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
2011-04-29 ~ 2011-05-10
김현빈
02.720.9282
Shangri-La in the Mountain
2010년 4월에 한 여성 산악인이 ‘세계여성 최초 히말라야 14좌 등반’이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10번째 산 정상등반 증거기록의 부적격 판단으로 그 산악인은 언론의 도마 위에 얹어졌다. 그녀는 해명을 해야 했고 기억을 더듬어 그 때의 상황을 강한 어조로 말할수록 과학적 증거들로 무장한 상대들로부터 비난의 화살을 받았다. 기억이란 얼마나 불완전한 것인가? 어느 것이 진실인지 나도 모른다. 그냥, 나는 그녀의 눈물을 보았고 그 것이 어떠한 말과 과학적 증거들보다 진실해 보였다. 그러나 그녀는 화려한 수식과 유명세를 뒤로한 채 곧 사라질 것이었다.
나는 ‘사라짐’이라는 운동성을 가진 상태나 사건에 관심이 간다. 사라지면서 생기는 ‘상실감’은 어떤 형태로든 나와 관계하는데, 이것은 나에게 ‘가족 유사성’(구성원들 간의 닮음은 있으나, 그 전체가 공유하는 어떤 것은 없다는 의미)과 같이 작용하여 하나의 공간을 만들어 낸다. 외부에서 내부로, 다시 내부에서 외부로 나를 작동하게 하는 힘의 경계에서 흔들리고 있는 것과 그 흔들림이 점유하는 공간을 보여주는 것이 내가 전시를 통하여 실현하려고 하는 것이다.
전시 제목의 샹그릴라(Shangri-La)는 <잃어버린 지평선>이라는 작품에 나오는 가공의 장소이다. 곤륜(kunlun)산맥의 서쪽 끝자락에 있는 숨겨진 장소에 소재하는 신비롭고 평화로운 계곡, 영원한 행복을 누릴 수 있고 외부로부터 단절된 히말라야의 유토피아로 묘사되었다. 세계의 지붕, 구도자들의 고향인 티벳 고원에 달이 뜨면 나타난다는 전설의 이상향, ‘샴발라’. 이것은 ‘감추어진 왕국’이라는 뜻으로 제임스 힐튼(J. Hilton)이 상상력을 발휘하여 다시 ‘샹그릴라’로 이름을 바꿔 소설에 등장시킨 것이다. 소설이 대중적인 인기를 얻고 시간이 흐르면서 이 말은 지상의 어딘가에 존재하는 천국을 가리키는 보통명사가 되었다.
이 전시는 개인과 공동체의 이상적인 추구에서 항상 좌절되고 마는 상태들을 한 사건을 매개로 개인의 사적인 과거의 기억과 기록들을 하나의 전시 공간과 연결시켜보려는 것이다. 여기서 현실적인 공간과 환상적인 공간의 대립을 통해서 협소한 물리적 공간에 너무 비대해진 환영의 폭풍이 지나간 후를 상상하였다. 이번 전시에서 Shangri-La는 같은 이름의 낡은 산장, 즉 ‘산을 내려오는 사람들을 위한’ 잠시 머무름의 장소이거나, 산에 울리는 메아리이다.
자연물을 모티브로 해서 만든 초기의 작업에서는 불안해 보이는 ‘다리’가 등장한다. 내가 만들어내는‘다리’는 튼튼하여야하는 유용성과는 거리가 있다. 내용물을 받치는 받침대이기보다는 본래의 떨림이 되어, 그것 자체로 한 존재가 된다.
바느질 작업의 계기는 실연이었다. 상처를 스스로 위로하고 건축과 폐허에 대한 생각. 만들어지자마자 폐허인 부조리한 상황을 생각했다. 이 무정형의 천 조각은 옷으로 만들어졌지만, 다시, 증식과 구속의 관계에서 비틀어져 우연적인 형태가 나온 것이다.
작가 오인환의 <진짜 사나이>란 작업을 보았는데, 나는 그 작업에서 울리는 트랜스 음악에 왠지 위로받는 느낌이 들었다. 추상적인 이 ‘소리’라는 것이 이렇게 사람의 감정을 만질 수 있다는 것에 새삼 놀랐다. 컴퓨터 사운드 프로그램을 배우는 과정에서 소리가 미디(MIDI)화 되면서 일부의 소리는 사라진다는 얘기가 흥미로웠다. 그래서 나온 것이 <유령악단의 ‘사라지는 여자’>라는 작업이다. 이것은 내가 머물렀던 건물의 중앙정원에 있는 토끼, 토끼가 있는 중앙정원에 대한 생각을 둥글둥글 굴리다가 거기에 있는 연못으로 구멍이 생겨서 다른 차원이 생기는 이야기이다.
요즘 들어 나는 영화들을 본다. 그 영화들은 누군가가 죽거나, 사라지거나, 다시 돌아오는 얘기들이다. 영화의 일부분만 담긴 동영상들을 찾아서 반복적으로 보고 그 것을 그림에 옮겨보는 작업을 한다. 놓친 순간들을 기록해보려는 노력과 함께 그 시간에 대한 명상은 지극히 사적이고 개인적인 것이 된다. 시선간의 부재를 가지가지의 방식으로 회복하려는 노력에서 오는 선들의 변주는 어떤 형태도 보여주지 않는다. 왜냐하면 모든 형태들이 기억의 흔적에서 벗어나 이미 달라진 시간 속에 있기 때문이다.
<마낭 Manang>과<연금술 Hermetic>은 히말라야를 오르기 위해 네팔에 다녀온 후의 작업이다. ‘마낭’은 산행을 포기해야 했던 안나푸르나의 산동네 이름이다. <마낭 Manang>은 동네 초입의 병원에서 새벽에 나오면서, 멀리만 보였던 설산이 갑자기 눈앞에 있어, 당황하여 급히 찍은 사진이다. 산을 내려와서 ‘마낭’에 대한 여러 가지를 사람들에게 물어보았다. 그 곳에서 내게 들어오는 정보는 확인할 길이 없는 구전이나 소문 같은 것이었다. 거기에는 큰 호수가 있고, 옛날에 황금이 많이 있었기 때문에 이상향을 뜻하는 샹그릴라로 불린다고 했다. 그 곳 여기저기에서 ‘샹그릴라’라는 간판을 많이 볼 수 있었다. 그런데 ‘마낭’은 산행에서 고도적응을 필요로 하는 데드라인(dead line) 이기도 했다. 집에 돌아와서는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 본 ‘마낭’은 아름다운 여행지로만 소개되어 있었다. 이러한 차이에서 묘한 감정이 들었는데, 그 때 찍은 사진을 보니 우연히도 사진 윗부분에 알 수 없는 검정색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약간 사선으로 기울어진 그 검정 그림자가 이상하게 나를 관음증 환자로 만들어 산을 더욱 신성하게 만드는 듯 했다. 재미있는 것은 ‘마낭’에서‘o’이 빠진 ‘마나’는 ‘개인적 차원의 신앙심이나 종교적 감정을 표현하는 수호신 체계에 붙어 다니는 초자연적 존재나 위력’이라는 뜻이다. 산을 오를 때 멀리 보이는 설산이 내게 ‘마나’같은 역할을 했다. 그런데 여기에 구멍이 생긴 것이다. <연금술 Hermetic>은 그 곳에서 유랑하는 이미지들에 관한 것이다.
■ 김현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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