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상블ensemble: 이종송의 근작
장준구 | 이천시립월전미술관 학예연구실장
그간 이종송은 전통과 현대, 동양과 서양, 사실과 표현이라는 어찌보면 대립적이라고 할 수 있는 요소들을 산수화를 통해 조화, 결합시키며 자신의 세계를 구축해왔다. 이를 통해 분명한 뿌리를 지니고 있으면서 현재라는 시점에도 어색하지 않은, 많은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깊이와 폭을 아우르는 작품을 그려올 수 있었다. 그도 한때 서구적 추상미술을 통해 작품세계를 모색한 적이 있었지만, 전통에 대한 자각을 통해 이내 방향을 바꾸었다. 조선후기 산수화의 선구자였던 겸재謙齋 정선鄭敾(1676-1759)을 비롯한 과거 동아시아의 회화 전통은 그에게 있어서 중요한 귀감이자 변화의 동인動因이 되었다.
그렇지만 그가 추구한 것은 단순한 전통으로의 회귀가 아니었다. 전통을 형상 자체로서 받아들이기 보다는 그 조형성의 의도와 특징, 미감의 장점을 현대적 관점에서 하나의 방법론으로서 수렴했던 것이다. 고분벽화 및 사찰벽화의 기법과 표현방식을 토대로 만들어낸 흙벽화 기법은 이러한 전통에 대한 독창적 재해석이 낳은 탁월한 성과였다. 한편 면面이 중시된 묘사, 유화를 연상시키는 마티에르, 강렬하고 대비적인 채색 효과, 형태의 단순화 등은 서양적인 요소를 체화시킨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전통과 현대, 동양과 서양의 조화와 자기화를 통한 그의 방법이 사생 현장에서의 시각적 경험 및 감흥과 결합하여 현재의 작품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바로 그의 작품이 독자성과 보편성을 동시에 보여주는 이유이다.
이번 전시에 출품되는 이종송의 신작은 이러한 이전의 경향을 지속하면서도 구도, 색채, 필선 등 전반에서 한층 완숙해진 면모를 보여준다. 그렇지만 이전과 다른 두드러진 변화가 눈에 띈다. 작품 전반에서 불균일한 선묘가 강조되었으며, 화면에서 중요한 조형적 요소로 활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의 작품에 있어서 먹의 선묘, 즉 필선筆線은 과거에도 중요했지만, 이젠 보다 전면화全面化되었다. 그는 지금껏 흙벽화 기법을 통해 작품을 제작해왔고, 자연스럽게 고분벽화와 사찰벽화에서처럼 선보다는 면과 채색이 도드라졌었기에 상대적으로 선의 효과는 크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이는 그가 물소리, 파도 소리, 바람 소리, 나뭇가지 흔들리는 소리, 음악 등의 청각적 요소를 풍경을 토대로 시각화하는 과정에서 그 리듬과 운율을 반영하려고 한 결과이다. 덕분에 화면 속의 산, 나무, 물결, 운무雲霧 등이 마치 유기체처럼 약동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현장에서의 시각과 청각 그리고 지각이 하나되어 만들어진 작품인 셈이다. 실제 경치를 대상으로 했음에도 객관적이지 않은, 오히려 지극히 주관화된, 풍부한 감성의 산수화로 거듭난 것이다. 물론 이러한 면은 그의 이전 작품에도 반영되어 있었지만 근작에서 더욱 주목된다.
한편 이러한 불균일한 선묘가 부각되면서 전통적 미감이 새롭게 수렴되는 결과를 가져온 측면도 있다. 20세기 이전의 수묵채색화, 특히 문인화文人畵에 있어서 불균일하며 비백飛白이 많으며 변화무쌍한 선묘는 중국 원대元代의 문인화가 조맹부趙孟頫(1254-1322)가 “서화동원書畵同源” 즉, “서예와 회화는 근원이 같다”며 서예적인 표현방식을 구사해야 좋은 그림이 될 수 있다고 역설한 이래 줄곧 중시되었던 기법적 특징으로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1786-1856)의 <세한도歲寒圖>나 <부작란도不作蘭圖> 등에 있어서도 조형미의 근간을 이룬바 있다. 즉 이종송이 과거 동아시아 문인화 전통의 핵심적 요소를 작품의 중요한 요소로서 한층 부각시킨 셈이다.
또한 이번 전시 출품작들의 경우, 전반적으로 과거에 비해 채색이 옅어진 점도 중요하다. 덕분에 활달한 선묘의 효과가 한층 돋보이고 조화를 이루게 되었다. 그 결과 화면 전체가 마치 조선시대의 수묵담채 산수화처럼 산뜻한 모습을 보여준다. 그의 이번 신작에서 고분벽화, 진경산수화, 문인화, 추상미술의 표현방식과 미감이 앙상블을 이루는 화면이 완성된 셈이다. 이 지점에서 전통을 현대화, 당대화當代化, 자기화하려는 작가의 의도와 노력을 여실히 읽을 수 있다. 또한 이것이 단순히 기법적인 접근 차원의 문제라기보다는 산수의 본질, 자연의 핵심만을 포착하여 이를 시각화하고자 하는 작가의 궁구窮究와 실천의 결과물이기에 더욱 유의미하다. 색과 먹의 조화, 사실과 표현의 균형, 분방함과 절제의 융합이라는 작품 창작에 있어서의 조형적 어려움이자 핵심을 독자적인 방식으로 개척한 그이기에 앞으로의 작품세계에 대한 궁금증도 크다.
풍경에 대한 생각을 잠시 돌아보다
- 이종송 작가노트
작가는 현장사생을 통하여 풍경을 그려왔다. 보이는 풍경의 단순한 재현이 아닌 풍경을 대하는 특별한 경험을 통하여 주관적경험에 의한 풍경을 표현해 왔다.
2015-7년 움직이는 산-Wind
바람은 작품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움직이는 산의 시점에 의한 동적인 표현의 산 그림을 바람이라는 요소가 추가되어 또 다른 느낌의 풍경을 그려냈다. 제주의 바람을 맞으며 오름 언덕의 풀들과 나무들 바람을 통한 동적인 표현을 볼 수 있다.
바람은 공기의 흐름이다. 이는 자연의 에너지의 흐름이라고 생각한다. 작품 속에 이러한 에너지가 흐르게 하는 표현의 시도를 하였다. 작가의 작품 속에 바람과 에너지의 흐름을 볼 수 있다.
2018년 숲의 춤 Dance of Forest
거시적 구도로 산의 형태를 그려온 작가는 숲의 일부분 관심을 갖는다. 거시적 구성의 거대산수에서 숲의 나무로 집중된다. 나무가 춤을 추는 듯한 형태가 등장한다. 나무가 스스로 움직일리 없다.
바람에 의해서 움직인다. 작가는 숲을 바라보며 상상하는 것을 좋아한다. 문득 떠오르는 이미지, 집중해서 바라보면 서서히 움직이는 형태가 보이기 시작한다. 마치 사람이 춤을 추는 듯한 형태로 보이기 시작한다. 사람도 풍경의 일부인것이다.
2019년 mountain in Motion-Concerto
음악을 통한 청각적 경험이 작품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몸으로 느끼는 다양한 감각 중 시각과 청각적 감각을 점과 선을 통하여 단순화된 풍경으로 표현한다. 바람소리, 나뭇가지의 흔들림, 물소리, 빗소리, 파도소리, 음악등 청각적 요소를 풍경에 접목하여 선의 리듬과 운율로 표현된다.
흙으로 만든 화면 위에 작가가 표현하려고 하는 중요한 조형 요소 중 청각적요소를 강조하고 단순화 하며 운율과 리듬에 집중하여 풍경에서 추상적 단순화를 추구한다. 빠르고 느린 선들과 안료의 흐름을 통해 의식의 흐름을 시각적으로 유도한다.
시각과 청각의 감각적 요소를 시각화 하고 선의 속도 흐름 강약 등을 통한 감정의 전달을 통해 다층적 구조와 추상화된 구성을 시도한다.
2020년 움직이는 산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 느낌이다. 대상의 본질에 집중하고 이를 바탕으로 직관적표현을 통한 단순화작업을 한다. 단순한 구성의 화면에 무수히 많은 결을 만들고 그 깊이를 더한다. 가늘고 단조로운 반복적 선의 중첩을 통하여 산의 양감을 표현하고 시간과 공간의 깊이를 표현한 선을 잘 보여주기위하여 그 동안 구현했던 채색기법보다는 맑고 엷게 중첩된 채색방법을 사용한다.
이전의 강렬하고 과장된 색의 표현에서 맑고 깊이 있는 색의 표현으로 변화를 추구하였다. 시간과 정성이 필요한 화면 밑 작업에서 작가는 흙으로 의도된 질감을 만든다. 이렇게 만들어진 바탕의 질감 위에 자유롭지만 섬세하고 다양한 표현을 할 수 있는 비정형의 즉흥적선묘를 중첩하여 표현한다. 무수히 많은 선들과 점들로 이루어진 산은 화면에 가까이 갈수록 섬세하고 밀도 있는 표현을 볼 수 있다. 멀리서 보면 단순한 형태로 보여지지만 화면에 다가 갈수록 섬세한 표현을 볼 수 있다. 또한 작고 기호화된 형태의 동물과 새를 볼 수 있다.
히말라야와 차마고도등 먼 나라의 원시적 풍경에 이어서 한국의 자연과 풍경을 추상화 되고 단순한 조형언어로 표현했다. 제주오름, 남해의 섬, 서해의 섬, 울릉도와 독도, 설악산, 금강산 등 국내 풍경을 중심으로 현장 사생을 통해 풍경의 주관적 표현을 모색해왔다. 주제에 적용할 수 있는 조형 요소를 찾아내서 단순화하여 각기 풍경이 주는 감각적 요소를 추출한다. 소리와 바람을 통한 단순화작업을 시도하며 푸른 생명을 품고있는 대지의 생명력에 관한 표현과 단순한 걷기 행위와 명상을 통한 반복적행위를 통한 자기성찰과정에서 나타나는 새로운 풍경을 해석하였다.
작가는 우리나라 풍경에 대한 관심이 점점 커지고 있다. 제주풍경과 남해풍경작업 울릉도와 독도 설악산 등 예전에 여러 번 작업해본 대상이다. 그런데 요즘 다시 새롭게 아주 새롭게 다가온다. 우리 산하 너무 아름답고 신비롭다. 아주 섬세하고 변화가 많다.
다양한 투시법을 이용해서 대상을 이동시점으로 파악하고 특징을 표현한다. 객관화된 사실적이고 세부적인 표현이 아닌 단순화된 추상적풍경을 그린다. 가장 중요한 느낌만을 선택적으로 표현하여 화면을 구성하며 한 화면에 복합시점과 다양한 계절을 동시에 표현하는 다중표현방식을 사용한다. 고정시각에서 벋어난 이동형 시방식을 채택하여 풍경의 공간을 다원적 복합시점으로 표현한다. 구도의 문제 또한 현장 사생을 통해 계획한다. 사진에 의존하지 않고 가능한 사생을 통해서 제작한다. 현장에서 그리고 싶은 풍경을 만나면 즉시 화첩을 펴고 먹으로 대상을 사생한다. 세부적인 묘사는 필요 없다. 내가 만난 풍경이 주는 특별한 주제가 그려지고 있는 것 이다
최근에 동일계열의 색을 많이 사용해 오고 있다. 다양한 천연안료의 색상과 풍경이 주는 새로운 조합을 시도하려 한다. 단순한 색의 사용이 아니고 깊고 명상적인 색의 적용을 시도 해보려 한다. 일반적인 색의 의미는 나에게는 흥미롭지 못하다. 대상에서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와 같은 즉각적 색상을 깊이 있게 사용하여 풍경의 추상적 단순화 과정에 적용해 본다. 천연염료인 쪽의 깊고 푸른색을 사용하여 하늘과 우주, 바다를 포함할 수 있는 깊은 느낌을 주고있다. 작가에게 푸른색은 초월적 소통을 할 수 있는 깊은 심연의 색이다. 동일계열의 색을 사용하여 집중된 느낌을 주고 있다.
이종송 (李宗松) lee Jongsong
건국대학교 글로컬캠퍼스 조형예술학과 교수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동양화과 및 동 대학원 졸업
대한민국 미술대전 특선 및 우수상 수상
40회 개인전 (서울, 일본, 미국, 프랑스, 캐나다,이탈리아 등)
250여회의 국내외 단체전 및 초대전에 출품
국립현대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 국립중앙박물관, 경기도 미술관, 박수근미술관, 한국은행, 일본 나고야 한국 영사관, 캐나다 한국 대사관, 건국대학교 새천년관 및 국제학사, 건국대학교 병원, 건국대학교 글로컬 캠퍼스, 국정원, 문화관광부, 부산항만공사, 뉴욕중앙일보사, 대웅제약, 봄파머스가든, 알펜시아리조트,수원고등법원, 의료보험심사평가원등에 작품 소장되어있다.
초중고 미술교과서 작품수록
10여회 히말라야, 티벳, 네팔, 차마고도, 실크로드등 오지여행을 통한 스케치 후 작품제작, 차마고도 다큐제작참여
천연안료와 벽화기법에 관한 논문 다수
youtube: 이종송
e-mail: fresco3@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