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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이상용, 어린이의 심상, 경이(驚異)의 세계

윤진섭

경기도 평택에 위치한 이상용(1970- )의 작업실은 가히 ‘상상의 공화국’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만큼 갖가지 작품들로 가득 차 있다. 하는 일이 평론과 전시기획이다 보니 작가들의 작업실을 적잖이 다니는 편이지만, 이곳만큼 다양한 작품들로 가득 차고 잘 정돈된 곳은 보기 어렵다. 그것은 분명 지난 30여 년간 이상용이 그리고 만든 노동의 산물일 터이다. 그림에서 조각, 오브제, 설치, 그리고 상당한 양의 시작(詩作) 노트에 이르기까지, 드넓은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는 각양각색의 작품들이 모두 작가 이상용 개인의 상상의 산물이라니, 그저 놀라울 뿐이다.

그렇다면 이상용은 왜 이토록 집요하게 작품에 파고드는 것일까? 나는 그 이유가 매우 궁금했다. 그러던 차에 나는 작가의 넷째 누이가 쓴 다음과 같은 구절에 눈길이 머물렀다.

“어느 날인가는 동네 청소부인 양 잡동사니들을 다 주워 모아다가 무엇인가를 만들고 있는 그에게 지저분해지는 집안이 싫어 잔소리도 했었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그 일에 몰두하는 모습은 어린아이 같지만은 않았다. 집안 곳곳이 전시장이었던 그 시절이 아마도 그에게는 꿈이 움트던 시기가 아니었나 싶다.”

누이의 회고에 의하면, 작가는 여덟 살의 나이에 갑작스러운 사고로 어머니를 잃은 후, “다섯 누이 밑에서 어렵고 힘든 유년 시절”을 보내야 했다고 한다. 그때 넷째 누이가 본 것은 동생의 미술에 대한 집요한 관심이었다. 그녀의 기억에 의하면 이상용은 유년 시절에 사물을 이용하여 끊임없이 만들고 그렸다. “시골집 널판 마루 밑에 서너 장씩 쌓인 빨랫비누로 조각상을 만들면” 신기한 듯 바라봤으며, 통나무를 이용해 목상들을 만들면 동네 사람들이 보고 눈을 휘둥그레 뜨며 신기해하기도 했다.



이상용, 운명(Fate), 2023, 60×90cm, 알루미늄판 위에 혼합재료


일찍이 나는 이상용을 가리켜 “천진한 어린이의 마음을 간직하고 있는 작가”라고 쓴 적이 있다. 그렇다. 이상용이야말로 50대 중반에 이른 나이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천진한 아이의 시선과 마음을 간직하고 있는 작가임이 분명하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그렇지 않다면 저렇게 내용이 서로 다른 그림들과 오브제, 설치 작업을 오랜 세월 지속할 수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상용은 죽음의 공포를 느끼며 매일 밤 새로운 이야기를 지어내야 했던 아라비안나이트 속의 세헤라자데 왕비처럼, 미술을 운명처럼 받아들이며 지금까지 1만 3,000여 점에 달하는 작품을 제작한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상용의 작품들이 캔버스에 물감이 묻은 붓을 대충 그은, 속도감이 느껴지는 그림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들은 <Fate> 연작처럼 깨알처럼 그리고 투명 테이프를 거듭해서 붙인 노동집약적인 그림들이다. 예컨대, <Intuitum>(2022)은 마치 밤하늘의 성좌들처럼 화면을 가득 채운 기호와 상징, 약호들이 모여 상호 연관성을 지닌 채 의미의 해독을 기다리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파리채, 물고기, 나뭇잎, 기호, 공식, 도형 등 알 수 없는 모양들까지 어린 시절 주역책을 읽기도 하고 학창 시절 수학과 과학......작업을 할 때, 그런 것들을 끊임없이 저절로 연속해서 그리게 된다.”는 작가의 발언처럼 의식의 지평 위에 떠오르는 각양각색의 이미지들을 의식의 흐름 기법을 통해 그린 것이다.

그렇다면 작가 이상용은 어떻게 해서 지치지도 않고 그토록 오랜 세월을 작업에 몰두하게 된 것일까?

그 바탕에는 ‘놀이정신’이 깔려 있다. 네덜란드 출신의 저명한 문화사가인 요한 하위징아(Johan HUIZINGA)가 문화의 가장 중요한 속성으로 간주한 이 놀이정신이야말로 지금까지 오랜 세월을 이상용이 작업에 흠뻑 빠지게 만든 요체인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저 놀라운 양의 작품을 어떻게 완성할 수 있었겠는가? 경이스러워 몇 자 적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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