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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노래 • 김윤신 화업 60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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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와 사랑에 빠져 아르헨티나로 떠난 1세대 여성조각가 김윤신
탄생 80주년 맞아 서울에서 대규모 회고전 개최  



한국 여성 조각가로서 1세대로 화단에 명성을 떨쳤지만 30년 전 상명대 조소과 교수직을 던지고 불현듯 아르헨티나로 떠난 김윤신 작가의 탄생 80주년을 맞아 6월 11일부터 한원미술관에서 대규모 회고전이 개최된다. 남미의 태양과 바람에서 자라난 나무들에 매혹됐던 노작가는 아르헨티나에서 나오는 다양한 목재를 오브제로 사용한 작품을 통해 현지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예술가로 확고한 명성을 쌓으며 여든 살의 나이에도 여전히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영원한 현역 작가’다. 이번 전시는 살아있는 나무의 생명과 영혼의 울림을 가장 잘 잡아내는 작가 중 하나인 그의 작품 세계를 회화와 조각, 설치 작품에 이르기까지 70여점의 작품을 통해 조망해보는 한국 최초의 회고전으로 기획됐다. 또 한국, 아르헨티나, 미국, 멕시코, 프랑스, 일본, 브라질, 중국에서 32회 개인전을 개최한 작가의 33번째 전시이기도 하다. 작가의 제자로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지난 2008년 개관한 ‘김윤신 미술관’을 운영하고 있는 김란 김윤신미술관 관장은 “해외에서 한국 작가의 독립 미술관이 운영되고 있는 사례를 찾아보기 힘들다”며 “그만큼 작가에 대한 현지인들의 반응과 관심이 뜨겁다”고 말한다. 



김윤신 –아르헨티나에서 찾아낸 영혼의 울림 

왜 그는 아르헨티나로 떠났나? 

원산 출신인 김윤신은 1세대 여성 조각가로서 홍익대 조소학과를 졸업한 뒤 프랑스 파리에서 유학생활을 했다. 파리 국립미술학교에서 조각과 석판화를 전공하고 69년 귀국한 그는 71년 조각가 김정숙, 윤영자 등과 함께 ‘한국여류조각가협회’를 발족시킨 주역이기도 하다. 아울러 72년에는 정관모, 김광우 등과 한국미술청년작가회를 출범시키며 화단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킨 작가였다. 이후 상명대 조소학과 교수를 맡으며 중견 작가로 이름을 떨치던 그가 어느 날 갑자기 아르헨티나로 떠났다.

그는 미대 교수로서의 직위와 작가로서의 한국 화단에서의 공고한 입지를 한 순간에 버리고 머나먼 남미의 아르헨티나로 떠났던 것일까? 그 답은 바로 ‘나무’에 있다. 1970년대 중반 이후 다양한 실험 끝에 한국의 적송과 같은 나무를 오브제로 삼아 작업을 펼쳐오던 그에게 아르헨티나는 충격으로 다가왔다. 

1983년 12월 조카가 살고 있는 아르헨티나를 방문해 한 달 간 여행을 다닌 게 그 시발점이었다. 파괴되지 않은 자연, 광활한 땅과 푸른 초원, 수없이 널려 있는 방목된 소들의 무리, 하늘과 땅이 맞닿아 사방이 둥글게 보이고, 가도 가도 산은 볼 수 없었다. 사람이 농사를 짓는 것이 아니고, 씨앗을 비행기로 뿌리고 기계로 추수해서 짐승과 벌레들이 다 먹고 난 후에도 엄청난 곡식들이 풍요롭게 널려 있는 나라. 사람들 또한 자유로우며 여유가 있고, 친절하며 순수했다. 그 중에서도 김윤신의 마음을 가장 유혹한 것은 한국에서는 보기 힘든 조각재료들로 엄청나게 귀한 돌과 다양한 종류의 나무였다. 보다 넓고 새로운 것을 동경해 왔던 그에게는 자신의 창작욕을 충족시켜 줄 풍부한 재료들과 끝없는 팜파의 평원이 마치 신의 축복을 받은 나라로 보였고, 결국 아르헨티나에 매료돼 자신도 모르게 그대로 머물게 되었다. 



아르헨티나에서 우뚝 선 한국 예술가 

그의 이 같은 모험과 도전은 속전속결로 이뤄졌다. 여행이 끝나고 며칠 뒤 작가는 아르헨티나에서 작업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주한아르헨티나 대사관에서 공보관으로 재직 중이던 고부안씨의 도움을 받아   


부에노스아이레스 시립현대미술관 관장인 로베르또 델 비쟈노(Roberto del Villano)를 찾아갔고 전시 개최를 승인 받았다. 이후 2개월간 계속된 전시회 동안 많은 관람객이 모여들었고, 현지 주요 신문들로부터 많은 평을 받았다. 신문에 알려지게 되자 올라바리아(Olavarria) 라는 지방도시에서도 전시를 해 달라는 요청이 왔다. 그후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있는 국립미술관 Plais de Grace를 비롯해, Galeria Praxis, Galeria Soudan에서 전시계획이 계속 이루어졌고 학교에서는 빨리 돌아오라는 독촉을 하면서 1년까지 기간을 연장해 준다고 했지만 이미 아르헨티나에서 전시를 위해 작품 활동을 하고 있어서 그 기간 내에 돌아갈 수 없었다. 결국 그는 아르헨티나 이민을 결심한다. 이후 작가는 부에노스아이레스 수도 근교에서 정착해 삶을 시작하게 되었다. 작가와 교수로서의 모든 기득권을 내려놓은 그는 그곳에서 오로지 오브제인 나무와 돌을 마주 한 채 예술가로서의 고난 길을 걸어가기 시작했다. 힘이 드는 큰 조각 작업을 주로 했지만 경제적인 여유가 없어, 조수를 쓸 수 있는 능력이 안 되어 끝까지 혼자 작업하는 습관이 몸에 밴 모습이 현지인들에게 알려지자 “당신은 여성 중에 여성으로 어렵고 힘든 작업을 혼자 잘도 해 낸다”고 말하며 엄지손가락으로 최고라고 가리키며 위안을 주기도 했다. 



남미에 건립된 최초의 한국인 작가 미술관 


그의 이 같은 예술혼은 2008년 남미에서는 최초로 한국 작가로서 생전에 자신의 작품을 한 자리에 모은 미술관이 건립되는 결실로 다가왔다. 오랜 시간을 작업에만 몰두해 온 미술가의 꿈이라면 개인 미술관을 갖는 것이라 하겠다. 외국인으로 타국에서 특별한 경제활동도 없이 창작에만 몰두하다 보니까 생계를 이어 나가는 것만도 다행이었지 그 이상은 기대조차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우연하게 그 기회가 왔다. 한인들이 상권을 장악한 부에노스아이레스의 Flores 지역에 단층 건물을 보고 맘에 들었지만 생각보다 시세가 높아 포기하려던 차에 주위의 지인들의 도움으로 어렵사리 건물을 구입을 할 수 있었고, 그 곳에 화랑과 작업장을 만들어 처음으로 전시를 했는데 교민들로 대성황을 이뤘고, 작품을 많이 구입했다. 


작가와 제자인 김란 관장은 작품을 판매한 돈으로 건물을 2층, 3층까지 올릴 수 있었고, 2층은 미술관, 3층은 주택으로 단장했다. 그렇게 기적처럼 이뤄진 2008년 김윤신 미술관 개관식에는 많은 아르헨티나 귀빈들이 대거 참석했다. 주아 한국 대사관의 황의승 대사를 비롯해 마우리시오 마끄리 부에노스아이레스 시장, 훌리오 꼬보스 부통령 내외 등 귀빈들의 축하 속에 아르헨티나에서 내 개인 미술관을 개관했다. 작가가 이처럼 아르헨티나 현지에서 뿌리를 내리고 한국을 대표하는 예술가로 자리매김 하기까지는 30대 초반 이민을 와 함께 생활하며 현재까지 뒷바라지를 해온 김란 관장의 헌신적 조력이 큰 역할을 했다. 또 고부안 전 주한 아르헨티나 대사관 공보관, 로베르또 델 비자노 전 시립현대미술관장, 초창기에 경제적인 뒷받침 및 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도와주신 김경, 최영지 부부. 어려운 시기에 항상 격려해 주며 작품을 구입해 주신 교민 들도 작가가 늘 고마움을 잊지 못하는 이들이다. 


현장을 지키는 여든 살의 노대가, 영혼의 노래는 계속된다 

어느덧 80의 나이에 접어든 노 작가는 지금도 매일 아침이면 미술관에 마련된 아틀리에로 출근해 종일 나무와 씨름하는 ‘청년 작가’이기도 하다. 젊은 남성이 운반하기에도 힘든 아르헨티나의 육중한 목재를 손수 옮기고 다양한 공구를 이용해 이를 조각하는 작가에게서 세월과 나이의 무게를 찾기는 어렵다. 대신 현장에는 ‘영혼의 노래는 멈추지 않는다’며 신을 향한 구도의 길, 예술의 길로 여전히 맹렬하게 달려가는 한 작가가 서 있을 뿐이다.  





김윤신이 말하는 ‘김윤신의 작품세계’


어느 때부터인가 나는 작업을 시작하기 전, 생각속의 복잡한 잡념을 모두 지워버리고, 마음과 머릿속을 깨끗이 비우는 습관을 갖게 되었다. 무념의 맑은 상태에서 며칠을 두고, 오가면서 널려있는 재료들을 들여다본다. 어느 순간, 떠오르는 영감은 나에게서 배어나오는 무념이 그 나무 등어리에 집중되어, 어느새 톱에 의해 거침없이 원형나무, 그리고 돌은 나의 조형세계를 이루어가기 시작한다. 단단하고 거친 원목과 돌은 어느새 따뜻하고 힘찬, 그러면서 유연한 소재로 탈바꿈하여 그때부터 나의 작업에 대한 실마리는 풀려나가기 시작한다. 재료 하나하나, 작품 하나하나에 내 온 정신이 주입되고, 나는 그 작업 속에 파묻혀버리게 된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고 작품과 내가 하나가 되는 순간이다. 연장마저 내 몸의 일부가 되고..... 잘려나간 단면과 그 속에서 형성된 다양한 선들이 하나의 조화를 이루면서 내 나름대로의 조형언어를 구축하게 된다. 수없이 해온 작품 중에서도 같은 형태로 표출된 작품이 하나도 없는 것은, 조각 작업 자체가 바로 삶이기 때문이다. 산다는 것 자체가 순간순간마다 변화해 가는 것이기에, 그 어느 순간도 다시 돌아오지 않는 그야말로 우리가 겪는 하루하루의 삶이 절대적인 삶이기에, 반복되는 혹은 유사한 형태의 작품이 나오지 않는 당연한 이치와 같은 것이다. 


이러한 직관에 의한 작업태도를 되돌아 보건대, 나의 젊은 시절, 조형의 기초 작업과 구상작업이 수많은 스케치 작업을 통해 일상의 관념을 지양하려고 애써왔고, 이젠 무소유 정신 상태에서의 직관에 의한 작품제작을 하게 되었다. 한 예술가가 자기예술에 대한 개념이 확실하게 정립되는 순간부터는 한 오브제를 갖고 구상, 계획, 완성의 단계를 거칠 필요 없이, 그야말로 작가의 빈 마음과 정신의『合』이라고 할 수 있는 직관에 의해, 실 꾸러미를 풀어가듯 슬슬 다음 면으로 자연스레 연결되면서, 총체적 형태에서 예술의 본질을 추구하게 되는 것이다.
초기 조각 작업에서는 유사이래. 인간들의 삶속에서 우주절대자에게 의지하고자 하는 인간들의 삶속에서 우주절대자에게 의지하고자 하는 인간본연의 마음을 반영코자 민간신앙에서 작품의 뿌리를 찾고자 했다. 
판화작업에서는 민간신앙의 하나인 부적의 글귀를 풀어 작업해 보기도 했다. 그 후의 작품은 모태인 땅에서 절대자에게로 향하는 염원으로 지상과 천상을 연결하는 연속성을 매개체로 조형상의 변화를 추구함과 동시에, 그 어떠한 것도 이성적 판단에 얽매인, 그 어떤 통제나, 미학적인 선입관 없이 절대적 절단의 단면이 수직, 수평도 아닌 비스듬한 대각선을 이루면서, 하늘에 닿고자 하는 기원을 표현하였다. 


고정관념에 얽매이지 않고 매일, 매순간 절대자와 대화를 나누듯이 기도 속에서 나의 조형언어는 시간과 유한성을 초월한, 작품자체에 뿐만 아니라 주위의 자연과 전체로 결합하는 총체적 합(合)과 분(分)인 합이 합일, 분이분일이란 연작으로 이어졌다. 


나의 회화작품은, 창세기부터 하느님의 말씀으로 모든 만물의 생명이 잉태된 순간부터 예수님의 십자가상의 죽음과 부활까지, 영원한 삶의 나눔을(合과 分) 주제로 하였다. 나눔의 본질은 사랑이며 그 깊은 내면에는 원초적 생명력이 뿌리 깊게 박혀있다. 그것을 향한 내 깊은 곳에서 울려나오는 영혼의 노래, 그 영혼의 소리는 다양한 색상의 파장으로 선과 면을 이루어 사랑과 나눔을 표현하였다.
    

       


[작가 약력] 

김윤신

1935원산 출생
1955-59 홍익대학교 조소과 졸업
1964-69 파리국립미술학교
(Ecole Nationale Superieure Beaux-Arts, Paris) 수학
1970-84 홍익대, 상명대, 성신여대, 경희대, 목원대, 성심여대 등 출강
1984 아르헨티나에 정착
2008 김윤신미술관 개관

개인전
2015 멘도사 시립현대미술관 초대전 , 멘도사, 아르헨티나
2014 아르헨티나 한국문화원 초대전 , 부에노스 아이레스 , 아르헨티나
2012-14 부에노스아이레스 미술/박물관의 밤
2011 Recorriendo aquellos tiempos,부에노스 아이레스 미술/박물관의 밤
2010 Maria Elena Kravetz 갤러리 초대전, 꼬르도바, 아르헨티나
2010 아르헨티나 혁명200주년 기념전, 김윤신미술관, 아르헨티나
2010 부에노스아이레스 미술/박물관의 밤
2009 Museo de Artes Lopez Claro 초대전, 아술 , 아르헨티나
2008 김윤신미술관 개관전, 부에노스아이레스, 아르헨티나
2007 국민일보갤러리 초대전, 서울
2003 박여숙 화랑 초대전, 서울
1996 조각개인전, 레꼴레따 문화원, 부에노스아이레스, 아르헨티나
1995 동아갤러리 초대전, 서울
1992 Palais de Glace 국립미술전시장 초대전, 부에노스아이레스, 아르헨티나
1992 PRAXIS 갤러리 초대전, 부에노스아이레스, 아르헨티나
1990 시몬손갤러리 초대전, 로스엔젤레스, 미국
1990 현대갤러리 초대전, 서울
1989 멕시코 국립예술의궁전 미술관 초대전, 멕시코
1988 진 화랑 초대전, 서울
1985 부에노스아이레스 시립 현대미술관 초대 조각전 개인전 (옥외), 부에노스 아이레스 식물원



단체전 
2012 한국 국제아트페어 KIAF2012 참가, 아르헨티나 Praxis 갤러리, 서울 
2012 익산 국제돌문화 프로젝트, 익산 
2012 Green Life 전시회 초대작가, 워싱턴 
2007 로사리오 국제조각 심포지움, 아르헨티나 


2006 남미 한민족작가 문화예술 교류전, 상파울로, 브라질 
2003 한국.스페인 조각 심포지움, 이천, 한국 
2002 베이징 국제조각 심포지움, 중국 (베이징 올림픽 조각공원) 
2001 제7회 로사리오 국제조각 심포지움, 아르헨티나 
2000 제3회 아베자네다공원 국제조각 심포지움, 부에노스 아이레스, 아르헨티나 
1995 ‘95 한국여성미술제, 서울시립미술관 
1992 멕시코 현대미술관 초대‘한국현대미술 33인전’, 멕시코 
1991 세계 저명조각가 초대전, 멕시코 
1985 아르헨티나 조각가협회 회원전, 부에노스 아이레스, 아르헨티나 
1973 제12회 상파울로 비엔날레 출품, 브라질 

작품 소장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대한민국 
부에노스 아이레스 시립현대미술관, 아르헨티나 
멕시코 국립현대미술관, 멕시코 
토지개발공사 분당사옥 분수 조각, 대한민국 
대한민국 주택공사, 서울 
로사리오 중앙우체국, 아르헨티나 
경기도 광주 스페인조각공원, 대한민국 
베이징 국제조각공원, 중국 
Lopez Claro 미술관, 아술, 아르헨티나 
아산병원(회화), 서울 / 익산 중앙체육공원,익산 
GOLF CLUB ESPERANZA, 부에노스아이레스, 아르헨티나(국제조각대회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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