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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쿠보에이지 : 지구를 걷는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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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걷는다, 행위」

전시장 입구에는 오쿠보 에이지가 대구시 봉산동에서 가창면 우록동까지 20.5km를 걷는 장면들을 보여주는 작은 모니터 1점, 작가가 살고 있는 오사카의 종이지도 위에 평소 걸었던 경로를 그린 드로잉 1점, 일본 도쿠시마에서 남쪽으로 140km를 걷고 다시 서쪽으로 96km를 걸으며 끌었던 나뭇조각과 그 닳은 나무의 단면을 인장(印章)처럼 찍은 종이 작업, 그리고 길을 걸어가면서 채집(採集)한 오브제를 콜라주한 화첩이 보인다. 전시장 안으로 더 들어가면, 시코구(四國)의 길을 걷는 동안 채집한 오브제를 콜라주한 작고 오래된 책 10점과 지도 드로잉 1점이 있다. 또 정면 벽과 그 맞은편 벽면에는 130×87cm 크기의 사진작업이 보이는데, 작가가 촬영한 우록동의 자연풍경 사진 위에 현장에서 채취한 흙으로 ‘수평’과 ‘수직’을 상징하는 사각도형을 드로잉한 것이다. 이 드로잉의 오른편 벽에는 봉산동에서 우록동까지 걸어가며 줄에 매어 끌었던 나뭇조각 2점과 그것이 닳기 전․후의 단면을 인장한 종이가 있다. 그리고 우측 아래에는 걷는 도중에 채취한 흙과 나뭇잎을 콜라주한 화첩이 1.5m정도 길이로 펼쳐있다. 또 우록동까지 걸으며 채집한 깃털, 날개조각, 쇳조각 등의 오브제들을 작은 투명비닐에 담아 4m 정도 길이의 횡으로 벽에 설치한 작업도 보인다. 

이 전시는 “‘걷기’가 인간의 삶을 아름답게 할 수 있는가?, 어떤 미술이 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다. 작가의 ‘걷는 행위’에서 비롯되는 이번 ‘지구를 걷는다’ 전시는 일본으로부터 바다를 건너와 대구 근처 우록동에서 삶을 마친 김충선(金忠善 1571~1642)에 관한 시바 료타로(司馬遼太郞 1923~1996)의 글을 마주한 것에서 시작된다. 2016년 10월15일, 오쿠보 에이지는 김충선이 걸었던 길을 따라서 걷는 ‘행위’를 통해 자신이 선택한 시간과 공간, 나아가 자신의 또 다른 미술적 태도를 나뭇조각, 사진, 드로잉, 흙 등으로 시각화한다. 대지미술가 혹은 지난 40년 동안 미니멀 아트의 정신을 잇는 활동으로 알려진 오쿠보의 ‘걷는 행위’는 시코쿠(四國)지방 88개소 순례 길을 따라 걷는 프로젝트(1998~1999)와 일본 열도 홋카이도에서 돗토리를 거쳐 한국으로, 그리고 더 서쪽으로 나아가려 한 유라시아 아트 프로젝트(1999~2004), 또 에도 시대에 일본 전국을 행려한 하이쿠(俳句) 시인 마츠오 바쇼(松尾芭蕉)와 2천개의 불상 제작을 기원하며 전국을 돌아다닌 승려 모쿠지키 쇼우닝(木喰上人) 같은 역사적 인물의 발자취를 따라 걷기(바쇼 2009, 모쿠지키 2005, 2007) 등 지속적인 기록을 남기고 있다. 오쿠보의 설명에 따르면, 그의 ‘걷는 행위’는 그가 일과로 삼는 자연 ‘산책’의 연장선상에 있다. 하지만, 그가 이 행위를 또 다른 미술의 가능성으로 선택한 태도, 다시 말해 백지 위에 3㎜크기의 동그라미를 여러 색상으로 겹쳐 그리는 행위를 반복하며 마지막에는 흰색으로 덮어 그리면서 결국 백지만 남기는 작가의 1970년대 미니멀 작업과는 달리 자연 대지 위를 걷는 신체행위를 자신의 미술 작업으로 선택하는 태도를 이 전시를 통해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미술가로서 자신의 ‘걷는 행위’는 우연히 거기에 있는 길을 그저 아무 의도도 없이 걷는 것이다. 이는 오쿠보가 무엇인가를 ‘만드는 것’보다는 행위 과정에서의 정신적 충만감과 그 시각적 흔적으로서 오브제의 물리적 변화와 만남을 채집하는, 즉 무작위의 흐름에 자신을 맡기려는 작가의 태도 그대로이다. 이러한 작가의 ‘걷는 행위’는 하늘과 땅이 만나는 ‘수직’과 지구를 걷는 ‘수평’이 융합(融合)하는 현재, 여기에서 자신의 실존(實存)을 상징한다.

 

또 하나, 오쿠보의 ‘걷는 행위’를 해석할 수 있는 흥미로운 오브제가 있다. 그것은 일본 전국을 걸어 다니며 수많은 목조 불상을 만들었던 모쿠지키 쇼우닝이, 때때로 그 지방의 아이들이 그가 만든 불상에 끈을 달아 끌면서 장난감처럼 가지고 노는 모습을 그저 흐뭇해하며 바라보았다는 기록에서 비롯되었으며, 최근에 오쿠보는 끈에 매단 나뭇조각을 질질 끌면서 걷는다. 이때, 그가 끌고 다니던 나뭇조각은 대지, 즉 지구와 마찰하여 긁히고 닳아서 작아지고 둥글게 변화하며 그 흔적을 남긴다. 작가의 설명에 의하면, 나뭇조각이 닳은 만큼 나무를 끄는 미술가 자신에게 정신적 충만감을 전해주는데, 이 상태를 자신의 미술에서 중요한 부분이라고 한다. 

작가의 ‘걷는 행위’와 나뭇조각을 끌 때의 ‘저항’과 ‘진동’의 연동(連動)은 끈으로 연결된 작가의 몸에 그 상황의 시공간적 정보와 함께 기억되고, 함께 채취한 흙, 나뭇잎, 오브제들과 나뭇조각으로 남겨져, 김충선과 시바 료타로와 오쿠보 에이지가 공유하는 탁월한 충만함의 기억으로서 우리들 기억 속에서 또 다르게 재생될 수 있을 것이다.


봉산문화회관 큐레이터 정종구

작품이미지

전시전경

봉산동에서 우록동으로, 367×25.5cm, 길 위에서 수집한 오브제, 화지(和紙) 위에 흙, 2016



봉산동에서 우록동으로-나뭇조각1, 23×84cm(후박나무 3×3×15cm),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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