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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UNG SANG-HWA

on TIME and LABOUR

<2013. 6. 20 – 9. 7 우손 갤러리 기획전>


오는 6월 20일부터 우손 갤러리는 정상화 화백의 단색화의 이면을 새롭게 해석하고자 70년대 초기부터 현재까지 아우르는 작품들의 구성으로 기획전을 준비했다. 정상화 화백을 생각하면 우리는 모두 모자이크식의 작은 네모꼴들이 온통 화면을 메운 그의 모노크롬의 캔버스를 떠올린다. 단조로운 기하학적 패턴들만이 빛에 따라 엷게 드러나는 단색 화면의 형상과 이미지에 익숙해져 있는 현대인들에게는 매우 단순하고 똑같아 보일 수도 있다. 그것은 작가의 일관성 있는 꾸준한 제작 방식과 규칙적이고 끊임없이 반복되는 미세한 삼각형과 사각형의 패턴 때문에 드는 생각 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일상 생활이 매일 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것 같지만, 결코 어제와 오늘이 똑같을 수 없듯이, 캔버스 화면에 뚜렷하게 그려진 대상물도 없이 모두 같아 보이는 정 화백의 작품은 비슷하지만 결코, 똑같지 않다. 작품 한 작품 한 작품뿐만 아니라 같은 캔버스 안에 존재하는 수 많은 네모꼴의 면도 어느 하나 같은 것이 없다.


과거, 많은 미술 평론가들이 극도로 절제된 정 화백의 화면구성 때문에 그의 작품을 미술학적 관례 안에서 ‘미니멀리즘’ 이라는 카테고리에 포함시켜 해석하려 했지만, 그것은 매우 한정적인 해석인 듯 하다. 도널드 저드, 댄 플래빈, 솔 루이트 등이 대표적인 미국의 ‘미니멀리즘’은 작가가 인간으로서의 개인적인 주관과 감정을 극도로 절제하고 재료의 물성만으로 물체의 존재 자체를 드러내려 했던 것으로, 정 화백의 작품과 시각적으로 비슷핛진 모르나 작품을 통해 작가가 의도하는 것은 미국의 미니멀리즘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인간적인 서정성과 질서 있는 구축성이 공존하는 정 화백의 작품을 굳이 미술사의 한 카테고리로 분류하자면, 미니멀리즘보다는 오히려 마크 로스코, 바네트 뉴먼, 프랭크 스텔라 등과 같이 개인의 감정과 철학 등의 눈에 보이지 않는 정싞적인 개념을 절제된 추상으로 구현하는 ‘후기 추상표현주의’에 더 가까울 것이다. 또한, 평론가들은 정 화백의 작품을 흔히, ‘엥포르멜’ 혹은 ‘모노크롬 화가‘ 라는 수식어를 통해 하나의 특정한 미술운동이나 단체로 분류하려고 애썼다. 그러나 결국 철학적 해석보다는 작가가 초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꾸준히 해오고 있는 독특한 제작방식인 ‘뜯어내기’ 와 ‘메우기’ 에 대한 독창성을 강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먼저, 캔버스 표면에 고령토를 물과 섞어 캔버스 전체에 3-4mm 두께로 골고루 펴 바르고, 그것이 적당히 마르면 캔버스 천을 나무 틀에서 떼어낸다. 작가는 떼어낸 캔버스 천 뒷면에 자를 대고 연필로 가로, 세로의 규칙적인 선을 그어 본인이 접어 갈 캔버스의 위치를 미리 계획하고, 그 연필 선을 끌로 눌러가며 캔버스를 접는다. 캔버스를 접었다가 펼치면 표면에 그물처럼 오가는 수 많은 사각형의 균열이 생기게 되는데, 작가는 굳이 연필 선의 정확한 간격이나 연필 선과 정확히 일치 하도록 캔버스 접기를 고집하진 않는다. 이런 작업이 끝나면 작가는 다시 캔버스 천을 나무 틀에 고정한 후, 수많은 사각 면적의 고령토 조각을 하나씩 떼어 내기를 반복하는데 이때 어떤 면의 고령토 조각을 먼저 떼어내고, 그 다음 어떤 면을 떼어 낼지 면밀히 계산하지 않으면 안 된다. 정 화백 작품의 화면은 고령토 조각을 떼어낸 빈 자리에 아크릴 물감으로 다시 그 빈 자리를 수 차례에 걸쳐 메워가는 작업을 되풀이함으로써 면과 면 사이에 층을 이루는 표면에 이르게 되기 때문에, 작가는 네모꼴의 고령토를 하나씩 뗄 때 마다 주변의 다른 면들을 정확히 살피고 생각하여 하나씩 떼어 나가는 것이다. 화면을 온통 메운 이 네모꼴들은 서로 이웃하면서 크기도 다르거니와 부피도 다르지만, 네모꼴들은 서로의 유기적 관계를 통해서 존재하고 그 빛을 발하게 된다.


작가의 단색 평면은 이러한 철저한 시스템 아래 수 없이 반복되는 이러한 과정을 통해 무한한 시간성과 우주적 공간을 갖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규칙성과 불규칙성이 교차하는 기하학적 패턴의 네모꼴들에 대한 작가의 본능적인 대비감각과 상호간의 균형과 조화를 통해 평면에서 공간의 무한한 자유를 느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또한 우리는 정 화백이 단색 또는 무채색이라는 제한된 색으로만 작업을 하는 이유가 작가의 색채에 대한 금욕적 태도가 아닌, 화면에 공존하는 유기적 공간에 대한 배려라는 것을 엿볼 수 있다.


작가가 ‘뜯어내기’ 와 ‘메우기’를 통해 이러한 모자이크식 화면의 작품을 시작한 것은 고베 시절, 즉 70년대 초부터 본격적으로 탐구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 절대공간은 80년대에 들어 조형의 질이란 측면에서 더욱 더 완숙의 경지를 드러내게 된다. 폰타나의 찢어진 캔버스처럼 가끔 열정에 이끌려 캔버스가 찢어지는 등의 초기 작품에서 볼 수 있었던 격렬하고 날카롭게 움직이던 화면은 40년을 넘는 시간과 함께 점점 온화하고 안정된 표정을 지니고 있다. 그것은 작업 즉, 예술 행위를 통한 작가 자싞의 자기 발견과 성찰이라 핛 수 있을 것이다. ‘뜯어내기’ 와 ‘메우기’ 라는 끝없는 연속의 끈기와 인내를 요구하는 노동과 시간을 통해 정상화 화백은 보이지 않는 것을 캔버스에 구현하려 한다. 작가가 한 평생을 걸쳐 캔버스의 표면을 들어내고 메우고 다시 들어내고 메우는 이 수 없는 반복의 연속은 마치 우리의 반복적인 삶과도 같은 것이다. 결국, 정 화백은 자싞의 삶이 다하는 날까지 ‘뜯어내기’ 와 ‘메우기’를 반복 핛 것이다. 작가가 평생을 통해 이처럼 고집스럽게 반복하는 고된 노동이 지니는 의미는 결코 장인정싞을 내세우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예술행위 본질에 열정을 쏟는 것 즉, 작품은 한 작품 한 작품마다 시작과 끝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작업 과정 자체가 곧 「작품화」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다른 어떤 모더니즘의 선구자들보다도 철학을 자싞의 작업의 귺거로 삼고 고도의 추상적 개념을 귺본으로 건물을 설계했던 세계적인 건축가 미스 반 데어 로에는 ‚less is more‛(적을수록 많다) 즉, 형식을 절제핛수록 본질에 가까워 진다는 유명한 격언을 남겼다. 이것은 그야말로 단순함의 절정에 이른 정상화 화백의 작품을 이해핛 수 있는 핵심이다. 우손 갤러리는 이번 전시를 통해 작품이 깊어가는 만큼 더욱 절제되고 정화되어가는 정 화백의 작품세계에 대한 이해를 돕고자, 작가의 보기 드문 70년대의 초기작품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연대별로 엄선한 15여 점의 캔버스 작품과 함께 ‘떼어내고’ ‘메우는’ 과정의 연속선상에서 연구하고 실험했던 다수의 초기 드로잉과 판화도 함께 선 보일 예정이다.


정상화 화백은 1932년 경상북도 영덕 출생으로 1956년 서울대 회화과를 졸업하고 1963년에 서울 중앙 공보관에서 첫 개인전을 개최했다. 1967년부터 68년까지 프랑스에 머물면서 유럽의 여러 작가들과 예술을 접하고 1968년에 파리의 쟝 갸미옹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개최했다. 그 후, 1969년에 일본으로 건너가 고베에머물면서 도쿄의 무라마츠 갤러리, 우에다 갤러리, 고베의 모또마치 갤러리, 오사카의 시나노바시 갤러리와 카사하라 갤러리 등에서 개인전을 가지며 1976년까지 일본에서 왕성한 활동을 했다. 그 후 다시 프랑스로 건너가 한국으로 돌아온 1993년까지 파리에서 작품 활동에 했으며, 현재는 곤지암에 있는 작업실에서 작품활동에 전념하고 있다. 그 동안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 주요 미술관과 갤러리에서 전시를 가졌고, 최귺 2011년에는 프랑스 쌍떼띠엔 미술관에서 거대한 회고전을 성공적으로 마쳤으며, 2012년에는 흑백의 200호 대작 두 점이 쌍떼띠엔 미술관에 소장되었다. 그 밖에도 국립현대 미술관, 리움 삼성미술관, 서울시립 미술관과 도쿄 국립현대 미술관, 도쿄 오페라시티 갤러리, 시즈오카 현립 미술관과 후쿠오카 아시아 미술관을 비롮하여 유수의 공공 미술관에 영구 소장되어 있다.


2013년 6월 20일에 대구 우손 갤러리에서 오픈하는 이번 전시는 작품이 깊어가는 만큼 더욱 절제되고 정화되어가는 정 상화 화백의 작품세계에 대한 이해를 돕고자, 작가의 보기드문 70년대의 초기작품 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연대별로 선별한 20 여점의 캔버스 작품과 함께 ‘떼어내고’ ‘메우는’ 과정의 연속선상에서 연구하고 실험했던 다수의 초기 드로잉과 판화도 함께 선 보인다. 작가가 한 평생을 걸쳐 캔버스의 표면을 들어내고 메우고 다시 들어내고 메우는 수 없는 반복의 연속은 마치 우리의 반복적인 삶과 같은 것이다. 결국, 작가의 삶이 다 하는 날까지 정 화백은 ‘뜯어내기’ 와 ‘메우기’를 반복 할 것이다. ‘ 뜯어내기’ 와 ‘메우기’의 끝없는 반복이라는 끈기와 인내를 요구하는 일관적인 제작 방식을 통해, 이처럼 고집스럽게 반복되는 고된 노동이 지니는 의미는 결코 장인정신을 내세우는 것이 아닌, 예술행위 본질에 열정을 쏟는 일이다. 작품이 깊어가는 만큼 더욱 절제되고 정화되어가는 것은 작업 즉 예술 행위를 통한 작가 자신의 자기 발견과 성찰이라 할 수 있을것이다. 결국, 작가의 삶이 다 하는 날까지 정 화백은 ‘뜯어내기’ 와 ‘메우기’를 반복 할 것이다. 인식 가능한 형상의 재현이 아니기에 단순히 추상화라고 부르기 보다는 정신적 리얼리티의 감각적 표현으로 다시 생각되어져야 한다는 점에 이번 전시의 촛점을 맞추고 있다. 폰타나의 찢어진 캔버스처럼 가끔 열정에 이끌려 캔버스가 찢어지는 등의 초기 작품 에서 볼 수 있었던 격렬하고 날카롭게 움직이던 화면은 40년을 넘는 시간과 함께 점점 온화하고 안정된 표정을 지니고 있다. 그것은 작업 즉 예술 행위를 통한 작가 자신의 자기 발견과 성찰이라 할 수 있을것이다. 


2013년 큐레이터 이은미 



정상화 화백은 1932년 경상북도 영덕 출생으로 1956년 서울대 회화과를 졸업하고 1963년에 서울 중앙 공보관에서 첫 개인전을 개최했다.1967년부터 68년까지 프랑스에 머물면서 유럽의 여러 작가들과 예술을 접하고 1968년에 파리의 쟝 갸미옹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개최했다. 그 후, 1969년에 일본으로 건너가 코 베에서 머물면서 도쿄의 무라마츠 갤러리, 우에다 갤러리, 코베의 모또마치 갤러리, 오사카의 시나노바시 갤러리와 카사하라 갤러리 등에서 개인전을 가지며 1976년까지 일본에서 왕성한 활동을 하다가 프랑스로 다시 건너가 한국으로 돌아온 1993년까지 파리에서 작품 활동에 전념했다. 현재는 곤지암에있는 작업실에 서 작품활동에만 전념하고있다. 그동안 국내 뿐만 아니라, 세계 주요 미술관과 갤러리에서 전시를 가졌고, 최근 2011년에는 프랑스 쌍떼띠엔 미술관에서 거대한 회고전을 성공적으로 마쳤으며, 2012년에는 흑백 의 200호 대작 두점이 쌍떼띠엔 미술관에 소장되었다. 그 밖에도 국립현대 미술관, 리움 삼성미술관, 서울 시립 미술관과 도쿄 국립현대 미술관, 도쿄 오페라시티 갤러리, 시즈오카 현립 미술관 과 후쿠오카 아시아 미술관을 비롯하여 유수의 공공 미술관에 영구 소장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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