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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진화 : 너에게로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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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너였구나. 

누군가를 처음 만나 자신을 소개하는 순간 제일 먼저 우리는 자신의 이름을 이야기한다. 메일을 쓰거나 카페에 가입할 때에도 우리는 온라인 상의 이름인 아이디를 사용한다. 하지만 이름이나 아이디 같은 기호들은 언제든 다른 사람에게 도용당 할 수 있는 불완전한 자기규정수단이며 그래서 그에 대한 대안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 지문이나 홍채인식과 같은 몸 인식 기능들이다. 이렇게 몸이라는 것은 ‘대체 불가능한 나’를 설명하는 가장 좋은 수단이며 나 자체이다. 그렇다고 해서 나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신체 특징만을 가지고 설명하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기본적인 개인 정보와 더불어, 좀 더 관계가 지속되면 자신의 성격이나 기호, 가치관, 지나온 일과 앞으로의 계획 등 사회 안에서 자신이 관계 맺어온 대상과 방식들이 드러나게 된다. 

자신을 꼭 닮은 여성을 조각하는 송진화의 작업은 나무를 빌어 자신의 몸을 조각한다는 점에서 분명한 자기표현으로 보인다. 나무의 특성을 거스르지 않을 정도로만 채색된 연한 색채는 나무의 패인 자국이나 세월의 흔적을 그대로 드러내며 마치 나무에서 태어나 작가의 손에서 그저 다듬어지기만 한 듯 얼핏 자연스럽다. 하지만 자신과 비슷한 대상을 만들어내는 일이란 무용을 하거나 연기를 하는 등의 다른 예술 행위들과 비교했을 때 오히려 내면을 드러내는 데 있어 매우 직접적이고 적극적이며 외향적인 방식이라 여겨진다. 특히 그것이 서술적인 어떤 이야기 구조를 가질 때는 더욱 그렇다.

그래서일까? 그녀의 나무 조각을 처음 보았을 때, 마치 낯선 이가 통성명을 하고 인사를 나누자 마자 자기이야기를 풀어 놓은 듯한 기분이었다. 고전 조각에서 느끼는 고귀한 아우라도, 호기심을 자아내는 새로움도 아닌, 영화의 한 장면과도 같은 하나의 ‘상황’으로 송진화의 나무조각은 그렇게 불쑥 다가왔던 것 같다. 

움켜진 듯, 쥐었다 편듯한 손과 손끝의 섬세함, 온통 발가락에 힘을 주어 구부린 발이나 무릎을 안으로 굽혀 어린아이처럼 앉은 모습, 우는지 웃는지 분간하기 힘든 표정. 여인인 듯 사내인 듯 드러내놓은 민낯같은 까까머리. 그리고 움직이는 중간에 잠시 버튼을 눌러 정지시킨 듯한 작품 하나하나에 붙여진 제목들은 마치 한글 자막처럼, 작품을 해석할 실마리와 궁금증을 동시에 안겨준다. < 삐뚤어질 테다! >, < 바람불면 설레어 가만히 집안에 있을 수 없었지요. >, < 수고한 당신 업어 드릴께. > 마치 작품을 보며 상황을 미루어 짐작하고 나름의 이야기를 한번 만들어 보라는 숙제라도 받은 기분이다. 


그녀의 작품은 이렇게 보는 이들에게 생각의 여지를 남기며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선물한다. 타인과의 관계와 교감을 통해 스스로에 대해 더 잘 알게 되듯이 그녀의 작품 속 다른 여성의 삶을 통해 우리는 자신을 다시 살펴보게 된다. 누구 하나 똑같은 사람이 없듯, 작품을 보고 반영할 수 있는 맥락 또한 보는 이의 숫자만큼이나 다양할 것이다. 

개인적이든 사회적이든 어떤 한 맥락 안에서 송진화의 조각을 읽으려는 이러한 접근은 서술적인 제목과 더불어 작품을 놓는 방식에서도 설득력을 얻을 수 있다. 전시마다 작품 못지 않게 중요하게 생각하는 설치 방식은 단지 감상하고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는 차원이 아니라, 작품의 중요한 일부분으로서 그 내용을 더욱 부각시키는 역할을 하며, 여기에서 대상과 그 맥락 사이의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작가의 태도를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예로, 2012년 아트사이드 개인전에서 보여주었던 전시 공간 곳곳에 매달린 ‘하. 하. 하’ 라는 붉은 색 글씨는 웃고 있지만 기쁘지만은 않고 슬픈 듯 슬프지만은 않은 그녀만의 조형언어를 역설적으로 드러내주었다. 또 갤러리 공간 모서리에 작품을 설치하고 그 앞에 빨간색 실선을 교차시켜 작품이 주는 긴장감을 한층 고양시키기도 하였다. 이번 전시에서도 전시장 한 가운데 독립적인 방을 꾸미고 그 안에 아주 작은 아이 조각을 매달아 관람객들이 직접 안아볼 수 있게 하여 자기 안의 작은 아이를 직접 대면할 수 있는 순간을 만들어내고 있다. 작품의 제목은 < 아, 너였구나. > 

부모로 자식으로 혹은 학생으로 직장인으로, 부여된 이름에 맞게 살아내느라 잊고 지내던, 어쩌면 무시하고 부정해왔던 내 안의 자라지 않은 아이 같은 자아. 상처받기 쉽고 의지하고 싶고 사랑만 받고 싶은 아이를 자기만의 하얀 방에서 가만히 안아보며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최근 우리나라 극장가를 휩쓸다시피 한 영화 <국제시장>은 1950년대 한국 전쟁 이후부터 시대적 변화를 온몸으로 부딪치며 가족을 지켜낸 한 아버지의 인생을 다룬 영화이다. 몇몇 영화평론가들의 부정적인 평가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그토록 큰 반향을 일으킨 것은 그 시대를 겪어온 비슷한 세대의 공감은 물론이고, 같은 상황을 겪어보진 않았더라도 나름의 고민과 어려움을 경험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든 느껴봤을 외로운 시간에 대한 위로와 위안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가족들이 모두 모여 즐거운 가운데 슬며시 혼자 방으로 들어가 “아버지, 저 이 정도면 잘했죠? 그런데 아버지…… 저 그 동안 너무 힘들었어요…...” 어깨를 들썩이며 흐느끼던 아버지처럼, 작은 아이로 변해버린 그를 그의 아버지가 환영으로나마 가만히 안아주었던 것처럼, 자기 안의 아이를 마주하고 발견하고 인정하면서 스스로 안도와 위안을 찾을 수 있기를 바래본다. 송진화 작가 역시 자신을 조각해내며 그렇지 않았을까? 아마도.


정성희 (큐레이터, 아트사이드 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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