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원시립마산문신미술관《사랑의 기하학》기획전시 개최
마니페스타 문신 Ⅰ, 청년작가 4명의 기하학적 시선 고찰
창원시립마산문신미술관(시장 홍남표) 기획전 《마니페스타 문신 Ⅰ - 사랑의 기하학》이 오는 12월 20일에 문신미술관 제2전시관에서 개최된다.
《사랑의 기하학》은 측정하거나 공식화할 수 없는 개념의 ‘사랑’을 수학적 학문 ‘기하학’과 배치한 것으로, 오늘날이 추구하는 이상향과 이에 따른 아이러니를 사유해보는 과정을 은유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주제와 연결된 네 명의 청년작가들의 기하학적 시선을 엿볼 수 있다.
전시 시리즈 ‘마니페스타 문신’은 ‘문신을 나타내다’라는 의미로, 문신의 예술세계에서 나타나는 개념과 형식을 바탕으로 현대미술의 담론과 미의식을 공유하고자 기획된 것이다. 이번 첫 번째 주제는 ‘기하학’이다.
노인우는 전통 창호를 다채로운 색채와 접목해 빛으로 공간을 점유하는 조각을 선보인다. 서로 다른 존재의 다양성에 대한 사유가 엿보이는 그의 조각은 빛의 파장과 투과를 이용해 스펙트럼과 일루젼을 생성하며, 단단한 조각적 특성과 빛의 비물질성을 동시에 관객에게 선사한다.
방상환은 물건의 사용법을 기술한 매뉴얼지 위에 도식화한 기하학적 펜 드로잉을 선보인다. 그는 불확실한 추측과 불합리한 신념이 난무하는 세상에 해답이라도 주듯 관객이 자신의 드로잉에서 약속된 도형을 그리는 것과 같은 작도적인 해답을 찾기를 기대한다.
장건율은 자연물에서 나타나는 조형적 요소와 구성을 극대화한 추상회화를 선보인다. 기하학적 요소와 관능적 색채로 구성한 그의 페인팅에서는 최소한의 형태와 색을 이용한 만물의 형태와 색채의 아름다운 해방을 엿볼 수 있다.
장은희는 바다에서 일어나는 사회적 이슈에 대한 사람들의 시선을 담은 조각을 선보인다. 작가는 이분법적으로 결론지을 수 없는 사회적인 문제에 대해 관찰하며, 공장, 항구, 바다와 배, 노후된 마을의 질감과 색감을 수집하고 버려지거나 잊혀질 수 있었던 기억을 조각으로 재생산한다.
이번 전시를 통해 작가들의 기하학적 면모를 보며 오늘날 형식과 공식에 따라 해석되기를 바라는 많은 사랑이 보편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점을 직시하고자 하며, 이상적인 사랑을 나누기 위해 어떠한 유연한 태도를 취해야 할지 사유하고자 한다.
전시는 오는 12월 20일부터 2023년 4월 30일까지 창원시립마산문신미술관 제2전시관에서 열린다.
정숙이 문화예술과장은 “창원시립마산문신미술관은 문신의 예술세계에서 나타나는 개념과 형식을 바탕으로 새로운 담론과 미의식을 공유하는 자리를 마련했다”며 “첫 번째 주제인 기하학을 바탕으로 모인 작가들의 작품을 통해 오늘날 우리들의 사랑을 다시금 사유해보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전시전경
마니페스타 문신 Ⅰ 1)
사랑의 기하학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기형도, 「질투는 나의 힘」 중에서
많은 사람들이 ‘사랑’에 울고 웃는다. 모든 생에 걸쳐 사랑을 찾아 헤매었다는 기형도의 시처럼, 사람들은 사랑을 주제로 한 노래, 영화 그리고 시와 소설을 보며 삶의 공감과 위로를 받는다. 사랑은 어떠한 상황에도 독립적인 개인사로 유일하게 존재하지만, 누구나 유사한 형태로 공감할 수 있는 문맥이자 공식이기도 하다.
사랑에 대한 사전적 정의는 다음과 같다.
1. 어떤 사람이나 존재를 몹시 아끼고 귀중히 여기는 마음
2. 어떤 사물이나 대상을 아끼고 소중히 여기거나 즐기는 마음
3. 남을 이해하고 돕는 마음
이처럼 사랑은 서로 다른 대상이 존재한다는 전제조건이 성립해야 이루어질 수 있는 것으로, 인간이 수없이 이루어내는 타인과의 만남, 관계 속에서 무한히 일어나고 변주하는 사건이다. 사랑의 범주는 비단 가족, 친구, 연인과 같은 단순한 개인사를 넘어, 전 지구적 차원에서의 문화, 사회, 정치적인 것을 포괄하는 근간이기도 하다.
오늘날 사람들에게 사랑은 형식과 공식에 따라 해석되기를 바라는 것 같다. ‘사랑에도 공식이 있나요?’라는 한 드라마의 제목처럼,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방식이나 계산된 법칙을 통해 정답을 찾아 사랑을 좇아가고자 하는 사회적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한 예로 칼 융(Carl Jung)의 인간 심리 유형론을 토대로 고안된 ‘성격유형검사 MBTI’ 열풍이 있다. 최근 많은 사람들이 16가지로 분류된 타인의 성격적 특성과 행동을 토대로 관계에서 발생하는 인과를 공식처럼 이해하고 도움받고자 하는 심리가 그러하다. 이성 혹은 친구 관계에서 재미 삼아 사용되던 이 검사는 현재 취업시장까지 파고들어, 많은 취업 준비생이 회사가 원하는 성격유형에 맞추어 성격을 바꾸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이처럼 사랑은 점차 공식화되어가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사랑의 전제조건이 자본이라는 수치로 치환되어, 사랑이라는 인간의 존엄을 사치로 간주하기도 한다. 통계청의 「2022년 사회조사 결과」에 따르면, 결혼에 대해 “반드시 해야 한다”거나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는 미혼남녀는 30% 내외로 조사되었는데, 그 이유로 가장 많은 것은 ‘결혼 자금이 부족해서’(28.7%)였으며 그다음으로는 ‘고용 상태가 불안정해서’(14.6%)였다. 물론 사랑과 결혼은 전혀 다르게 분리된 영역이지만, 사랑을 결혼의 전제조건 중 하나로 본다면 결국 인간관계에 따른 이유가 아니라 경제적인 이유 때문에 사랑하지 않거나 사랑을 시작하지 않는 사람이 많다는 뜻이기도 하다.
사회ㆍ경제적 현상뿐만 아니라 사랑을 공식화하면서 일어나는 심리적인 문제도 있다. 관계 속에서 일어나는 사랑의 순수성을 잃어버린 지금, 모든 상황과 관계에 질서와 정돈을 원하는 심리는 완벽주의라는 성향을 낳게 했다. 인간에게서 완벽한 상태가 존재한다고 믿는 신념은 도리어 완전함에 대한 압박과 불안감, 나아서는 심리적 우울을 유발하기도 한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에서 우리에게 사랑은 과연 지속될 수 있을까?
《사랑의 기하학》은 측정하거나 공식화할 수 없는 개념의 ‘사랑’을 도형과 공간의 성질에 대해 연구하는 수학적 학문 ‘기하학’과 배치하여, 오늘날이 추구하는 이상향과 이에 따른 아이러니를 사유해보는 과정을 은유한 것이다. 기하학은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상징할 뿐만 아니라 많은 예술가들에게서 영감의 원천으로 활용되었지만, 이번 전시에서는 추상적인 특징뿐만 아니라 공식이라는 성격적 의미를 은유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이처럼 주제와 연결된 네 명의 작가들의 기하학적 시선과 경험을 통해 관객에게 오늘날 사랑의 다양한 측면을 사유하는 장을 마련하고자 한다.
1) 마니페스타(Manifestar)는 ‘나타내다’라는 뜻으로 젊은 작가들의 의사소통과 정보교환을 위한 네트워크 지향을 주요 목적으로 한 비엔날레에서 유래되었으며, 문신미술관에서는 문신(文信, 1922-1995)의 예술세계에서 나타나는 개념과 형식을 바탕으로 현대미술의 담론과 미의식을 공유하는 첫 번째 장을 마련하고자 한다. 첫 번째 주제는 ‘기하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