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를 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관객들에게 그림을 보여준다는 데에 의의가 있겠으나, 대외적인 활동을 오래 쉰 나는, 나의 그림들을 비로소 정당한 크기의 공간에 놓고, 한번 더 보고 싶은 욕망에서 비롯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이번 전시회는, 궁극적으로는 관객이 나 혼자만일 수도 있는, 오롯이 나 자신을 위한 전시회라 할 수 있겠다. 

그림에 대한 나의 끈끈한 열망은, 벽에 걸린 그림을 지탱시켜주는 못과 같이, 항상 내 가슴 속에 박혀 있기에, 놓치지 않을 수 있었다. 이러한 열망이 커지면서, 우정, 친교, 사랑의 감정 등은 없어지거나, 흐릿해지거나, 다른 욕망 때문에 아예 지금은 망각의 상자 속으로 들어간 것들도 많다.

활발히 활동을 하던 때는 다르게 그려보고 싶은 생각을 멀리 두고, 그려야 되는 그림이 우선이 될 때가 있었다. 그려야 되는 그림들은 나에게—인기 있는, 예쁜, 유명한, 비싼— 과 같은 수식들을 붙여 주었지만, 나는 점차 그리고 자꾸만 이런 것들로부터 벗어나서, 꼭 안 해도 되는 자리로 가고 싶어했다. 

이러한 이유와 열망이 15년 가량을 활발하게 활동하던 나를, 마치 전쟁이 끝난 줄도 모르고, 군복을 입고 몇 십 년을 섬에 숨어 살았던 일본군인처럼, 정말 열심히 작업에만 매달리게끔 만들어 주었다. 

그려야 되는 약간의 구속마저도 없어지자, 비로소 난 자유롭게 그림을 할 수 있었다. 원래 예쁘다는 그림에서 ‘짼질짼질한’ 무늬 그림들로, 텅 빈 항아리 그림들로… 공간이 시원해진 그림들에서 나 자신처럼 갇혀 있어 날지 못 하는 새 그림들로, 더 나아가, 추상적인 나이프 터치 그림들, 기하학적인 그림들로… 무수한 반복과 변주를 더듬고 있다.

이것은 마치 아침엔 샐러드를 먹고, 낮에는 칼국수를 먹고, 저녁엔 된장찌개를 먹는 원리로, 동시다발적으로 많이 벌려서 해 나가는 작업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완성작도 많지만, 그에 못지 않게 미완성 또한 많다. 옛날엔 미완성이 나를 좀 애타게 했지만, 그때 호흡이 끊어진 그림들을 아직도 미완성으로 갖고 있으며, 지금은 이 모든 게 ,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시간의 재산이라는 걸 새삼 깨닫고 있다. 우울할 때는 짐이고 숙제이나, 의욕이 날 때는 엄청난 자산인 것이다. 

이 세상의 많은 유명한 화가들이 존경을 받는 이유는,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견디기 어려운 세상에서, 그림이라는 또 하나의 무모함을 갖고 모호한 인생을 홀로 견뎌왔기 때문이 아닐까?

안개 속 같이 모호한 인생을 걸어가는 데, 그림은 내게 지팡이가 되어주는 친구이다. 미워하다가, 그리워하다가, 안쓰러워하다가, 버리고 싶어하다가, 또 다시 내 존재를 거는 유일한 버팀목이 되어 주는… 

이젠 나도 내가 어쩔 수 없다는 걸 알기에, 버리기엔 이미 너무 멀리 왔으며, 이것이 운명인 걸 알기에, 나를 달래가며 작업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