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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세준 회화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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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신대 아침

 

제목: 

등신대等身大 아침은 실제 크기의 아침이라는 거니까, 일단 헛소리다. 아침의 사이즈라니.

이런 단어의 찢어 붙이기는 좀 저속하긴 하다. 그런데 이 상스러움에는 어떤 아슬아슬한 즐거움이 있다. 시침을 뚝 떼는 쾌감과 아무렇게나 말하는 자의 해방감 같은 거.

그래도 어쨌든, 굳이 제목에 설명을 달자면, ‘아침답게’ 이다. 그러니까 아침다운 아침을 맞이해서 사는 것처럼 살아보자, 뭐 그런 거 아니었을까. 물론 아침은 우리가 사는 이 세계의 대명사로 사용했다. 아침에 잘 못 일어나는 자의 아침에 대한 선망과 로망도 포함해서. 

 

작업:

1년 전쯤의 어느 날. 어떤 작업의 한 부분을 그리고 있다가, 갑자기 엄청나게 지루해졌다. 이건 마치 매뉴얼대로 감자튀김을 만들고 있는 패스트푸드점 알바가 된 기분이었다. 시급도 없는 알바. 내가 본 풍경-혹은 인물에 대한 느낌을 표현하기 위해 기계적으로 움직이고 있는 나, 를 보는 따분함. 나아가 내 느낌을 표절하고 있는 나에 대한 민망함과 황망함.

간신히 그 그림을 끝내고 나서 나는 꽤 긴 시간 동안 속수무책이었다. 

요약하자면,

1. 남의 느낌을 알 수는 없으므로, 내 느낌이 아닌 남의 느낌으로 작업을 할 수는 없다. 

2. 그림은 기본적으로 반복적, 기계적인 과정을 거친다.

3. 표현하는 과정이 시시각각 표현된 것이 된다면, 그것은 묵시록적 벽지로 귀결될 수 있다. 또는 무위자연적 익명의 벽지*로. 그러니까 이 세계의 구체성과 관계 맺기를 원한다면 좀 참자. 알바도 노력하면 장인도 될 수 있다, 

등등.

뭐, 이런 생각의 들쭉날쭉 속에서 자신을 설득해 보려고 했었는데, 그랬는데, 하나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대상에 대한 최초의 느낌을 재현하는 것은 아니고, 대상을 그것 그대로 현현시킬 수 없다면, 그리고 시간 속에서 전개되는 공간의 서사敍事를 따라 잡을 수 없다면, 그렇다면 회화적 시간 속에 공간을 구축해야 한다. 

어떻게. 

그리고 회화적 시간이란 뭘까. 

더해서, 회화적 시간 속에 구축된 회화의 공간과 현실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의미 있는 관계를 맺을 수 있을까.

이건 불민한 소인이 답할 문제는 아닌 것 같고, 게다가 불충하기까지 한 소인인 나는 다만 이 물음을 안고 무언가를 시도해 볼 수 있을 뿐이다.

그 시도의 바람은 아래와 같다.

헛 공간을 통해 리얼리티를 구축하고 싶다. 등신대의 리얼리티, 등신대의 아침, 등신대의 헛소리. 그런데 등신대는 리얼리티를 강제하므로 환각적이다. 그러므로 환각의 서사.

 

*나는 20세기 중반의 대표적 미국미술과 미국적일본식한국미술에 좀 냉소적이다. 용서하시라.

  

-작가 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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