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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주영 : 그림의 기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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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주영, M21, 2021, 린넨에 유채, 170 x 210 cm



정주영《그림의 기후》

2023.2.15 – 3.26

갤러리현대


“풍경을 본다는 것은 생생한 대상의 경험을 총체적이며 통합적으로 인식하고 그려내는 것이며, 풍경과의 조우는 여전히 새롭고 나날이 새로운(생생화화 生生化化) 인식과 정신의 지평을 여는 일이다.” – 정주영 


갤러리현대는 정주영 작가의 개인전 《그림의 기후(Meteorologica)》를 2월 15일부터 3월 26일까지 개최한다.《그림의 기후》는 작가의 ‘산-풍경’ 시리즈 중 <알프스> 연작의 최신작과 ‘기상학’을 주제로 산 너머의 하늘과 구름, 대기 등의 풍경으로 시선을 넓힌 새로운 <M> 연작까지 60여 점을 대거 소개한다.


정주영은 한국 미술계를 이끄는 중견 화가로 ‘산의 작가’로 통한다. 1990년대 중반부터 최근까지, 작가는 산의 풍경을 캔버스로 옮겨 그렸다. ‘산’은 서양회화에서 풍경화, 동양회화에서는 산수화로 불리는 장르의 대표적인 공통 화제(畵題) 중 하나로, 정주영에게 풍경화는 회화의 방법론을 실험하기 가장 좋은 소재이다. 작가는 단원 김홍도나 겸재 정선의 산수화 일부를 차용해 대형 캔버스로 옮기는 작업을 시작으로 북한산, 인왕산, 도봉산, 그리고 알프스 등의 국내외 산을 테마로 삼고 산의 일부나 봉우리, 바위의 면면을 캔버스에 담았다. 그는 산을 매개로 한 일련의 연작을 통해 풍경에 관한 인식론적 투사나 그 배경에 관한 문화사적 사고를 드러내고자 하였다. 산 연작에 관해 작가는, “관념과 추상을 넘어선 감각과 체험의 구체적이며 원초적인 차원으로 우리 인식의 뿌리를 잡아 이끄는 풍경의 초상”이라 설명한다. 정주영이 그려낸 산-풍경은 진경과 실경, 관념과 실재, 추상과 구상 사이에 놓인 이중적인 ‘틈’ 회화의 세계를 제시한다고 평가받는다.


《그림의 기후》전의 출발점에는 <알프스> 연작이 놓인다. 작가는 석회암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뾰족한 봉우리들과 빙하가 어우러진 일대를 2006년 답사할 기회가 있었고, 그때 촬영한 사진 자료와 자신의 기억을 기반으로 2018년부터 <알프스> 연작을 제작하고 있다. 그는 지각변동과 침식작용 끝에 생겨난 절묘한 형상과 마그네슘, 칼슘, 철 등이 함유되어 있어 붉은색을 띠는 암석을 그리며, 산의 원형적 풍경을 사람의 얼굴과 손, 다리 등 신체의 일부를 연상하게 하여 보는 이에게 인식과 감각의 전환, 나아가 내면을 투영하도록 안내한다. 알프스에서 마주한 웅대하고 낭만주의적인 하늘 풍경은 ‘기상학’을 주제로 새롭게 선보이는 <M> 연작과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정주영은 <알프스> 연작을 준비하며 계절과 시간을 나타내는 하늘에 처음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코로나 팬데믹이 장기화하면서 작가에게 변화의 상태가 더 긴박하게 다가왔고, 예상치 못한 사고의 전환을 갖게 되었다. 산과 바위에서 하늘로 회화의 공간을 확장하고 동시에 “재현할 수 있는 것에서 재현할 수 없는 것으로, 알 수 있는 것에서 알 수 없는 것으로 회화적 방법론이 이행해갔던 것”(작가 노트)이다.


<M> 연작에서 작가의 시선은 산 너머의 하늘이라는 공간으로 확장된다. 하늘, 구름, 일출, 일몰 등 고정불가능한 자연의 상태가 캔버스에 포착된다. 하늘의 경계 없는 무한에 가까운 공간은 인간의 어떤 욕망이나 영적 숭고함을 담보하는 장소이며, 구름은 기의와 기표, 실체와 기호 사이에서 표류하는 혼돈의 대상이자 신비와 무한에 대한 표현이다. 실체가 없지만 우리 눈앞에 분명히 펼쳐지는 이 흐릿한 풍경들은 정주영 특유의 회화적인 동시에 선묘적인 필법으로 드러난다. 계속 형태를 바꾸는 추상적이고 기하학적인 형태를 띠는 하늘의 풍경들은 수많은 색의 레이어가 쌓인 다채롭고 몽환적인 색채의 그러데이션으로 재현된다. <M> 연작은 감정과 기분, 행복과 슬픔, 생과 사 등 고정될 수 없고 영원히 순환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삶과 대자연을 은유하며 감상자 내면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전시의 부제인 ‘Meteorologica’는 아리스토텔레스가 공기와 물, 땅에 관한 여러 기후 현상들을 관찰하고 이를 자연철학적으로 기술한 책 <기상학(Meteorology)>의 이름에서 가져왔으며, 연작의 제목은 기상학(Meteorology)의 이니셜 M을 사용해 작가가 그린 순서대로 번호를 부여한 것이다.


지하 전시장에는 <알프스> 연작과 중간 지대의 역할을 하는 <M> 연작 일부를, 1층에는 <M> 연작 중 일몰에 관한 풍경을, 2층에는 날씨의 변화와 구름의 다양한 콜라주에 대한 <M> 연작을 배치함으로써 지하에서 1층, 2층으로 연결되는, 산에서 구름으로 시점이 상승하여 마치 하늘로 들어가 작품을 감상하고 경험할 수 있는 관람 코스를 마련했다. 개별 작품들은 크기 상관 없이 동등한 간격으로 전시장 전면에 설치된다. 이러한 수평적인 배치는 기상의 무대가 되는 하늘이 크기나 위계의 구분, 한계가 없는 공간으로, 크기에 따른 비중을 두기보다는 하늘의 풍경을 담은 각각의 작품들의 관계에 초점을 맞춘 작가의 의도를 엿볼 수 있다.


<알프스> 연작에서 작가는 산의 다양한 음영과 바위의 모습을 인체의 일부나 어떤 유기적인 형태로 치환해 표현했다. 바위의 부피감과 단층은 마치 사람의 근육처럼 볼륨감 있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1층 전시장에는 해가 지는 일몰의 풍경을 담은 다양한 작품을 만날 수 있다. 특히 일몰의 몽환적인 하늘 풍경을 그린 <M21>은 세세하게 표현된 붓의 질감과 색채의 스펙트럼을 담아내며 관객에게 실제 일몰을 마주할 때의 감각을 환기하고 감상자에게 명상적인 울림을 준다. 일몰의 시각에 점차 형체가 흐릿해지며 소실되어 가는 태양의 강렬한 장면을 담은 <M19>, 석양의 웅장함과 서정적인 정서를 타원형의 캔버스에 담은 <M18-1>도 만나볼 수 있다. 2층 전시장에 들어서면 날씨별로 변화하는 다양한 구름의 형상이 담긴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M40>과 <M41>은 작가가 독특한 형상의 거대한 먹구름에서 인체의 형상을 연상하고 이를 표현한 것으로, 왼쪽 화면에서는 얼굴의 측면을 오른쪽 화면에는 몸은 뒷부분처럼 다리를 포개고 반대편을 보고 누워있는 사람 모습을 연상케 한다. 정주영은 먹구름의 어두움을 표현하기보다는 레이어를 겹친 삼원색의 혼합을 통해 먹구름이 가지고 있는 탁하지만 깊이 있는 질감과 긴장감 있는 회색을 표현한다. 


《그림의 기후》을 통해 우리는 정주영 작가가 산과 바위에서 물과 안개, 구름과 하늘의 영역으로 회화의 공간을 확장해 나간 시도를 확인할 수 있다. 작가는 고정된 대상에서 끊임없이 변화하는 재현 불가능한 ‘기후’를 그리며 ‘그림’의 새로운 변화 가능성을 제시한다. 정주영의 풍경 연작은 스마트폰과 컴퓨터 모니터를 바라보는 것이 일상인 동시대 수많은 사람에게 다시금 불가해한 하늘의 공간을 보게 함으로써, 가장 원형적인 풍경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명상적인 시간을 선사할 예정이다.  



작가에 관하여


정주영(1969년 서울 출생)은 1992년 서울대학교 서양화과와 1997년 독일 쿤스트 아카데미 뒤셀도르프, 네덜란드 드 아뜰리에를 졸업하였으며, 쿤스트 아카데미 뒤셀도르프에서 얀 디베츠(Jan Dibbets)교수로부터 마이스터슐러를 취득하였다. 현재는 한국종합예술학교 미술원 조형예술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누크갤러리(2021), 이목화랑(2020), 갤러리현대(2017, 2013), 몽인아트센터(2010), 갤러리 175(2006), 아트선재센터(2002), 금호미술관(1999) 등에서 개인전을 개최한 바 있으며, 그의 작품은 서울시립미술관, 신세계 갤러리, 아트선재센터, 몽인아트센터, 경기도 미술관, 대구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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