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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소정 회화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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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은 단순한 ‘감상의 대상’에서 점점 ‘낯선 것의 체험’으로 복잡하게 변화하고 다원화되고 있으나 통시적으로 변하지 않는 것은, 관객은 미술에서 ‘어떤 세계로 잠시 데려다줌’을 기대하고 경험한다는 것이다. 안소정의 그림에서는 그림 스스로가 직접 어 떤 세계로 데려다 주는 역할을 한다기보다는, 화면 안에 ‘어떤 세계로 잠시 가있는’ 누군가 — 한 사람, 때로는 동물이나 사물, 혹은 그것들의 복수 조합 — 가 등장하여, 보는 이가 화면 속의 그 매개자의 시선이나 행위를 통하여 어떤 세계로 잠시 다녀오는 상상을 유도한다. 


그 ‘어떤 세계’는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은 누구나 품고 있을 잔잔한 외로움을 출입구로 삼는데, 그 문 너머의 이질적인 세계가 결코 우리의 외로움이나 슬픔을 해소해주지는 않는다. 그림 속의 주인공들이 직접적으로 무한 긍정의 희망 메시지를 주는 방식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 역시 연약한 존재로 머뭇거림이 있고, 두려움이 있고, 외로움이 있지만, 연한 웃음을 띠며 무언가를 응시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데, 응시의 대상이 오랫동안 기다려온 무언 가일 수도 있고,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이상적인 풍경일 수도 있다. 

이번 전시 [돋]의 메인 작품인 ‘섬 시리즈’ 속에서 그 주인공은 각각 한 명의 소녀로 등장한다. 소녀는 자신의 일상의 공간인 삭막한 도시의 풍경 속에 전혀 다른 세계를 불러온다. 밑으로는 8차선 차도가 지나가는 육교 위에서 열대 우림을, 신호등을 기다 리며 망망대해와 돌고래를, 눈이 오는 추운 서울의 한 버스 정류장에 뜨거운 사막의 언덕을, 빌딩숲 사이에 비행기를…. 그 소 녀는 홀로 그 세계의 주인이자, 그 세계로의 통로이자, 그 세계 자체다.


이번 시리즈에서 사물과 인물의 윤곽이 이전 작업들과 비교하여 극도로 선명해졌다. 마치 오려낼 수 있을 것만 같이 매우 평면 적이고 비현실적으로 느껴짐과 동시에 얼핏 보면 사진과도 같은 현실감이 순간적으로 스치기도 한다. 두 가지의 이질적인 세 계가 한 화면 속에 공존함에 있어 하나 하나 뚜렷하게 그려진 사물과 사람들이 설득력을 부여하는 듯하다.

그림 속 주인공은 그런 선명한 풍경 속에서 가장 살아있다. 활어처럼 펄떡 이는 발산적인 생명력이 아니라, 오히려 차분하게 빛 을 발하는 지속적인 생명력이다. 그 힘은 관객을 고요함으로 이끌어 다른 세계를 자연스럽게 마주하게 만든다. 그래서 안소정 의 그림 속에서는 외로움이라는 정서가 단순히 어두운 감정이 아니라 오히려 저 너머의 무언가를 발견하게 만드는 가능성을 내포한 복합적 에너지가 된다. 그 ‘다른 세계를 마주함’이라는 것은 괴롭고 지루한 현실에서 더 나은 곳으로 도피하고자 함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로, 현실에서 떠날 수 없다는 것과 현실은 결코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이 현실을 보다 활기차고 유머러스 하게 살아나가기 위함이다. 그러한 작가의 의도 속에는 우리 삶을 둘러싼 냉혹한 현실 세계에 대한 증오 와 우울이 아닌 애정과 즐겁게 살기 위한 다짐이 엿보인다.


이런 매개자로서의 주인공은 작가의 이전 작업들에도 꾸준히 다양한 형태로 등장해왔다. 작가는 그 주인공들을 작가 스스로와 동일시했었는데, 언제부턴가 서서히 그 주인공들은 작가에게서 분리되기 시작했고, 지금은 거의 독립적인 존재로 보인다고 이 야기한다. 그것은 아마도 시간의 흐름에 따른 현실에서의 깨달음을 통한 작가 자신의 성장 때문이리라. 그림 속 주인공은 이제 는 작가 조차도 조금 부러워하는 닮고 싶은 대상이 되어버린 것 같다며 자조 섞인 웃음을 띄운다.

보는 이가 명상을 하듯 그림 속의 주인공에 이입해봄으로써 잠깐의 평화를 누릴 수 있기를 작가는 희망한다. 사람은 모두 다르면서도 그 안에는 어떤 공통된 정서가 내재되어있음을 믿기 때문이다. 전시장을 떠난 뒤에도 잔상이 남는다면, 그리고 문득 일 상의 어느 순간에 그런 체험을 관객 스스로가 불러일으킬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한다.“이 전시는 하나의 실험이다. 그림 속의 소녀가 관객들 — 현실세계 — 속에서 고립될지, 아니면 잘 녹아 들지를 관찰하고 싶다” 는 작가의 말에서 그가 사람을, 세상을 바라보는 호기심과 따뜻함이 느껴진다.


현실의 세상은 마음대로 되지 않지만, 그림 속 저 너머의 세계를 언제든 상상을 통해 불러올 수 있다는 것으로 위안을 주는 것 이 작가가 추구하는 예술의 역할이자 그의 창작의 이유이다. 

-작가 노트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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