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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호 사진·설치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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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호 작가는 2002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서 시 『가스통이 사는 동네』 로 문학계에 입단하였다. 1998년 중편소설 『늙은 비둘기의 똥』 집필하던 중 장마가 시작되었다. 그 기나긴 장마는 작가의 유년 시절을 떠올리게 하였고, 그 결과 작가는 움직이는 모래를 쓰게 되었다. 작가가 자란 경상남도 함안은 두 개의 강 사이에 위치하여 여름만 되면 강물이 둑까지 차올라 동네가 비상사태에 돌입하곤 했다. 작가는 그 동네를 낮보다 밤의 기운이 셌던 음산한 동네로 기억한다. 그 여름의 기억들은 고스란히 작가의 머릿속에 퇴적되었고, 하나의 이야기가 만들어졌다. 그 이야기가 바로 『움직이는 모래』 다.
팔레드서울에서는 출판일 1월 15일을 맞아 출판 전시회를 개최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소설 속 등장하는 이미지를 전시한다. 관람객은 작가가 기억하는 물 내음 가득한 동네, 두려움의 존재였던 모래더미, 강을 지키며 떠나지 않았던 물푸레나무의 이미지를 제 3자로서 작가의 기억을 공유하며, 소설 『움직이는 모래』 를 감성적으로 또한 시각적으로도 느껴볼 수 있을 것이다. 

 

* 출판사 서평

 

모래에 얽힌 가족사, 『움직이는 모래』

 

소설집 『움직이는 모래』는 중편소설 「움직이는 모래」와 중편소설 「늙은 비둘기의 똥」이 실린 안성호 작가의 소설집이다. 
「움직이는 모래」의 배경은 작가의 고향인 경상남도 함안이다. 함안은 남강이 흐르고 지류로 낙동강이 흐르는 지역이다. 작가는 함안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고, 여름만 되면 강물이 둑까지 차오르는 비상사태를 겪어야 했다. 방죽에 오르면 냉장고며 헛간이며 밥통이며 온갖 가재도구들이 빗물에 휩쓸려 떠내려가는 광경을 볼 수 있었고, 그것들은 죄다 남강으로 흘러갔다. 그런 이유로 작가는 어린 시절에 가장 가보고 싶었던 곳이 남상댐이었다고 한다. 그곳에 가면 온갖 잡동사니들이 온전히 다 보관되어 있을 것만 같았고, 실제로 몇몇 친구들과 뗏목을 만들어 강물을 따라 떠날 계획도 세웠었다고 말이다. 
그 시절 함안은 강물의 범람을 대비한 배수장이 많았다고 한다. 배수장은 강물이 범람하여 마을을 덮칠 것을 대비하기 위함이었으므로 평소에는 굳게 닫혀 있었다고. 그러다 보니 배수장에 검은 물때가 자라기 시작했고, 작가는 마을에 떠도는 갖은 억측들을 풍요롭게 수집할 수 있었다. 밤에 배수장 담벼락을 타고 올라오는 검은 사람을 봤다는 둥, 거기서 수십 마리의 염소들이 들락거리는 걸 봤다는 둥 별의별 흉흉한 소문들이 꼬리를 물고 작가에게 도달했다. 자연스럽게 마을 사람들은 배수장 쪽으로 발길을 끊었고, 사람들이 버린 우산이며 플라스틱 자동차며 온갖 것들이 배수장에 쌓이면서 배수장은 강물로부터 집안을 평안하게 지켜주는 기복신인 용왕신과 대비되는 악의 신전이 되었다고 한다.
배수장이 악의 신전으로 구실을 달리하던 것과 동시에 그 주변에는 엄청나게 많은 모래가 쌓여 갔는데, 남강과 낙동강이 만나는 지점에서 강물이 휘고 갈라지면서 퇴적작용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그 모래는 청둥오리들이 알을 낳는 둥지가 되거나, 모래무치 같은 물고기들의 서식지가 되기도 했을 것이다. 이렇듯 「움직이는 모래」는 신비로운 전설 같으면서도 작가의 기억에서 나온 세밀한 묘사가 현장감을 더해준다. 작가는 그 시절, 방죽에 올라 신화와 같은 이야기를 건져 올린 것이다.

 

가족에 관한 탐구

이 소설은 두 집 사이에 강물이 흐르고, 두 집 사이에 모래가 쌓이고, 굵은 밧줄 하나가 두 집안을 잇고 있는 가족사이다. 그 두 집은 가부장적인 남자가 모래를 통해 축조한 것들이다. 「움직이는 모래」는 이 두 집을 통해 가족이라는 단위가 얼마나 점성(粘性)이 없는가를 보여준다. 일반화된 가정의 표상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니다. 애초 변절된 가정이 어떻게 파국으로 치 닫을 수밖에 없는가를 보여준다. 그렇다고 계몽에 할애할 소설은 결코 아니다. 단지, 강을 끼고 사는 두 집안의 성장을 다룬 소설이다.
작가는 평소 인류사란 망하기 위해 발전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가족은 멸족을 향해 치닫는 서사라고 생각했다. 폐가가 된 자신의 집에 신발의 흙도 털지 않은 채 유년의 추억이 고스란히 잠재되어 있는 방을 서성거려본 사람이라면 작가의 이런 어쭙잖은 결론에 동의할 것이다. 가족은 해체를 전제로 성하고, 폐허 위에 다시 공동체가 형성되어 어떤 무모한 서사에 도전하는 삶. 「움직이는 모래」에 등장하는 ‘나’는 무너진 가족을 파괴하는 것만이 가족을 지킨다는 쪽이고, 죽어서 환생했다고 하는 서림은 또 다른 파괴의 암시다. 이 두 사람 사이에 구원은 없다. 소읍에서의 사랑은 감정보다는 운명적 선택이고, 그들 앞에 놓인 삶 역시 모래처럼 금방 무너질 조짐이 있는, 파괴될 사랑이다. 그래서 애달프고 서럽다. 태생적으로 강가를 어슬렁거리며 죽은 물고기를 주워 먹고 사는 개처럼 그들은 몸 안으로 컹컹 짖는 버릇이 있고, 그리고 몸으로 서러움을 달랜다.
「늙은 비둘기의 똥」은 무기력하게 사는 한 남자의 죽음에 얽힌 이야기다. 백수처럼 사는 남편과 아내, 그리고 같은 아파트에 사는 작가와 장애인 부부가 얽힌 복잡한 이야기를 1인칭 시점으로 세밀하게 그려가고 있다.
이 소설은 칼에 찔려 움직일 수 없는 화자가 그려내는 심리묘사를 통해 삶과 죽음의 경계를 들여다볼 수 있다. 그것-타자(他者), 시간, 공간-들이 쌓아 올린 음모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거대하게 자라고 있다는 걸 보여주면서, 현실의 세계와 얽힌 또 다른 세계에 대한 미지의 불안감을 안겨주기에 충분하다.
두 편의 중편소설은 상당히 다른 세계를 보여준다. 하지만 두 소설 모두 치밀한 묘사와 심리적 갈등을 담담하게 그려냈다는 점에서 닮은 구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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