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억은 답사를 통해 우리의 삶을 면면히 기록하고, 섬세한 칼끝으로 사실적인 풍경을 담아낸다. 나무를 깎아 표현한 풍경은 치밀하고 부드러우며 해학적이다. 작가는 특정 장소가 가지는 상징성이나 이야기를 작업에 풀어낸다.
<한강과 임진강이 어우르다>는 한강과 임진강이 만나는 조강의 풍경을 묘사한 작품으로 분단의 역사를 상징한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풍경을 정성스레 목판화로 새겨나가며 장소가 가지는 역사성과 통일을 바라는 염원을 담았다.
이채영은 일상에서 흔히 마주치는 풍경 속에서 느끼는 이질적인 감정을 화폭에 담아낸다. 먹으로 표현한 섬세하고 치밀한 묘사는 장소에 대한 망각된 기억을 환기시킨다. 어둡고 차분한 색조는 추억속의 이미지 또는 어디선가 본 듯한, 그러면서도 낯선 정서를 자아낸다. 작가는 바로 그 ‘이질적인’ 감정을 자아내는 장소들을 그리고자 한다.
<섬>은 집 근처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하천의 모습을 수면 위에 홀로 떠다니는 섬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원경과 후경의 차이를 두지 않고, 여백에 대한 동일한 색표현은 물리적 거리감을 상실하게 한다. 이러한 표현은 대상을 일상의 풍경으로 받아들이기 보다는 찰나의 순간과 감정으로 공유하게 한다.
유승호는 글자나 점을 반복 사용하면서 자신만의 산수화를 그려낸다. 멀리서 보면 전통 수묵 산수화처럼 보이지만 가까이 다가가 들여다보면 깨알같이 작은 글씨들이 모이거나, 흩어지면서 만들어 낸 형상임을 알 수 있다. 사전적 의미가 없는 의성어, 의태어로 만들어진 작품은 전통 수묵산수화가 가지고 있는 권위적인 이미지를 벗어나게 해준다. <야~호>는 산 정상에서 외치는 의성어로 만들어 낸 수묵 산수화다. 여기에 동양화에서 흔히 쓰이는 장지와 서양의 제도 용구인 펜의 결합은 동양과 서양, 문자와 이미지, 쓰기와 그리기의 경계를 넘나들며 작가만의 ‘문자산수’를 완성시킨다.
이호억의 작업은 자신과의 만남이며, 타인과의 소통이다. 작가에게 종이는 촉각과 감정이 존재하는 피부와 같은 매체다.자신의 내면과 마주하는 오랜 시간을 보낸 후, 종이 위에 천천히 수를 놓듯 선을 이어가며 자신만의 수묵화를 완성한다.
<시간과 움직이는 것과 살아있는 것>은 작가 내면에 켜켜이 쌓인 어두운 침전 시간 이후 이러한 내용을 다시 수면 위로 끌어올린 작품이다. 종이 위에 붉은 안료로 섬세하게 대상을 그려내고, 그 위는 먹으로 채운다. 나무와 산새들이 이루는 풍경은 자신과 타인의 얼굴을 발견하고 소통하는 장(場)에 다름 아닐 것이다.
최선의 작업은 미술 작품으로 분류되는 통상적인 재료나 표현방식에 국한되지 않는다. 회화의 물질성의 한계를 뛰어넘으려는 작가의 시도는 보이지 않는 재료 혹은 사회적 사건들로 얻은 재료들의 사용을 통해 알 수 있다. <유월의 오디>는 청와대 인근 오디나무에서 채집한 열매를 캔버스에 던지거나 떨어뜨려 완성한 작품이다. 시위에서 짓밟힌 국민들의 모습을 오디를 통해 표현한 것으로, 캔버스에 흩뿌려진 오디는 시간이 흐를수록 산화돼 혈흔처럼 보인다.
박미경의 작업은 기억의 발아증식 과정을 탐구하고 이를 중첩된 붓질을 통해 얻는 두터운 질감, 어두운 색조 등을 통해 초현실적으로 표현한다. <동굴>은 기억의 도피처이자 비밀스러운 장소처럼 보인다. 작가는 자신의 과거에서 모티프를 얻지만 특정 사건이나 형상에 머물러 있지 않고 있다. 여러 번의 붓질이 여러 방향으로 중첩되어 시작과 끝의 경계가 모호해진 풍경은 기억의 유동성을 나타낸다. 어둠 속에서 빛이 표현되고, 빛의 방향은 다시 어두움을 향하면서 캔버스 위에서 요동치는 움직임들을 표현한다.
오선영은 전설, 우화, 동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소재들을 수집하여 작업한다. 이들 문학에서 발췌한 장미, 나무, 숲 등의 추상적 의미를 내포하는 명사들을 조합하여 작가 특유의 풍경을 만들어낸다.
<Green spirit>은 달빛이 드리워진 오솔길 풍경이 경쾌한 붓질과 선명한 색채로 표현된 작품이다. 추상과 구상의 경계에 있는 나무와 잎사귀들은 동화적 상상력을 유도하며, 유화 특유의 두터운 질감을 지양하면서 서정적이고 시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조문희의 작업은 주변에서 볼 수 있는 풍경의 관찰을 기반으로 자신이 느낀 감정을 작품에 담아낸다. 평범한 도시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공간의 정체성을 알 수 있는 시각적, 언어적 요소들을 제거해 프레임을 단순화시킨다. 정교한 조작, 왜곡을 통한 작가 특유의 지움의 과정은 익숙한 장소를 부자연스럽지만 신비로운 공간으로 재탄생시킨다. <매일의 풍경>은 2000년대 초반 개발된 서울의 신도시 건물 중 하나이다. 단조로운 일상에서 본 풍경임에도 그 속에서 느끼는 낯선 감정과 현대 사회의 일상의 표정을 담아낸다.
유한이의 작업은 학문적 고증, 실물 답사 등을 통해 얻은 자료를 바탕으로, 장지 위에 수많은 격자선을 짜는 것으로 시작된다. 냉정하고 엄격하게 그어진 선들로 이루어진 건축물은 기존의 질서, 제도, 관습 등을 새로운 시각으로 볼 것을 주문한다.
<탑(?)>은 익산 미륵사지 석탑이 모티프가 된 작품이다. 반복, 중첩된 선들로 이루어진 구조물은 빈틈없이 견고해 보이지만 붓질에 의한 옅은 채색으로 건조해 보일 수 있는 화면을 조율한다. 기념비적인 건축물에 잠복된 제도라는 정치적 구조를 작가만의 날카롭고 유연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위영일의 작업은 회화의 구성조건과 이를 감상하는 태도를 비관적으로 고찰하며, 기존 회화의 양식과 고정관념을 흔든다. 일상에서의 우연성과 즉흥성을 표현함으로서 작품이 어떠한 범주로 규정되지 않아야 함을 강조한다. <Embed-landscape 4>는 언뜻 보기에 동양의 산수화를 연상하게 하지만, 면밀히 살펴보면 유화물감을 두껍게 칠해 만들어진 바위와 서양식 명암법으로 그려진 나무들이 보인다. 배경은 기하학적이며 추상적인 도상들이 화면을 채우고 있다. 다양한 기법, 재료들의 결합을 통해 굳혀진 관점에서 벗어나 다양한 시각으로 작품을 해석할 수 있음이다.
이혁발은 육체에 대한 끊임없는 탐구를 통해 인간의 본질에 대한 작업을 회화, 벽화, 사진, 행위미술 등의 다양한 매체로 시도한다. <육감도20181008>은 보편적인 몸에 대한 해석을 넘어서, 작가만의 시각으로 재해석한 작품이다.
‘육감도’란 현실에서 이뤄졌으면 하는 이상적 공간, 지상 극락을 상징하며 육체적 쾌감에 대한 의미를 담고 있다. 욕망을 상징하는 이미지들이 캔버스 위를 떠다니며 이에 대한 상상력을 유도한다. 이러한 미술 작업은 경직된 사고의 틀을 깨고 기존 미술의 엄격함을 벗어난 것으로서 오히려 인간의 본질을 심층적으로 탐구하고 보다 자유로운 작품 세계를 구축한다.
김춘재는 인간과 물질문명을 고찰하고, 물질만능주의로 오염된 사회의 모습을 화폭에 담아내며 현대인의 물질적인 가치관을 비판한다. <성남에 고향을 심자>는 성남의 특색 없는 간판들을 빈틈없이 빼곡하게 끼워 넣어 지역의 역사와 삶의 치열함을 보여준다. 가까이서 보면 익숙해 보이지만, 멀리 떨어져 보면 무질서하고 폭력적으로까지 보인다. 유화의 물성과 세필의 정교함은 그가 전달하는 메시지를 더욱 강렬하게 부각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