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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耳順에 바라본 ‘강’
서여기인書如其人이라 했으니 화여기인畵如其人이라 해도 별 무리가 없을 것이다. 그러니 문혜정의 그림이 그녀인 것은 당연한 것이다. 특히 그녀가 이번에 전시하는 그림들은 ‘귀가 순해져 사사로운 감정에 얽매이지 않고 모든 말을 객관적으로 듣고 이해할 수 있다는 나이’인 이순이 지나 그린 그림들이니 더욱 그러 할 것이다.
전시장에는 마치 풍경과 꽃 같은 것을 그린 그림들이 펼쳐져 있다. 그럼에도 어떤 풍경과 꽃을 그린 것인지 거의 알아볼 수 없다. 관객은 단지 파란 색감을 통해 하늘, 강, 혹은 바다, 갈색과 초록색은 땅과 숲을, 그리고 붉은 색으로 인해 일출과 일몰을 그린 것이 아닐까 추측해보게 된다. 그리고 몇 개의 그림에는 강 건너 도시의 빌딩 숲을 연상시키는 이미지들이 그려져 있다. 자신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것 같은 유일한 무채색 그림은 원근법에 익숙해서인지 마치 어떤 길같이 보이기도 한다. 한편 정사각형의 캔버스에는 연꽃 같은 이미지와 꽃 같은 이미지가 화사한 색감으로 그려져 있다. 아마 이 그림들은 이전의 꽃그림들과 연결되는 그림들이나 이번에 전시하는 그림들은 이전의 꽃그림과는 사뭇 다르다. 꽃이라기에는 확실치 않다.
이 모든 풍경은 여러 조각의 캔버스들로 이루어져 하나의 그림이 됨으로 관객은 조각 맞추기를 하 듯 그림들을 봐야한다. 그 이유는 한 쌍의 꽃 그림을 제외하면 마치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을 암시하는 것 같은 세 무더기의 조합된 풍경화를 전시하기 때문이다. 해체된 풍경화 속에는 이순을 지나 ‘뜻대로 행하여도 도道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종심從心의 나이를 향해 가는 도상에서 그녀가 지금까지 화가로서 자신의 삶과 작업에 대한 반추가 담겨있다. 그녀의 바람은 마치 ‘조용히 도도하게 흐르는 강물’과 같은 존재가 되고 싶은 것이 아닐까 싶다. 결코 역행하지 않으며, 흐르지 않는 듯 흐르는 커다란 강물 말이다.
박춘호 (문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