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장소 : 화이트블럭 1~5전시실/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헤이리마을길 72.
왜 이들은 패턴을 만들어내는가
이윤희 | 아트센터 화이트블럭 학예실장
김동유, 김인, 문형민, 서은애, 이중근, 이 다섯 작가의 작품들은 서로 전혀 다른 내용과 맥락을 가지고 있지만, 공통적으로 패턴의 형식을 이용하고 있다. 패턴은 보통 비어있는 공간을 장식하기 위한 목적으로 단순하거나 복잡한 이미지를 반복하고 집적하여 구성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전시에 초대된 다섯 작가의 작품들은 언뜻 패턴처럼 보이지만 장식성을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닌, 각자 서로 다른 의미의 맥락을 가지고 있다. 이번 전시는 패턴의 특성을 이용하는 다섯 작가들이 가지고 있는 상이한 의도를 대별하여 짚어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김동유의 경우 잘 알려진 인물들의 초상 사진을 대상으로 하는데, 이 초상을 구성하는 단위이자 전혀 다른 인물의 초상이 격자 형식으로 마치 픽셀처럼 화면을 뒤덮게 한다. 단위를 구성하는 작은 이미지에 집중하면 화면 전체의 큰 이미지가 보이지 않고 큰 이미지를 보면 작은 입자의 이미지들이 보이지 않는 더블이미지 구조를 가지고 있는 김동유의 작품은, 르네상스 이래 서양의 캔버스 회화에 기본이 되었던 그리드 구조와 현대 디지털 시각경험의 특징인 픽셀 구조, 양자의 측면에서 해석해 볼 여지를 가지고 있다.
김인은 집안에서 굴러다니는 기물들이나 아들의 장난감 등을 지속적으로 눈에 보이는 사물들의 이미지를 반복하여 리드리컬한 화면을 만들어낸다. 먼지 뭍은 조화의 떨어져 나간 꽃 한송이, 조악한 플라스틱 장난감 등 실상 무가치해 보이는 것들을 반복하여 빼곡하게 그리는 이유는 상당히 작가의 실존적인 부분에 닿아 있다. 자신을 둘러싼 사물을 오래 바라보며 인간과 사물의 관계에 대한 사유와 더불어 인간의 운명과 사물의 운명에 대한 해석을 도출해내는 그의 작품은, 첫 눈에 가볍지만 볼수록 그려진 사물이 뜻하는 바에 집중하게 하는 힘이 있다.
반면 문형근의 작업은 그리드 구조를 가진 색면 추상으로 보이지만, 잡지에서 가장 빈번히 등장하는 단어들을 통계화하여, 이 단어들을 특정한 색채로 변환하여 칠하는 방식을 취한 것이다. 그의작품은 언어와 이미지의 관계에 비중을 둔 개념적인 작업이면서 동시에 작가의 주관적 표현성을 완전히 배제한 기계적인 과정의 작업이기도 하다. 깔끔하게 마무리된 그의 작품 앞에서 아름다운 추상성을 느낄 수도 있지만, 작품의 과정에 대한 정보를 접하는 관객들은 작가의 의도가 아름다운 것을 만들고자 하는 관심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며, 앞서 가졌던 미적인 감상이 작가의 의도를 배반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서은애는 과거 선조들이 꿈꾸었던 유토피아적 산수 속에서 노니는 자신의 모습을 유머러스하게 그려넣는 작업으로 잘 알려져 있다. 최근 그는 과거의 이미지들 가운데 상서로운 의미를 가지는 형상들을 반복하여 ‘벽지’와 같이 인간을 둘러싼 환경을 만드는 작업을 하는데, 이는 과거 조상들이 자연의 풍경을 직접 보지 않더라도 그림을 통해 완상했던 방식을 현대적으로 변용하여, 자연의 기운을 담은 형상들이 인간의 공간을 감싸게 하여 그것을 현대적 생활 속에서 즐기게 하고자 하는 의도를 가진다. 서은애의 패턴 작업은 대단히 일상적이고 통상적인 벽지의 패턴 이미지에, 과거 선조들이 가졌던 아름다운 습성을 담고자 하는 시도이다. 또한 이는 전통과 현대의 깊은 간극을 남다른 방식으로 가볍게 건너뛰는 그의 행보 가운데 하나의 방식이라 볼 수 있다.
이중근의 작업은 그 누구의 작업보다 본격적으로 패턴을 지향하고 있다. 작업의 초기부터 각종 포즈의 인간 형상, 인간의 신체 부분 등을 일정한 규칙으로 반복하여 패턴의 화면을 볼 수 있다. 그의 패턴 작품들은 겉으로 보기에 말끔하고 세련된 외양을 하고 있지만, 패턴을 구성하고 있는 단위들의 내용이 이와 미묘하게 어긋나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예컨대 멀리서 보기에 배색이 조화롭고 아름다운 패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패턴의 단위가 군복을 입은 작가의 자화상이 특정 포즈를 취하고 있는 식이다. 이중근의 작품에 있어서 전체와 부분의 배반이라는 측면은 그의 패턴작업에 핵심적 특성이며, 의미를 부분적으로 드러내며 동시에 숨기는 고전적인 미술의 속성과도 맞닿아 있다.
이 다섯 작가의 작품들은 각자 다른 의도를 가지고 있지만, 모두 패턴의 유형들을 이용하고 있다. 그렇다면 단위를 반복하는 패턴이 여러 다양한 작가들의 작품 속에서 부상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번 전시는 오늘의 미술계에서 드러나는 한 줄기의 현상으로서 패턴을 바라보고자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