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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에 있는 큰 책방에 갔다. 책을 한권 사들고 계산대에 줄을 섰다. 주말 오후라서 책방은 꽤 붐볐다.  대여섯개가 넘는 계산대마다 모두 바쁘다. 저쪽 너머에 이제 갓 스물이나 됐을법한 여자가 아이를 포대기에 안고 있다. 여자는 사람들의 시선을 살피는지 여기 저기로 눈빛이 흔들렸다. 아이를 얼르며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거 같았다. 그러고는 앞 서있는 중년의 남자가 계산대 앞에 섰다. 구입한 책 정보가 작은 계산 모니터에 드러났다. ‘캄보디아어 기초회화’. 계산을 마친 남자 곁으로 아이를 안고 있던 그 여자가 다가왔다.  아이를 데리고 소아과에 갔다. 어느 때부터인지 대기자 명단에 한글로 표기된 낯선 이름들에 눈이 띈다. 그 여자는 만삭이었다. 태중의 아이는 둘째인 모양이다. 큰아이가 감기에 걸렸었나보다. 키가 작고 가녀린 그 여자는 멀찍이 떨어져 앉은 남자에게 눈짓을 했다. 나이가 꽤 지긋해 보이는 남자다. 여자가 남자에게 다가가 팔짱을 끼자 남자는 앞만 바라보고 병원문을 열었다. 궁금했다. 그 여자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바늘에 실을 얼마나 길게 꿰었길래, 말도 설도 물도 설은 타국으로 시집을 왔을까? 결혼이주자들을 만나기 시작했던 건 지난 봄부터였다. 동네마다 ‘다문화가정지원센터’가 생겼다. 한국어도 가르치고, 한국생활 적응을 돕기 위한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여기라면, 베트남, 중국, 필리핀, 캄보디아, 우즈베키스탄에서 온 사람들의 사소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다리품만 좀 팔면 금방 친구가 될 수 있겠지. 동양자수를 놓으면서 남편 흉도 보고, 시댁 이야기, 친정엄마 이야기도 나눌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다.

 

말 한번 걸어보겠다고 이른 아침 챙겨먹고 베트남에서, 우즈벡에서 온 엄마들이 한국말 수업 듣는 동안 아이들을 돌보기도 했다. 돌도 안 된 남의 아이 행여 다치기라도 할까 긴장하고, 당황했다. 몇 주가 지나도 내게 경계의 눈빛을 풀지 않는다. 경계 하는 게 어디 나뿐일까? 누구는 결혼해서 한국 집에 와보니 남편은 3학년짜리 아들과 같이 살고 있더라지. 또 누구는 동네에서 제법 큰 마트를 한다던 남편이 예 와보니 형님 운영하는 구멍가게에서 일하고 있었단다. 나를 바라보는 눈빛의 정체를 짐작할 만도 했다. 결혼, 남편, 가족 이야기를 나에게 해 줄 이유는 만무했다.

 

관성을 내려 놓기로 했다. 카메라도 녹음기도 꺼버렸다. 내 귀와 눈을 믿기로 했다.  귀와 눈에 쌓인 기억이 나의 감각을 통과해서 어떻게 꿰어질지 궁금하기도 했다. 태국음식 쏨땀을 만들겠다고 서툴게 칼질을 하고, 베트남쌈도 만들었다. 삼치조림 만드는 요리수업도 기웃거리고, 동화책에 나오는 캐릭터 인형 만드는 시간에도 함께 했다. 전각돌을 곱게 갈고, 붉은 먹을 발라, 이름을 새기면서 일찍 돌아가신 친정엄마 이야기, 얼마 전 오토바이 사고가 난 고향에 계신 아버지 이야기를 하며 울컥하기도 했다. 남편 성격 고대로 닮은 아들 이야기를 하면서 남편 흉을 보며 깔깔댔다. 7월 한여름 푹푹 찌는 날씨에 우유 넣고 지은 밥에 매운 고추 들어간 코코넛 샐러드를 얹어 먹으며 생일 케이크도 잘랐다. 모두가 불러주는 생일축하 노래를 들으며 그들 주변을 기웃거리는 내 태도가 슬쩍 미안해졌다. 

 



무엇이 궁금했던 것일까?그의 삶이 얼마나 남루한 것이었던가를 확인하고자 했던 걸까.그 허름함을 잔인하게도 풀어헤쳐 듣고 싶었던 걸까.오후 5시가 넘도록 땡볕이 사그러지지 않던 8월 어느 날 작업실에 놀러온 지나씨가 말했다. 한국 아줌마들은 왜 그렇게 집요하게 물어보는지 모르겠어. 내 남편이 막노동하고 나보다 열 다섯살 많은 걸 굳~~이 내 입으로 말하게 한다니까.

 

그 여자가 수줍게 웃었다. 이름이 뭐냐는 질문에 얼굴을 붉히며 ‘김혜린’이라고 들릴 듯 말듯 말했다. 지난 주 까지는 이혜린 이라고 했는데, 불러보니까 김혜린이 나은 거 같아서 바꿨다고 했다. 남편도 혜린이라고 불러요? 아니요. 그냥 친구들끼리만 그렇게 불러요. 한나, 유리, 민서, 수지.... 서로가 갖고 싶은 한국이름을 만들어 부른다.

 



사람들이 가족사진을 찍는다. 아빠와 엄마, 아이가 한 곳을 바라보며, 얼굴엔 한껏 미소를 짓고, 가장 행복해 보이는 장면을 연출한다. 가정을 꾸리기 위해 다른 나라로 맞선을 보러가고, 맞선 본 다음날 결혼을 하는 사람들. 조금 더 나은 삶을 위해 말도 문화도 통하지 않는 나라에 와서 가족을 만들어 낸 사람들이 웃는 얼굴로 가족 사진을 찍는다. 다분히 불편한 진실 위에 가족을 만들어낸 사람들.허약한 꿈과 녹녹치 않은 현실을 관통하여 그들이 궁극에 바라는 것은 '안락하고 행복한 삶'일 것이다. 내가 바라는 것과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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