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중만전 : 상처 난 거리
2018-11-03 ~ 2019-02-02
한미사진미술관
■ 김중만이 작가로서 10년 동안 작업해온 《상처 난 거리》, 처음으로 선보인다
■ 대형 한지 프린트 작업 35점 최초 공개!
UNDER, 2013 ⓒ김중만 KIM Jungman
한미사진미술관에서 오는 11월 3일 김중만 사진전 《상처 난 거리》를 개막한다. 작가가 2008년부터 촬영해온 뚝방길의 나무들을 간결한 선과 여백으로 대형 한지에 프린트한 이번 전시작은 메케한 냄새와 먼지 때문에 인적이 드문 거리에서 제자리를 지켜온 나무를 통해 치유하고 변화하는 관계를 사진으로 담았다.
사진의 힘은 멈춰 서서 계속 보게 하는 데서 나온다.
- 롤랑 바르트-
사진가 김중만은 사진에 반해 사진으로 평생을 보냈다. 빌린 카메라의 뷰 파인더로 세상을 보았고, 필름 살 돈이 없어 텅 빈 카메라 셔터를 수없이 눌러댔고, 삶은 누구도 예측하기 어려운 날의 연속이었지만 지금까지 손에서 카메라를 놓지 않았다.
평범한 날 언제나처럼 지나던 인적 드문 길에서 망가지고 고통 받아 지친 나무를 만났다. 계절이 바뀌며 바람이 다녀가고 새들이 잠시 머물다 떠나기를 반복했다. 여전히 그곳은 아무도 모르는 인적 드문 곳이었고 김중만은 나무를 바라보고 기다리고 나무와의 거리 두기를 반복하는 시간을 보냈다. 그 ‘상처 난 거리’의 나무를 마주한 그날부터 지켜보기를 4년이 지나서야 카메라를 꺼내 들어 나무를 담았다. 거리 두기는 무관심이 아니었다. 작가의 시선은 아픔을 묻거나 파헤쳐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멀찌감치서 상처 난 모습 그대로 나무의 존재를 봐주는 것이다. 그래서 김중만의 바라보기는 따뜻하면서도 상처를 헤아리는 기다림으로 우리를 먹먹하게 한다.
CAN YOU HEAR THE WIND BLOW, 2009 ⓒ김중만 KIM Jungman
외로움에 지친 마음과 나무의 상처가 사진가의 그것과 동일시되는 그 날, 지나가던 새가 나무에 앉아 힘찬 날개 짓을 시작했다. 나무는 스스로를 드러냈고 바람은 나무를 단단하게 견디도록 더욱 세차게 불었다. 그렇게 거센 바람이 불고 나뭇잎이 떨어져 스스로 회복되고 치유되어 가듯 생명을 사진에 담아내기 시작했다. 완벽하지 않았던 존재가 오랜 기다림과 위로로 전혀 다른 존재로서 의미를 갖게 된 것이다. 나무는 지나간 아픔과 숨겨진 상처를 이겨내고 비로소 고요한 존재로서 김중만이 촬영해온 수많은 사람들처럼 화면 가득 당당하게 자리한다. 도시에 버려진 풍경 속에서 드러나는 상처의 고통과 애잔함 그리고 그 안에서 느껴지는 강한 이끌림이 김중만의 사진을 바라보게 하는 힘이다.
NOVEMBER RAIN, 2013 ⓒ김중만 KIM Jungman
김중만
KIM Jungman
한국전쟁 직후 1954년 철원에서 출생한 사진가 김중만은 개인사로 그가 지닌 역량에도 불구하고 한국 미술계에서 과소 평가 되어왔다. 십대시절 아프리카 부르키나 파소에 파견된 외과 의사 아버지를 따라 한국을 떠났다. 고국을 떠나면서부터 시작된 이 긴 여정은 그를 유럽에서 순수회화를 공부하게끔 이끌었으나, 1974년부터 1977년까지 프랑스 니스에 위치한 프랑스 국립 예술 학교 빌라 아르송에 재학하며 마침내 사진에 대한 자신의 열정을 발견하게 된다.
I SO DEADLY WISH YOU WERE HERE, 2012ⓒ김중만 KIM Jungman
1979년 아를 국제 사진축제에서 권위 있는 최우수 젊은 사진가상을 수상했으며 같은 해, 프랑스에서 가장 젊은 사진 작가 80명 중 한 명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자신의 뿌리를 찾고자 한국으로 돌아온 이후 리처드 아베돈, 헬무트 뉴튼, 사라 문, 허브 리츠와 같은 당대 상업 사진가들의 영향을 받아 1980~1990년대 아시아 상업사진의 창조를 자신의 길로 삼았다. 이후 그는 2000년 korea.com에서 33인의 한국 문화인 중 한 명으로 선정되었으며 올해의 패션 사진가상을 수상했다.
ARE YOU GOING WITH ME, 2012ⓒ김중만 KIM Jungman
예술성과 상업성 둘 중 하나만을 선택하게 하는 한국 사진계의 이분법적 한계를 극복하고자 노력해온 김중만의 작품들이 지닌 가치는 최근에서야 인정을 받기 시작했다. 2006년 돌연 상업 사진작가로서의 유명세와 화려한 경력을 뒤로 한 채 한국의 가장 유명한 모델, 음악가, 배우와 여배우들의 사진을 찍는 것을 중단하고 한국의 지역으로 렌즈를 돌렸다. 그는 예술가로서의 길을 선택한 것에 대해 논의하기보다 9년간 대부분을 침묵으로 일관해 왔다.
WALKING HUMANIST, 2008ⓒ김중만 KIM Jungman
그의 작품이 왜 전 세계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김중만은 평소와 같은 낮은 음성으로 “노력해왔으나, 스스로에게 “이대로 충분한가”라는 질문을 계속 해왔다.” 겸손히 말을 이으며, “지금이라면, 작품을 보여도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고 답했다. 국제적으로 작품을 선보이고 싶다는 그의 소망은 2013년 파라마운트 픽쳐 스튜디오가 미국 로스 앤젤레스에서 개최한 파리 포토 행사에서 두 장의 사진을 샌디에고 사진미술관에 판매하게 되면서 시작되었다.
2010년에 5번째 마로 상을 수상하고, 2015년 로펠러 재단에서 수여하는 상을 수상하였다. 그의 작품은 칼하트의 살로미와 에드윈 페, 아쿠오 에너지의 패트릭 루카스, 말레이시아의 니콜 팅 얍 등 뉴욕, 로스앤젤레스, 홍콩, 상하이 등 전세계에 소장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