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작가조망전 김재동 《멀리 새벽으로부터: 1970-1990년대 포항 기록》
때로는 첨언하지 않아도, 보기만 해도 충분한 작품이 있다. 김재동의 사진이 바로 그러하다. 한 장의 사진에 인간의 삶과 내러티브가 있다. 포항시립미술관은 세 번째 지역작가 사진전으로 다큐멘터리 사진가 김재동의 개인전 《멀리 새벽으로부터: 1970 - 1990년대 포항 기록》을 선보인다.
작가는 1970년대부터 포항 교외 곳곳을 다니며, 생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아름다운 산과 바다도 굳은살이 박인 어민의 손이나, 깊게 패인 농민의 주름보다 아름답지 않았다. 공동 작업으로 그물을 쏘는 사람들, 쪼그려 앉아 오징어 내장을 손질하는 촌부, 대나무 작대기로 돌미역을 건지는 할머니⋯. 어업도 농업도 자동화가 되어 대량생산이 가능해진 지금, 1970, 80년대의 어업 방식은 수렵과 채집의 원형을 보여주며, 거친 자연에서의 인간의 삶이 치열한 생존의 현장이었다는 것을 상기시킨다.
“포항 토박이로서, 고향의 삶의 모습을 사진으로 남겨놓겠다” 라며 작가가 기록한 노동의 현장에는 그 말대로 지역이 간직한 향토적인 색이 묻어난다. 그러나 척박한 환경에서 온몸으로 현실을 살아낸 어버이 세대의 정직한 땀방울에서, 우리는 시간과 장소를 초월한 휴머니즘을 엿볼 수 있다. 그렇게 자식들을 대학으로, 또 다른 도시로 보내면서 더 나은 미래를 기대하고 희생한 우리네 부모의 모습이 그려지는 것이다. 이렇듯 작가가 선택한 소박하고 진솔한 주제는,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작품이 되었다. “인간의 삶에는 희로애락이 듬뿍 담겨 있다”고 말하는 김재동의 사진은 고향에 대한 사랑, 삶에 대한 경이로 가득 차 있다.
움직이는 사람들의 스냅 사진을 찍기 위해서는 순간 포착 기술이 필수적이었다. 이를 위해 작가는 구룡포를 오가며 무수히 많은 갈매기 사진을 찍었다. 어려운 것을 찍을 수 있어야 쉬운 것을 찍을 수 있다고 말하며, 제각기 날아가는 수백 마리의 갈매기 떼로 구도를 연습하였다. 그러나 사람을 찍는 것이 갈매기를 찍는 것 보다 결코 쉽지는 않았다. 사진 찍히는 것을 싫어하는 해녀들은 돌멩이를 던지기도 했다. 그럴 때 작가는 목측(目測)으로 거리와 구도를 가늠하여, 노 파인더 기법1)으로 작업자들을 가까이에서 촬영하였고, 자연스럽고 생동감 있는 사진을 얻을 수 있었다.
그렇게 사람이라는 피사체에 빠져든 김재동은 <구룡포>(1987)로 아사히 살롱전에서 입상하는 쾌거를 이루었고, 그토록 찍었던 갈매기떼 <무조(舞鳥)>(1986)로는 제5회 대한민국 사진 전람회에 입선한다. 컬러사진을 인화하기도 어려웠던 1970년대 포항에서 필름을 모아 대구, 부산으로 보내고, 사진이 현상되어 오기를 기다리면서도 작가는 배움의 끈을 놓지 않았다. 대구의 신현국을 사사하여, 달에 한 번씩 포항과 대구를 오갔다. 이후 포항 사진 동호회인 포영회에 가입, 1980년 12월부터 포영회 고문으로 있던 유정재에게 가르침을 받게 된다. 그가 현재까지도 집요하게 고집하는 사진의 구도, 주제와 부제는 바로 이 시절에 익힌 감각인 것이다.
흔히 다큐멘터리 사진의 형식은 흑백 인물사진으로 표상된다. 그러나 흑백 사진과 컬러 사진이 교차하던 시기인 1970년대, 김재동의 사진에는 그물을 비롯한 인공 플라스틱의 강렬한 색감과, 사람이 흉내 낼 수 없는 자연의 온화하고 경이로운 팔레트가 공존한다. 그리고 이러한 미적인 가치 이외에, 김재동의 다큐멘터리 사진에 남아있는 포항의 과거 모습은 지역의 다양성을 담아내는 역사적 자료로서도 기능한다. 지금의 포항을 있게 한 천혜의 자연은 찾아보기 어렵다. 도시는 빠르게 공업화되었고, 시멘트로 다듬어진 지평선은 인간의 삶에 편의를 가져다주었다. 그렇기에 더욱 김재동이 찍은 거친 자연과 그 속에서 살아간 사람들은, 우리의 마음에 감동을 주고, 본 적 없는 고향을 향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1) 노 파인더 기법: 카메라 뷰파인더를 보지 않고 촬영하는 기법으로, 보통 피사체가 촬영하는 것을 모르게 하기 위해 사용된다. 생활주의리얼리즘을 주도한 작가들이 자연스러운 사진을 찍기 위해서 주로 사용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