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
2013-10-09 ~ 2013-10-15
무료
02-722-9883/02-738
일상과 전통의 조우(遭遇)
최 지 아(예술학)
김태연은 전통(傳統)에 대한 관심을 작업의 출발점으로 삼는다. 동양화를 전공했기 때문에 전통이라는 화두가 지극히 당연하다고 여겨질 수 있지만, 작가는 과거에 분명히 존재했으나 지금은 존재감이 희미해져 버린 전통이 어디서 왔으며 어떠한 모습으로 남아있는지에 대한 진지한 질문을 던진다. 작품의 주요 모티브인 십이지신(十二支神)은 이러한 관심과 맞닿아 있는데 쥐, 소, 호랑이, 토끼, 용, 뱀, 말, 양, 원숭이, 닭, 개, 돼지의 얼굴에 사람의 몸을 가진 십이지신은 도교나 불교에서 땅을 지키는 수호신의 역할을 하며 고궁이나 절과 같은 전통적인 건축물을 지키는 상징물로 알려져 있다. 또한 출생 년도의 십이지를 ‘띠’ 로 구분하는 아시아 문화권에 속한 우리는 누구나 십이지 중 하나에 해당하는 띠를 갖고 있기도 하다. 김태연이 십이지신을 작품의 소재로 사용하는 것은 이것이 비교적 친근한 전통 이미지이고 여러 인생을 대표하는 상징으로서의 의미와 연관되어 있다. 또한 삶이나 문화의 영역에서 근간을 이루었지만 지금은 사라져버린 그러나 존재하는 전통의 영역을 상기하게 하는 수단이기도 하다.
김태연의 작품에서 십이지신은 불특정 다수를 지칭하는 상징으로 변환된다. 일반적으로 십이지신의 동물은 각각 의미하는 바가 있다. 돼지는 다복함을, 소는 근면함을 나타내는데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이 동물들은 각기 십이지가 상징하는 의미와는 전혀 다른 행동을 하고 있다. 일례로 ‘미(未)’ 에 해당하는 양(염소)은 근면, 건강을 상징하지만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회식자리에서 고기를 자르고, 술을 마시고 넥타이를 풀어헤치고 있는 모습이다. 용맹을 상징하는 호랑이는 어떠한가? 강인한 체력을 위해 아령을 들고 운동을 하지만 앙상한 팔을 드러내며 숨을 헐떡거리며 힘겨워 한다. 또한 정직과 성실을 상징하는 개는 근면과는 어울리지 않게 일확 천금을 노리고 도박에 빠져 결국은 수갑을 차는 안타까운 모습을 보인다. 사실 작품에 등장하는 십이지신의 모습은 우리네 삶에서 쉽게 목격할 수 있는 풍경이다. 누구나 이상을 꿈꾸지만 자신의 연약한 의지 때문에 혹은 주변의 상황이나 사회적인 압박 때문에 이루지 못하는 현실, 목표는 있지만 그 지점에 다다르지 못하는 사람들은 나 자신에서 시작해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다이어트를 시도하지만 매번 실패하거나 원하는 직업에 도전하지만 좌절할 수 밖에 없는, 그것이 아주 사소한 일이건 인생의 방향을 결정짓는 중요한 일이건 간에 현실과 이상 사이의 간극은 늘 존재하는 것이다.
김태연은 이러한 현대인의 삶의 단면을 십이지신에 빗대어 표현하고 있다. 수호신의 역할을 담당했던, 의지가 강하고 용맹했던 이들은 본연의 임무를 망각한 채 현실에 잠식당하고 있다. 얼굴은 원래의 모습을 유지하고자 하나 몸은 뜻대로 되지 않는 현실, 이는 우리의 모습이기도 하지만 사실 지금 ‘전통’ 이 처한 현실이기도 하다. 삶의 뿌리이기에 전통이 마땅히 갖추어야 하는 위상이 있건만 이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는 대단히 불친절하다. 문화재는 관리 소홀로 불타고 전통문화를 계승하려는 사람들은 부재하며 지속되어야 하는 정신이나 관습은 각자의 필요에 맞게 변형되거나 쉽고 편리한 것으로 대체되고 있다. 우리가 일상에서 경험하는 냉혹한 현실은 전통의 위상조차 피해가지 못한다.
작품에서 십이지신의 얼굴을 한 현대인의 모습은 유쾌하지 않다. 넉넉한 사이즈의 티셔츠를 입고 감자칩을 먹어가며 하루 종일 리모콘을 손에서 놓지 않는 소의 모습이라던가,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해 본인의 취향과는 관계없는 문화생활을 즐기는 원숭이를 보면 우리의 삶과 너무나 닮아 있기 에 실소(失笑) 하게 된다. 또한 열 두 개의 화폭에 반복해서 나타나는 여러 개의 팔은 괴기스러우면서도 우스꽝스러운 이미지를 연출하는데, 한 화면 안에서 보여주는 유사하지만 서로 다른 행위들은 현대인이 수행해야 하는 다양한 역할과 복잡한 삶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면서 십이지신의 본성과 상반된 의미를 강화시키는 역할을 하며 동시에 십이지신 본연의 의미를 곱씹어보게 한다. 중국 동진(東晉)의 인물화가인 고개지(顧愷之)는 초상화에서 어떤 인물을 그릴 때 대상을 관찰하고 형태를 잘 묘사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이를 통해 신(神), 즉 정신을 드러내야 한다는 전신사조(傳神寫照)를 주장했다. 그는 사조(寫照)가 전신(傳神)을 위한 것이므로 초상화에서 신(神)이 전달되었느냐의 여부에 따라 사조의 가치가 결정된다고 하면서 형상을 통한 정신의 드러남을 강조했다. 이러한 고개지의 주장은 김태연이 십이지신에 빗대어 현대인의 삶을 묘사하며 이들이 마주한 현실을 드러내는 것과 연결된다. 단순히 형을 잘 그리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은유와 과장을 통해 현실과 이상 사이의 괴리와 같은 이면에 숨겨진 본질을 보여주는 작업 그리고 이를 통해 전통을 되새기게 하며 그 가치와 위상이 지금 현재 어떠한지를 미루어 짐작케 하는 것도 신(神) 의 표현에 다름 아니다.
전통의 위상은 위태롭지만 김태연은 작품 제작에 있어 전통적인 방식을 고수해 나간다. 손쉽게 쓸 수 있는 재료가 아닌 분채(粉彩), 석채(石彩)와 같은 다소 시간이 걸리고 번거로운 재료를 사용하는 것도 그 중 하나이다. 물론 이는 다양한 재료에 대한 관심과 지식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지만 손으로 만지고 느끼는 과정을 기꺼이 수용하며 노동 집약적인 방법을 선택하는 것은 전통을 잊지 않고자 하는 작가의 의지적 태도이다. 더디고 번잡한 과정은 김태연의 그림을 고운 빛깔로 물들이며 특유의 빠른 필치는 오히려 최소한의 노동이 개입된 것 같은 투명하고 경쾌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이 경쾌함은 그가 묘사하는 인물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데, 자기 복을 모아야 하는 쥐는 다른 사람의 물건을 배달하는 택배기사로, 들판을 달려야 하는 말을 택시 기사로 표현하는 일상의 생생한 반영은 주변 인물들에 대한 꾸준한 관심과 관찰에서 비롯된 것으로 거부할 수 없는 공감을 불러 일으킨다.
일상과 전통은 김태연의 작품에서 조우한다. 하지만 그 만남은 우연이 아니다. 작가는 전통에 대한 관심을 효과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십이지신이라는 대중적인 소재를 선택하고 성실한 관찰로 이야기의 공감을 확보하며 영민하게 자신의 생각을 전개시킨다. 작업의 주요 모티브로 사용되는 십이지신이 전작에서 그 본질적 의미만을 표현하고 있었다면 이번 2013년 개인전에서는 본연의 의미와 더불어 이와 상충하는 모습을 현대인의 초상으로 제시하며 그 외연을 조금씩 확장하고 있다. 그리고 이렇게 자신의 생각을 견고하게 전개하며 생산된 작품은 전통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는 동시에 우리가 미처 인식하지 못했던 삶의 모습을 조망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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