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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욱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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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 시 명 : 『장욱진』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 개관전 

  ❍ 전시기간 : 2014. 04. 29(화) ~ 2014. 08. 31(일)

  ❍ 개 관 식 : 2014. 04. 28(월) 오후 4시 

  ❍ 장    소 :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 전관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권율로211)



■ 개관 및 전시초점 


  ❍ 우리나라 근·현대미술의 거장 장욱진의 정신을 기리는 미술관이 양주시와 

    장욱진미술문화재단의 협력으로 장흥면에 건립. 

  ❍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의 개관 및 첫 개관전시회 개최. 

  ❍ 장욱진의 예술세계 전반을 보여줄 수 있는 대표작품 60점, 벽화, 기증작품 전시




장욱진의 예술세계를 잘 보여주는「장욱진 명작 60선」과 

벽화2점, 기증소장품, 건축자료 등 선보여 …


  경기도 장흥면에 위치한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이 2014년 4월 28일 개관한다. 

  양주시와 장욱진미술문화재단이 지난 2010년 협약을 통해 미술관 설립을 결정하고, 올해 1월 15일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 운영을 위한 협약』을 체결하여 개관을 하게 되었다. 이번 개관전시에는 장욱진의 대표 유화작품 60점과 덕소화실에 있던 벽화 2점, 기증소장품 유화 19점, 유품, 건축자료 등을 선보인다.  


  장욱진은 우리나라 근·현대미술을 대표하는 박수근, 이중섭과 함께 2세대 서양화가에 속한다. 새, 아이, 나무, 집 등 일상적이고 소박한 소재를 간결하고 동화적으로 그린 장욱진의 그림은 친숙한 이미지로 아이들과 대중들의 폭넓은 사랑을 받고 있다. 이번 개관전시는 일반인의 이해를 돕고자 차별화된 설치와 전시디자인을 통해 장욱진의 예술세계를 새롭게 선보인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정영목 서울대 교수는 “개관전이니만큼 미술관의 탄생을 제시할 개념으로 대표성과 아카이브의 성격을 전시에 반영하고자 노력했다. 주옥같은 유화 60점을 개관의 대표주자로 선정했고, 기증소장품, 그리고 일반인에게 처음 공개되는 벽화 두 점과 건축자료, 유품을 전시한다. 천년의 미래로 나아갈 그 첫걸음의 자료들이 양주시와 우리 미술계의 역사로 남아, 원본으로 보존되어야 한다는 취지를 담았다”라고 전했다. 


관람은 성인 2,000원, 청소년 1,000원, 어린이 500원이며,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관람이 가능하다. 매주 월요일은 휴관이다. 

전시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 홈페이지에서 확인 가능하다. 

(changucchin.yangju.go.kr/ 031-8082-4245)


■ 전시개요

  ❍ 전 시 명 : 『장욱진』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 개관전

  ❍ 전시기간 : 2014. 04. 29(화) ~ 2014. 08. 31(일)

     ※ 개 관 식 : 2014. 04. 28(월) 오후 4시 

  ❍ 장    소 :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 전관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권율로211)

  ❍ 전시내용 : 화가 장욱진의 예술세계 전반과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의 설립을 

               보여주는 개관전시

              - 본전시 1 : ‘장욱진 명작 60선’展

               - 본전시 2 : ‘기증소장품’展

               - 특별전   : ‘건축자료’展 

  ❍ 전시작품 : 유화 60점, 기증소장유화 19점, 벽화 2점, 유품, 건축자료 등    

  ❍ 주최/주관 :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  

  ❍ 기    획 : 개관준비위원회

  ❍ 협    력 : 장욱진미술문화재단(이사장 김동건)

  ❍ 관람시간 : 화-일 10:00~18:00 



전시소개

 

우리나라 근·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장욱진 화백의 정신을 기리는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이 2014년 4월 28일(월) 개관합니다. 가족, 나무, 아이, 새 등 일상적이고 소박한 소재를 동화적이고 심플하게 그렸던 화가 장욱진의 명작들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개관전시에서는 유화 60점(명작 60선), 벽화 2점, 기증소장 유화작품 19점, 유품, 건축모형 등이 전시됩니다. 


양주시는 지난 2010년 4월 15일 장욱진미술문화재단, 유족과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 건립을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하였고, 2013년 5월 미술관 건축물 준공을 완료하였습니다. 또한 올해 2014년 1월 15일에 장욱진미술문화재단과 유족대표가 모여『<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 운영을 위한 협약』을 체결하여, 양주시와 장욱진미술문화재단의 협력으로 2014년 4월 28일 개관합니다. 





섹션별 작품소개



본전시 1. <장욱진 명작 60선>展


   : 장욱진명작 60선은 각 시대별 대표작을 4개의 카테고리로 구성된다. 


   ① 하늘 : 장욱진은 말년에 유난히 하늘을 강조하는 작품을 많이 그렸다.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인물은 삶과 죽음을 초월한 장욱진 자신을 상징한다.  


장욱진은 1980년대 후반에 들어서 자신의 모습을 학과 더불어 자연을 완상하는 선비의 모습으로, 그리고 이 작품에서는 속세를 떠나 하늘을 날아가는 도인의 모습으로 화하였다. 이제 74살인 그는 집과 아이와 나무, 까치만 남겨두고, 그가 살아온 길인 구부러진 붉은 길 위의 하늘을 달과 함께 유유자적 떠다니고 있다.



   ② 나무 : 장욱진의 나무는 인간과 동물, 자연을 품는 넓은 아량과 온화함을 

            의미한다. 


작품 <거목>은 화면 전체를 차지하는 큰 나무는 그 아래의 집들과 나무에 튼 둥지를 보호하는 수호신적 존재로 여겨진다. 이 그림은 가정과 안식에 대한 하나의 상징구조로 읽혀질 수 있다.  화면의 전체를 스크래치 기법으로 긁어대고 있는데, 이로 인해 캔버스의 밑색이 드러나면서 섬광처럼 스며드는 빛의 효과와 화면상의 표면 효과를 동시에 획득하고 있다. 


  ③ 집 : 장욱진에게 있어 집은 화목한 가족과 작품의 창작공간을 의미하는 

          편안하고 따뜻한 공간이다.  

   

화면 한가운데의 집, 그리고 아래 위로 사람과 해가 정확하게 화면을 삼등분하며 무게상의 균형을 잡고 있다. 중앙의 집은 온통 검정색으로, 뽀족한 못 같은 것으로 그 안쪽을 긁어내는 방식으로 사람을 표현하였다. 인물의 엎드린 자세에서 더없는 편안함을 느끼게 된다. 

  ④ 사람  : 장욱진은 아이, 여인, 자화상 등 인물의 내면을 표현하였다. 


작품 <두 얼굴>은 화가가 서울대학교 교수직을 사직하기 1년 전에 그린 작품이다. 강하고 굵은 선으로 대상의 특징을 기호화된 도형으로 표현하는 것은, 대상의 재현에 구애됨이 없이 화가의 이념이 더욱 과감한 형태로 표출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대상을 굵은 선으로 기호화한 형태의 표현은 이후의 작품에도 자주 등장한다. 


본전시 2. <기증소장품>展

     : 덕소아뜰리에에서 제작된 벽화 2점과 기증유화작품 19점 전시 

   

벽화 두 점은 처음으로 일반관람객에게 공개된다.

 

특별전 <건축자료>展


   :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의 건축과정을 담은 영상 및 모형, 드로잉 전시  

     ※ 최페레이라 건축가 설계 

   

 






기획 글


정영목(서울대학교 교수)


1. 기획

  개관의 첫걸음으로 다음의 세 전시를 준비했다: 


⓵ 장욱진 명작 60선 ⓶ 기증소장품특별전 ⓷ 장욱진미술관 건축자료전


   개관전이니만큼 미술관의 탄생을 제시할 개념으로 대표성representative과 아카이브archive의 성격을 전시에 반영하고자 노력했다. ‘개관준비위원회’는 심사숙고 장욱진 화백의 작지만 주옥같은 유화 60점을 개관의 대표주자로 선정했고, 아울러 장욱진미술문화재단을 통한 유족의 기증작품들을 따로 선보임으로써 양주시와 재단 간의 유대관계를 상징/기록하는 미술관의 첫 소장품의 대장목록이 성립된 셈이다. 여기에는 특히 장욱진 화백의 새로운 진면목을 발휘할 벽화 두 점도 포함되어있으며, 일반인에게 처음으로 미술관의 붙박이 소장품으로 영구히 전시된다.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 건축자료전은 그야말로 자료전이다. 천년의 미래로 나아갈 그 첫걸음의 자료들이 양주시와 우리 미술계의 역사로 남아, 원본으로 보존되어야 한다는 취지를 담았다.


2. 화가 장욱진

   장욱진 화백은 한국 근·현대미술사의 한 경지를 마련한 독보적인 존재임을 아무도 부정하지 않는다. 그의 삶과 그림 그리고 생각과 행동이 성정처럼 묻어난 진정성의 예술가로, 들추어낼수록 새삼스러운 그런 존재이며, 후대의 누구도 그를 따라 할 수 없는 비범하지 않은 것 같은 비범함의 인물이다. 같은 시공간의 인물로 김환기, 박수근, 이중섭, 유영국 등이 있지만, 장욱진처럼 그들도 각자의 성정으로 그림을 천직으로 알고 우리의 근·현대사와 함께 고민하고 갈등하며 미술로 동서양을 넘나들었다. 돌이켜 생각하건대 그들의 그림은 형식과 내용만을 이러쿵저러쿵 이야기할 수 있는 미술의 문제만은 아니었다. 거기에는 우리의 질곡의 삶과 역사가 함께 묻어 있는 일종의 자화상과도 같은, 우리의 모습이 반추되어 있었다. 그 모습들을 들여다보기에 우리는 어떤 측면에서 지나치게 우리의 전통과 자존심을 져버리지나 않았을까 하는 자책감을 들게 하는 그런 그림들을 그들은 우리에게 물려주었다.


   이제 이들을 해석하기에 우리 스스로의 안목을 존중하고 좀 더 슬기로워지자. 서구 모더니즘의 산물인 그들을 둘러싼 신화의 거품을 걷어내고 무엇이 진흙 속의 진주인지 가려내보자. 할 얘기를 다한 것 같지만 장욱진의 예술과 사상은 되새길수록 그 깊이를 더한다. 서양을 깊이 알면서도 동양으로 사고하고 행동한 장욱진 화백은 그의 체질과 성정상 무엇 하나 버릴 것 없이 곱씹어야 할 우리의 유산이다. 삶과 도의 길이 어눌하지만 결코 어색하지 않았던 그의 일생과, 티 없이 다가오는 반복의 반복 같은 그러나 결코 반복하지 않은 그가 남긴 작품들은 시대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항상 되씹을 저녁거리 같은 이상과 포근함의 근원을 간직하고 있다.


3. 장욱진 명작 60선

 1)

   장욱진의 유화작품들은 기존의 동양화/서양화라는 분리 개념으로 풀어낼 수 없는 그 무엇이 있다. 즉, 그의 작품은 한국 화단의 구태의연하고 권위적인 동/서의 장르 개념을 벗어난 회화일 뿐이다. 특히, 전통의 맥락이 선명한 1970~80년대의 작품들은 더욱 그렇다. 화가의 작품은 재료의 속성을 제외하고는 그것을 딱히 서양화로 혹은 동양화로 부를 아무런 근거가 없다. 재료의 속성만 해도 그렇다. 오늘날 서양화에만 쓰는 재료가 따로 있고, 동양화에만 써야 하는 재료가 따로 있는가? 장욱진은 한국회화의 이분법의 장벽을 허문 현대화가이다. 즉, 동/서에 대한 강박관념을 없애고 양진영의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으면서 우리의 전통을 현대에 접목시킬 수 있는 조형적 가능성을 회화로 구현해낸 작가가 바로 장욱진이다.

   이러한 점에서 장욱진의 작품은 기존의 서구 미술사나 동양 미술사, 또는 한국의 미술사로 읽어낼 수 없는 독창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 독창성은 그의 작품이 한국적, 혹은 동양적인 것이기 때문에 독창적인 것이 아니라, 오히려 독창적인 것이기 때문에 한국적인 것이라고 판단해야 할 것이다. 때문에 최종태가 장욱진의 작품을 “굳이 미술사에 접목시켜보고자 한다면, 원시미술이나 한국의 민화 쪽에 그 뿌리를 두고 있지 않을까”라고 판단한 것은 이러한 점에서 설득력이 있다.  한국의 민화 역시 원시적인 성격을 내포한 기원과 뿌리의 문화적인 정서가 담긴 복합적이고 추상적인 실체이기 때문에, 결국 넓은 의미의 원시미술에 해당한다. 

   화가의 작품이 원시미술 또는 원시적인 성격의 미술―가령, 유아기(幼兒期)의 미술 등―에 뿌리를 두고 있다면, 그것은 문명의 때가 묻지 않은 순수함과 그 순수함이 표출된 조형의 간결함 때문일 것이다. 때문에 화가의 작품에 표출된 전통적인 조형요소들은 그 요소들이 지닌 순수함과 간결함의 원시적인 속성을 표현한 것이지, 그것의 시각적인 외형을 빌려온 것은 아니다. 즉, 아무리 전통적인 소재를 수용한다 하더라도 그것을 작가 자신의 독창적인 언어와 그릇에 담지 못한다면 그 문화적인 정체성을 획득할 수 없다는 얘기다. 따라서 한국적인 정체성이란 곧 작가 자신의 정체성이며, 그것은 바로 작가의 독창성과 직결되므로―독창적이기 때문에 한국적인 것이지, 한국적이기 때문에 독창적인 것은 아니다.

   장욱진의 작품을 좋게 평가할 때마다 가장 많이 회자되는 수식어는 ‘토속적’ 아니면 ‘한국적’이라는 말들이다. 그런데, 화가 자신은 그런 말을 써본 적이 없다.  반면에, 작가의 독창성을 강조하는 그의 발언은 여러 곳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 그 대표적인 예가 다음과 같은 글이다.

  

자기에 대한 사고방식--이것이 오늘의 그림을 옛날의 그림과 구별 짓는 키포인트다. 한 작가의 개성적인 발상과 방법만이 그림의 기준이 된다. 그러나 지금까지 있었던 질서의 파괴는 단지 파괴로써 종말을 지어서는 안 된다. 개성적인 동시에 그것은 또한 보편성을 가진 것이 아니어서는 안 된다. 즉 있었던 질서의 파괴는 다시 그 위에 이루어지는 새로운 질서일 때만 의의가 있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항상 자기의 언어를 가지는 동시에 동시대인의 공동(共同)한 언어를 또한 망각해서는 아니 된다.


   이렇듯, 독창성을 강조하는 장욱진의 발상은 분명 서구 모더니즘의 미학적 뿌리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 개성이 전통의 질서를 파괴한 채 유행처럼 왔다가 사라지는 새로움이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지적한다. 덧붙여, 그 개성은 ‘보편성’을 획득해야하며, 자기 언어를 갖되 “동시대인의 공동한 언어”를 잃어버려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동시대인의 공동한 언어”로서 화가는 까치·소·개·나무·집·가족·해·달·산·호랑이·학 등의 지극히 일상적이고 보편적인 도상들을 언어처럼 구사했다. 또한 그 도상들은 어떠한 현상을 모사하거나 설명하기 위한 시각적인 지시체(指示體)의 한계를 뛰어넘는다. 즉, 그 지시체들은 장욱진이라는 화가의 개성을 거쳐 상징체로 바뀌며, 그 상징은 시대와 지역,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순수함과 선함이라는 ‘보편성’을 획득하게 된다. 따라서 장욱진의 작품에 나타난 토속적이거나 한국적인 것은 이러한 보편성으로서의 한국성이지, 지역적 특수성으로서의 한국성이 아니다. 


2) 

  “장욱진 명작 60선”에 선별한 작품들은 주제의 측면에서 다음의 네 카테고리로 분류되어 있다: ⓵ 하늘, ⓶ 나무, ⓷ 집, ⓸사람

   

   이러한 분류가 장욱진 작품의 모두를 대표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전체의 성격을 가늠할 수 있는 척도로서는 적합하다. 한 예로, 화가의 작품에는 늘 “종교적 심성”이 배어있다. ‘오체투지五體投地’의 영감이 떠도는 하늘이나 인간으로서의 <진진묘>는 말할 것도 없이, 화가의 나무야말로 그야말로 보다 전통적인 입장에서의 무언가 형용하기 힘든 “종교적 심성”의 아우라aura를 품은 채 우리의 정서에 와 닿는다. 화가의 나무는 집을 품고, 가족을 품고, 사람을 품고, 까치도 품고, 풍경을 품고, 때로는 하늘과 교감하며 그림 속 거기 그렇게 존재한다. 화가의 나무는 인간과 동물과 자연을 품는 넓은 아량과 온화함으로 우리를 무언가의 선善함으로 넌지시 이끌리게 하는 교화의 메시지 같기도 하다. 화가의 나무는 작지만 치열하고 절실한 화폭 안에서 이러한 존재감存在感을 품은 채 지나간 선대先代의 시대와 공간을 상징하면서, 이제는 화가의 그림 속 아이들이 자라 어른이 되었고, 그 어른의 아이들도 자라 시집 장가를 가듯 이러한 순환의 여정旅程과 함께 자연과 인간의 관계도 화가의 나무처럼 “종교적 심성”으로 꿋꿋이 서있어 서로 교감하기를 원한다.      

   화가의 작품에서 자연과 관련한 이러한 심성은 1973년경부터 점차 구체적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심성을 뒷받침해주는 조형의 요소들로서 예를 들 어, 동양화적인 분위기의 태도를 견지하는 번짐의 효과, 여백의 강조, 일회적인 선의 힘, 민화民畵적인 경향, 도가道家적 요소 등이 화면에 등장한다. 1974년의 <무제> (124-1974-10)가 이에 해당하는 적절한 예의 작품이다. 그러나 아직 힘찬 서예풍의 그림은 이 시기에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1980년 들어 이러한 심성은 화폭에 확연히 드러난다. 화가의 ‘수안보 시기’라 일컫는 것처럼 백두대간의 중추인 소백산 자락으로 이어지는 산세의 영향이 화가의 일상에 자연스럽게 침투한 것이다. 보다 뚜렷한 전통 산수화적 이미지들이 등장하는 가운데 근, 중, 원경이 뚜렷한 풍경화의 요소가 좀 더 사실적인 형태로 묘사된다. 더욱 동양화적인 풍미에 완연한 갈필의 힘찬 획도 등장한다. 1982년의 <언덕풍경>(295-1982-14)이 이러한 경향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다. 이후로 화가의 풍경은 갈수록 관념화되면서 상상의 공간이 배가된다. 


   1988년 유난히 하늘을 강조하는, 회귀성과 심리성이 담보된 작품들이  보다 환상적이고 상상적인 공간과 함께 복합적으로 등장한다. 천지인天地人, 또는 동양적인 감성을 지닌 사람들의 노후에 대한 자연스런 생각인지는 몰라도 화가의 종교적 심성이 물씬 배어난 일련의 시리즈 같은 작품들이 있다. 특히 땅을 완전히 잘라버린다든지(<기도하는 여인>, 610-1988-41), 거기에 하늘을 부유하는 사람의 모습과 느낌이 이전의 초현실주의적인 느낌과  전혀 다르다. 화가가 인도를 여행한 후 ‘오체투지五體投地’ 기도 모습에 영향을 받았다 하나, 아마도 삶과 죽음에 대한 경계의 초월적인 생각이 도상으로, 그 도상이 문양처럼 화면 내에 자유롭게 떠다닌다. 삶과 죽음의 순간이 무언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종교로 승화하는 그런 느낌이, 슬프지도 기쁘지도 그러나 무언가 온화하고 편안하게 ‘나’를 감싼다. 거기(<집>, 611-1988-42)에는 여전히 가족과 집이 있고, 까치를 품은 나무가 있고, 어두운 하늘에 해와 달이 있어도 ‘나’의 마음은 평온하다.


결어

   화가 장욱진이 구사하는 그림의 양식이나 주제, 소재는 누구에게나 쉽게 읽힐 수 있는 보편성이 있는 반면에, 누구나 쉽게 읽으려는 시각적인 피상성의 함정에 빠질 수 있는 위험도 있다.  그의 작품은 화가가 주장하는 것처럼 결코 단순하거나 “심플simple”하지 않다.  화가의 제자로 지금은 고인이 된 이만익 화백의 말처럼 “작은 공간을 자기 식으로 쪼개고 꾸미는” 화가의 “까다로운 기호(체질)가 그대로 적용되고 표현된 것”이 그의 그림이다.  때문에 조각가 최종태도 “칼날 같은 예리함과 조금도 용서될 수 없는 준엄함이 있지만 겉으로는 아이들도 그릴 수 있다 할 만큼 평이한 체(體)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 장욱진의 그림이라 평한다.    


   장욱진 화백은 “특수성과 보편성의 양극을 극적으로 관통”한 “세상에서 가장 진귀한 화풍을 만들 수 있었던” 화가였다.  그의 삶 역시 특수성과 보편성의 양극을 극적으로 살다 간, 삶과 작품이 기막히게 일치하는 진정성의 작가로 한국 근, 현대미술사의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존재로, 화가를 기리는 미술관이 장흥의 따스한 양지말에 그의 그림처럼 현실로 존재한다는 것은 우리의 축복이다. ‘수안보’와 ‘신갈’ 시대를 넘어 이제 화가의 ‘장흥’시대로 우리는 접어들었다.          




작가약력


장욱진(張旭鎭, 1917-1990)은 박수근, 이중섭과 함께 우리나라 근·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서양화의 거장 중 한명이다. 1917년 충남 연기군에서 태어난 장욱진은 김환기, 박수근, 이중섭, 유영국 등과 함께 2세대 서양화가에 속한다. 그는 어릴 적부터 그림을 대하는 태도가 남달랐다. 몸을 온통 새까맣게 칠하고 눈만 하얗게 그린 까치로 최하점수를 받았으나 일본인 미술선생의 배려로 까치 작품을 “전일본소학생미전”에 출품하여 1등상을 받는다. 그는 부상으로 수여된 유화물감을 가지고 유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이후 조선일보사가 주최한 제2회 전조선 학생미술전람회(1937)에서 최고상을 수상하였고, 1939년 동경제국미술학교 서양화과에 입학하여 본격적으로 화가가 되는 길로 들어선다. 한국전쟁 이후 그는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교수(1954-1960)로 일하였으나 6년 만에 작품창작을 위해 스스로 그만두고 자연과 더불어 살며 동화적이고 심플한 선 표현과 독창적인 색채를 선보였다. 1963-1974 덕소, 1975-1979 명륜동, 1980-1985 수안보, 1986-1990 용인 마북리의 화실에서 작품활동을 하였고, 1990년 12월 27일 74세로 선종하였다. 장욱진은 “나는 심플하다”라는 그의 말대로 체면과 권위에서 벗어나려고 애썼고 평생을 아이, 어른 모두 좋아하는 단순한 그림을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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