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
2024-05-03 ~ 2024-08-04
정정주
무료
062-613-6123
경험과 환영으로서의 ‘빛’
외부세계를 포함한 예술을 온전히 향유하는 행위는 감각기관을 통한 정서적 자극을 넘어서 일련의 ‘과정’을 수반한다. 예술의 생산자와 향수자 모두에게 있어 미적 행위란 실용적이지 않거나 고상한 관념의 산물들을 단순히 지각하는 것이 아닌, 창작이라는 주체 행위와 감상이라는 수동적 요소의 균형 속에서 각각의 경험과 사고를 상호 인식하는 과정이다. 공간구조와 빛, 시점의 관계를 다뤄온 미디어아티스트 정정주는 감상자의 감각체험이 전부가 아닌 빛·장소·시선 등의 개별 요소들을 통해 작업의 열린 해석을 지향한다.
광주미디어아트플랫폼 기획초대전 <정정주: Luminous City>는 매개적 성질의 ‘빛’을 중심으로 빛 경험의 이중성과 양가적 특질을 거론한다. 정정주는 도시경험이라는 구체성을 띤 소재에서 사회적 맥락 안에서의 삶의 양태 및 현전(現前)을 이야기한다. ‘Luminous City’라는 주제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발광하는 인공의 빛은 신자유주의 속 도시의 욕망과 함께 모종의 허무를 담보한다. 우리가 인식하는 빛의 관념이란 종교적 초월성과 도시문명의 스펙터클, 자연과 인공, 희망과 허무, 정신계와 물질계, 시각과 촉각 등 상반된 성질을 모두 함의한다. 정정주의 독일 유학시절, 초기 작업에서 보이는 빛에 대한 인식은 그가 경험한 불안에서 비롯됐다. 자신의 방안을 비추는 태양빛이 따스함과 부드러운 성질을 넘어, 어느 순간 “마치 거인의 혀가 내 작은 방을 핥고 지나가는 것”과 같은 공포와 촉각적인 괴리감을 안겨주었던 일은 형이상학과 물리적 세계에 걸쳐 있는 빛, 그리고 그것의 다의성에 대한 천착으로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빛을 인지하는 감각기관인 눈은 보는 행위, 즉 응시의 증거로서 공간과 장소에 작용하여 빛, 혹은 빛에 의해 비추어지는 외부세계를 경험하게 한다.
응시에 의한 이러한 빛의 경험이 인식의 주체와 외부세계와의 연결행위라고 규정할 때, 도시의 발광하는 일방향의 빛은 세속의 욕망, 교감의 부재 등 부정적인 의미를 내포하기도 한다. 이번 전시작들에서는 어떤 현상이 일어날 수 있는 곳과 어떤 일이 이루어졌거나 일어나는 곳에 집적된 인공 광원이, 확연한 이미지 투사로 때로는 광원이 자리한 공간 주변으로 난반사되면서 또렷이 구성되거나 왜곡된다. 본 전시에서 작가는 타인을 비롯한 외부세계에서 받은 자극이나 상처에 대해 반응하는 행동들과 함께, 역으로 외부에 대한 시선을 비유적으로 교차시킨다. 정정주는 이를 두고 외부의 시선은 작업 초기의 ‘빛의 혀’와 같이 촉각적인 반응을 불러일으킨다고 술회한다.
작품에서 보이는 시선의 왜곡, 시선의 촉각화는 일종의 빛의 환영으로서 관람자를 전시 공간 전체를 훑고 지나가는 빛 안으로 끌어들인다. 환영의 잔상은 거울효과로 인해 일그러지기도 하고, 익숙한 도시 이미지 또한 모니터 화면을 전체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아닌, 중간중간에 세워진 거울이나 구조물로 인해 확실한 대상으로 다가오다가 어른거린다. 결국에는 빛과 공간, 시선의 상호작용에 의해 일련의 완성된 건축물을 보는 것과 같은 시각적 착각을 유도한다.
빛과 시선으로부터 유래한 형상은 그것이 사실은 본래 빛이었고, 관람자의 경험과 사고에 의해 시선의 해체와 구성은 이내 반복된다. 비가시성과 가시성을 오가는 빛의 이중성은 작가로 하여금 경외와 더불어 불안을 야기시켰고, 이는 더욱 확대되어 가족, 집, 사회로 점철되는 관계망에 선 개인으로서의 환영을 목도하게 했다. 본 전시에서 언급한 빛의 경험은 그저 감각기관을 자극하는 빛이 아닌 보는 것과 보이는 것, 주체와 대상에 대한 성찰을 끄집어내기 위한 하나의 매개활동일 터이다.
실용주의(pragmatism) 철학자 존 듀이는 모든 ‘경험’은 살아있는 생명체와 그것이 살고 있는 세계의 어떤 국면과의 사이에서 행해지는 상호작용의 결과라고 주장했다.
지금의 예술이 현란한 미디움(medium)으로 하여금 작품을 그저 주목하게 할 것인지, 혹은 온오프를 망라한 일상의 근거리에 자리한 매체들로 인해 유의미한 교감을 이끌어낼 것인가의 문제는, 그것이 여전히 매체특정성(medium specificity)을 담보하기에 중요한 쟁점이 아닐 수 없다. 부연하자면, 삶으로 전이된 예술에서 명명된 과정형의 예술이 시각적 자극 이상의 생산자와 향수자 간의 상호소통의 결과물로서 나아갈 수 있을지에 대해 숙고해야 할 시점이 아닐까 싶다. ‘다시 빛’으로 돌아가 사적 경험의 산물들을 열거한 정정주의 작업이 완전한 경험으로 나아가는 과정이 되기를 바라며, 감상자 또한 그 과정 안에서 온전히 지속적인 정황의 일부가 될 수 있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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