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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에나 있고 아무데도 없는 강홍구의 서울
강홍구(1956-)는 1990년대 중반부터 디지털 이미지를 주 매체로 삼아 일상의 시각 환경을 채집해 현실과 허구, 진지함과 가벼움의 자장 속에서 새롭게 재현한 독자적인 작업을 전개해 왔다. 특히 그는 재개발에 따른 도시 공간의 변화에 주목했다. 그가 오랜 기간 꾸준히 관찰한 대상 중 서울의 공간은 중요한 한 갈래를 이루는데 서울시 은평구 불광동과 은평뉴타운 재개발 지역이 대표적이다. 강홍구는 20년 넘는 기간 동안 이 지역을 돌아다니며 재개발 과정을 기록하고 이를 토대로 작품을 제작했다. 대표 연작 <미키네 집>, <수련자>, <그 집>, <사라지다-은평뉴타운에 대한 어떤 기록>이 모두 이 지역의 재개발 과정에 대한 관찰을 바탕으로 탄생했다.
이 전시는 서울시립 미술아카이브가 소장한 강홍구 컬렉션을 중심에 놓고 강홍구의 작품과 자료 전체를 ‘강홍구의 서울 아카이브’로 해석해 보고자 한다. 강홍구가 구축한 서울을 기록한 사진 이미지는 일차적으로 그의 주요 작품의 소재가 되었다는 점에서 그 의미를 찾아볼 수 있겠으나 단지 이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강홍구에게 서울은 하나의 도시이면서 모든 도시를 아우르는 대명사이기도 하다. 그에게 서울은 도시 공간의 재편이라는 사회적 현상을 관찰하고 탐구하는 지평을 넓혀준 창이었고, 그의 도시 공간 탐구는 서울을 딛고 경기도 지역을 넘어 부산과 청주 등지로 확대되어 갔다. 따라서 강홍구의 서울 관련 기록 자료는 그의 작업에서 핵심적인 모체라고 할 수 있다.
서울은 하나의 도시이면서 여러 개의 도시이고 여러 개의 도시이면서 하나의 도시이다. 강홍구의 사진이 담고 있는 서울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서울인 동시에 지금도 어디서나 만나볼 수 있는 도시의 모습이고, 강홍구가 목격한 서울이면서 우리에게도 그리 낯설지 않은 서울이기도 하다. 따라서 ‘강홍구의 서울 아카이브’는 비단 한 개인의 작품을 위한 아카이브의 차원을 넘어 읽어 볼 수 있는 가능성이 풍부하다. 미학적인 차원을 잠시 유예하면 서울이라는 도시의 변천과 공간의 변모, 이것이 가져오는 삶의 변화, 변화와 보존, 기억과 기록 등 미술의 경계를 넘어 인문, 사회, 도시, 건축 등 다양한 분야에서 함께 머리를 맞대고 들여다볼 수 있는 흥미로운 자료가 된다. 전시 기간 중 여러 분야의 연구자, 창작자들과 함께 진행하는 강연, 토크 프로그램은 강홍구의 작품과 자료에 대한 두텁게 읽기를 제안하면서 강홍구의 서울 아카이브가 가진 다른 가능성을 실험하고 실천한다. 이 전시가 서울을, 더 나아가 도시와 우리 삶의 조건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는 기회가 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