을 할애 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방학 동안 하루나 이틀 짬을 내 미술의 세계에 흠뻑 빠져보도록 한다. 일생을 좌우할 신선한 자극이 거기 기다리고 있다. 성곡미술관 산하 뮤지엄 교육연구소(T.737-7650)에서는 초등학생을 위한 프로그램을 마련해 운영하는데 확인 후 참여해 볼만하다.
특히 박물관 관람은 자칫하면 지루하고 피곤한 일이 되고 만다. 특히 국립중앙박물관, 국립민속박물관, 서울역사박물관처럼 규모가 큰 박물관의 경우 수많은 유물을 보려면 시간이 오래 걸려 다리가 아픈 데다 무얼 봤는지 머리에 남지 않는 경우가 많다. 준비 없이 무리하게 모든 것을 다 보려고 하기 때문이다. 대규모 박물관을 둘러보려면 한나절은 족히 걸린다. 그 박물관의 대표적인 유물, 아이들의 관심 분야에 맞는 유물을 먼저 본 뒤 나머지는 과감히 포기하여야 하며 1시간이 지나면 아쉬워도 전시실을 나와 휴게실로 가는게 좋다. 또한 아이들이 이해하기도 어려운 설명문을 베끼느라 정신이 없는데 절대 그럴 필요가 없으며 관심 있는 것 몇 점만 골라 흥미롭게 감상하는 것이 좋은 방법이다. 박물관에서는 자원봉사자의 설명 시간에 참여하는 게 큰 도움을 준다. 메모나 부모 생각을 강요하지 말고 스스로 느끼고 생각을 정리하도록 지켜보는 것도 중요하다.
요즈음에는 거의 그림 한 점쯤 집에들 가지고 있는데 미술작품을 이야기하고 큰 경비 부담 없이 찾을 수 있는 미술관 여행은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 줄 것이다.
필자 김달진 씨는 국립현대미술관 자료실 15년, 가나화랑에서 6년을 근무했었으며 현재는 연구소 소장으로 월간 <서울아트가이드>를 발간하며 www.daljin.com을 운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