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PPY! 여주 FANTASY
김성호(여주미술관 관장, 미술평론가)
I. 여주의 신생 사립미술관의 새로운 기획전
여주미술관은 하반기 기획전으로 겨울 방학을 맞이하는 학생들과 가족을 위한 환상의 미술관 나들이를 준비한다. 《HAPPY! 여주 FANTASY》라는 제목의 이 전시는 외형의 스펙터클과 관객 참여형 콘텐츠를 화두로 한 채, ‘즐거움과 행복’을 전면에 내세우는 다분히 친(親)대중적 전시를 지향한다.
지역의 미술관이 공공성에 대한 소명을 다하기 위해서는 지역 주민의 문화 예술 향유권에 대한 고려는 필수적이다. 여주시에 있는 여주미술관은 고려제약 대표이사 박해룡 명예관장이 열정을 다해 만들어 올해 5월에 개관한 신생 사립미술관이다. 여주라는 지역에 자리 잡은 지역 미술관이라는 점에서 이번 기획전을 여주시의 정책 슬로건인 ‘사람 중심, 행복 여주’에 부응하는 전시로 기획했다. 이번 기획전은 ‘행복’을 전시를 위한 슬로건으로 삼았고, 그것의 방법론을 ‘환상’으로 번역되는 ‘판타지’의 개념으로 구현하고자 했다. 따라서 이번 전시가 지향하는 바는 ‘미술이 선사하는 행복한 환상 체험’이다.
이러한 환상적 경험이야 서커스나 마술, 스펙터클 공연에서 주요하게 간주하는 소통의 방법론이다. 이번 기획전은 환상이라는 소통의 방법론을 적극적으로 가져와서 여주시민뿐 아니라 모든 관객에게 행복한 관람의 기쁨을 드리고자 한다.
생각해 볼 것이 있다. 오늘날 판타지(Fantasy)라는 용어는 고대 그리스어 판타스마(φάντασμα, Phantasma)로부터 왔다. 따라서 판타지는 판톰(Phantom)이라는 유령, 허깨비처럼 실재(reality)와는 다른 허상(虛像)의 것으로부터 출발했지만, 이것이 미술의 탄생과 밀접한 ‘모방론(mimesis)’으로부터 기인한 것이라는 점에서, 판타지는 미술의 본연적 세계에 깊숙이 들어와 있는 개념이라는 사실이다. 다만 작금의 시대에 미술보다는 공연, 연극, 영화와 같은 장르가 이러한 소통의 방법론을 적극적으로 구사하고 있기에 현대미술의 전통과는 관계없는 것으로 간주되어 온 것도 사실이다. 그도 그럴 것이 20세기 현대 미술은 판타지라는 개념을 수렴하는 화려한 연출의 효과보다 ‘엘리트 미술’, ‘예술을 위한 예술’이라는 개념 아래 외려 진중하고 무거운 미학 내부의 문제로 잠입함으로써 대중과 소외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20세기 중반 팝아트의 등장 이후 21세기에 들어 포스트모더니즘의 분위기 속에서 주변으로 밀려났던 이러한 ‘판타지’의 세계가 비로소 중심으로 오게 되면서 미술의 친대중화를 촉발하는데 영향을 주었다는 점에서 오늘날 현대미술에서 판타지란 그다지 낯설지 않다.
이번 전시는, 이러한 인식 하에, 흥미롭고 재미있으면서도 즐거움 이면에 배태하고 있는 현대 사회의 희로애락에 관한 다양한 삶의 문제의식을 성찰하도록 관객을 인도할 것이다. 미술관 전관에는 초대를 받은 유정혜, 임정은, 김동현, 작가수요일 4인의 미술가들이 자신의 조형언어로 만들어 낸 스펙터클과 판타지의 세계로 관객을 차례로 인도한다. 관객은, 금빛 터널을 통해서 관객을 인도하는 판타지의 프롤로그(유정혜), 움직이는 색 그림자를 통해 구현하는 시각적 향연의 판타지(임정은), 놀이와 참여를 통해 호모 루덴스라는 유희의 인간을 공감각으로 체감하는 판타지(김동현), VR 체험을 통해 현실과 가상을 넘나드는 판타지(작가수요일)을 차례대로 경험하게 될 것이다.
II. 참여 작가와 출품작 소개
유정혜, 임정은, 김동현, 작가수요일로 구성된 4인의 참여 작가들의 전시를 공간 연출의 내러티브 순서대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유정혜는 판타지의 세계로 가는 길을 연다. 깃털이 달린 금빛 크롬사(絲)를 늘어뜨려 만든 높고 좁은 터널! 그 찬란한 금빛 터널은 ‘미지의 세계로 가는 길’이다. 그곳은 차안(此岸)의 현실로부터 피안(彼岸)의 낙원으로 우리를 이끄는 길이다. 어떤 이에게 그 길은 번뇌의 현실을 망각하게 만드는 환각의 터널이자, 또 어떤 이에게 그것은 슬픔과 낙망의 현실을 위무하는 치유의 터널이 된다. 보라! 종종걸음을 옮기며 활짝 웃는 아가의 얼굴을, 친구들과 재잘거리는 수다로 함박웃음을 터뜨리는 청소년들의 얄궂은 표정을. 그곳에는 너의 길을 따르는 내가 있고 나의 길을 인도하는 너의 모습이 있다.
돌아선 길에서 그대는 0.2mm 동선을 코바늘뜨기로 만든 무수한 꽃들을 만났는가? 거울과 같은 반영체 앞에서 우리는 여전히 현실의 나와 환영 속 너의 모습을 만난다. 그리곤 질문한다. ‘우리는 어디에서 와서 무엇을 남기고 어디로 가는 것일까?’
임정은은 빛의 반영과 투영의 효과를 실험하는 유리 조각을 통해 화려한 색 그림자로 가득한 판타지의 세계를 만든다. 카멜레온처럼 시시각각 빛의 변주를 거듭하는 판타지! 과연 그 화려한 판타지 안에는 무엇이 있는가? 작가는 그 속에서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는’ ‘깊이’의 세계를 찾는다. 그것은 ‘보이지 않는 세계’에 이르는 신비한 열쇠와 같은 것이다. 철학자 메를로 퐁티(M. Merleau-Ponty)에 따르면, 인간이 ‘깊이’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위치를 벗어나야 하고, 세계에 대한 자신의 관점을 포기해야 하며, 자신을 동시에 도처에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
그렇다. 임정은은 보는 것에 대한 익숙한 관성을 탈주하고 보이지 않는 것을 ‘새로운 눈’으로 깊이 보기 위해서 조명과 조각의 움직임을 실험하면서 ‘깊이’에 관해 성찰한다. 우리는 그것을 한마디로 ‘빛의 마술적 판타지에 대해 진지하게 질문하는 미술적 성찰’이라 할 것이다.
김동현은 놀이에 놀이가 증폭되는 판타지의 세계를 선보인다. 그곳에는 호이징가(J. Huizinga)가 말했던 호모 루덴스(Homo Ludens)라는 ‘놀이하는 인간’의 시간으로 가득하다. 볼거리, 놀거리를 한가득 내놓은 그녀의 작품들은 관객의 흥미로 시작되고 관객의 참여로 완성된다. 관객이 보드 위에 올라타 균형을 잡으면서 시작되는 거대한 해파리의 움직임이나, 관객이 핀볼 게임을 하면서 종을 맞출 때 비로소 움직이기 시작하는 구슬 그리고 구슬의 낙하가 끝나는 지점에 관객에게 주어지는 초콜릿!
김동현은 움직임에 반응하는 센서를 통해서 관객에게 예측 불가능한 상황 속에서 작품을 맞닥뜨리게 하여 흥미를 유발하거나, 자신의 참여를 통해서 작품이 변모되고 있다는 인식을 관객에게 부여함으로써, 작품 감상에서의 몰입을 이끈다. 관객은 안다. 자신이 기계와 물아일체를 이룬 상호작용의 끝자락에서 판타지의 세계가 드넓게 펼쳐지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작가수요일은 동화적 판타지의 세계를 현실과 가상의 영역에 함께 구축한다. 야자수처럼 키가 큰 식물이 대나무 숲에 그늘을 드리운 전시장에는 커다란 호박이 나뒹굴고 목마가 뛰어다니며, 편안하기 그지없는 안락의자가 내 몸을 감싸 안는다. 벽면에 투사된 영상은 ‘가상현실 체험 장치’인 VR을 통해 관객들을 현실계로부터 가상계로 잠입시킨다.
이러한 공간 전환의 과정은 신기하고도 흥미로운 체험으로 이어진다. 그곳에는 관객의 친구로 선뜻 나선 따뜻한 마음씨의 로봇 아루스(Arus)가 살고 있다. 동화 속 내러티브가 잔잔하게 펼쳐지는 그곳에 감정 이입하는 우리는 어린 시절 꾸었던 꿈들을 떠올리고, 현재의 고민을 덜어내고 희망을 나눈다. 관객에게 유유히 유영하며 들어오는 공상의 미래는 또 무엇인가? 그의 작품은 우리를 꿈과 판타지의 세계로 인도한다. 그뿐인가? 다양하게 펼쳐지는 체험형 프로그램은 판타지의 세계에서 그가 우리에게 덤으로 나눠 주는 선물이다.
III. 에필로그 - 판타지의 문 밖에서
어떤 면에서 《HAPPY! 여주 FANTASY》라는 이름의 이번 기획전은, 어린이에게 즐거움을 선사하고, 연인에게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어 주고 동반 나들이를 나서는 가족의 화합을 염원하는, ‘연소자 관람가’를 목표로 삼은, 대중영화의 지향점과 별반 다르지 않다. 아울러 지나는 연말과 다가오는 연시의 변곡점을 맞이하는 이 전시는, 과하게 비유하면, 한 철 특수를 노리는 ‘그렇고 그런 예술 야바위꾼의 음험한 욕망’과도 별반 달라 보이지 않을 수 있다. 혹은 이번 전시는 우울증과 공황장애를 앓는 이들에게 처방을 내리는 것처럼 현대 자본주의에 소외감과 박탈감을 느끼는 많은 이들에게 미술 치료의 기대 심리를 부추기는 허망한 기대일 수도 있겠다.
기획자는 알고 있다. “불특정 관객 다수가 좋아하는 전시의 유형은 즐거움과 행복함 그리고 감동이 함께 하는 전시”라는 주장이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대중이 모두 이러한 행복의 감정을 쥐어짜는 기획에 박수를 보내지 않는다는 사실도 잘 안다. 전시를 총괄한 기획자의 입장에서, 한국의 치열한 현대미술 현장을 분석하고 그 속에서 견인하는 동시대 담론으로 꾸려야 할 전시를 뒷전으로 미루고 손쉬운 방식으로 대중에게 ‘전시 유람’을 요청하는 구애의 전략을 펴는 것이 아니냐는 눈 흘김이 있음을 안다.
그러나, 여주미술관은 올해 5월에 개관한 신생 사립미술관의 위상을 알린다는 취지에서 뒷전으로 미루기로 했던, ‘동시대 담론의 시각예술화’라는 미술관의 공공적 소명을 결코 방기하지 않을 것이다. 장기적 호흡 속에서 기획한 다음 전시는 ‘구상화 혹은 형상 미술에 관한 전시’가 될 것이다. 다음 전시는 미술 내부의 담론 속으로 깊이 들어가는 조형예술의 범주 안에 있는 것이지만, 이 전시는 점차 후속 전시로 이어지는 호흡 속에서 사회학적 담론 속의 미술의 언어가 무엇인지를 탐구하는 다양한 전시로 이어질 것임을 미리 말씀드린다.
여주미술관이 심혈을 기울여 만든 판타지의 세계를 통해서 많은 관객이 연말연시의 흥겨운 분위기를 만끽하면서도 다사다난했던 한 해를 성찰하면서 되돌아보고, 또 새해를 힘차게 맞이하는데 큰 활력이 되길 기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