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정보
천정부터 바닥에 이르는 유리창으로 둘러 쌓여진 팔각정의 베를린 슁켈 건물의 홀 중앙에 둥근 형태의 무대가 설치된 모습이 보인다. 이 텅 빈, 아무 움직임도 없이 서 있는 무대를 중심으로 곡면의 벽이 천천히 돌고 있는 가운데, 이미 사라져 버린 무용수의 자취가 아직 남아 있는 듯, 혹은 그들의 혼령만이 남아 무대 위에서 춤을 추는 듯, 무용수들의 스텝소리만이 들려온다. 이는 필립 파레노가 2012년 머스 커닝엄 무용단원들이 다섯 개의 커닝엄의 안무에 따라 춤을 추는 소리를 녹음한 것이다. 이번 슁켈 건물에 설치된 이 작품은 프랑스 작가 필렙 파레노(Philippe Parreno, 1964- )가 2012년 마르셀 뒤샹의 영향을 재스퍼 존스, 로버트 라우쉔베르그, 존 케이지, 머스 커닝엄, 이 네 현대 작가들의 작품들을 통해 보여준 필라델피아 미술관의 “댄싱 어라운드더 브라이드”전에서 처음으로 선보인 작품이다. 동전을 던진다든지 하는 우연적인 요소를 통해 만들어진, 커닝엄의 안무 시퀀스를 따르는 댄서들의 움직임을 소리로만 연상하기란 그리 쉽지 않다. 이 보이지 않는 댄서들의 움직임을 연결시키고, 그 사이에서 새로운 움직임의 가능성과 각 각의 움직임을 소리와 함께 맞추어 나가야 하는 이는, 이 빈 무대를 중심으로 도는 벽처럼, 매번 새로운 각도에서 몇 번이고 그들의 춤을 이미지화 해야 하는 우리들, 관객이지 않을까.
- 변지수 독일통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