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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는 수장고 - 최정화: 인류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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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도립미술관은 개관 20주년을 맞아 미술관 1층 유휴공간을 활용하여 ‘보이는 수장고’ 전시를 처음으로 기획하였다. 일반적으로 미술작품은 온·습도 및 조도에 민감하여 밀실 방식의 수장 기능이 필요하다. 그러나 온·습도 및 조도에 크게 민감하지 않은 조각·설치 작품의 경우, 기존의 밀실 방식의 수장고에서 벗어나 좀 더 개방적인 ‘보이는 수장고’로서 활용될 수 있다. 이를 통해 관람객에게 접근이 가능한 형태의 수장고를 전시 형태로 선보일 수 있다. 

이번에 선보이는 소장품은 최정화 작가의 <인류세>이다. 이 작품은 이곳에 옮겨지기 전, 미술관 앞마당에 세워졌던 야외 설치작품이다. 이 작품은 이번 ‘보이는 수장고’ 전시에 따라 외부에서 내부로 전시 위치·공간도 변했을 뿐만 아니라 설치 방식도 기존과 다르게 변화되었다. 미술관의 긴 복도식 유휴공간에 맞춰 작품은 수직이 아닌 수평으로 설치되었다. 높고 긴 작품을 관람객의 시선에 맞춰 안정적인 수평으로 설치함으로써 보기 쉽지 않았던 작품의 상부를 편안한 시각으로 볼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2020년 10월부터 미술관 야외 앞마당 잔디 위에 설치된 최정화의 <인류세>는 높이가 장장 24m에 육박하는 긴 탑 형태의 조형물이다. 이 작품은 당시 최정화 작가의 <살어리 살어리랏다> 전시와 연계하여 야외 프로젝트로 기획된 작품이다. 이 작품이 탄생하게 된 배경에는 2020년 7월 한 달간 《살어리 살어리랏다: 야외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진행된 공공미술프로젝트 ‘모아모아(Gather, Together)’가 있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수집된 냄비와 솥들은 높이 24m, 무게 1.5t의 <인류세>(Anthropocene)로 재탄생하였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작가가 전달하고자 한 것은 “모든 것이 예술이 될 수 있고, 모두가 예술가가 될 수 있다.”는 메시지다. 이는 최정화 작가의 예술관을 관통하는 핵심 방법론이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사용하던 일상적 식기는 작품으로, 참여자들은 예술가로 기능과 역할이 변하는 상황을 연출했다. 예술과 일상, 예술가와 관람객, 개인과 공동체의 경계를 넘나드는 과정은 참여자 모두가 공동 경험의 주체로 거듭나도록 함으로써 <인류세>의 상징적 의미를 더했다. 

2020년 당시 국내외 매체에서 자주 언급된 용어 중 하나가 ‘인류세’였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근본적인 삶이 흔들리게 되면서, 변화의 주범인 인류가 지구환경에 행한 결과들에 대해 다시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지질학적 용어 인류세(人類世, Anthropocene)는 ‘인류’와 ‘최근의 시간’을 가리키는 그리스어를 조합한 단어로 새로운 지질시대 즉, 인류에 의해 멸망한 미래의 지구환경 상태를 가리킨다. 이 개념은 2000년에 대기 화학자 파울 크뤼천(Paul Crutzen)이 한 학회에서 “우리는 인류세에 살고 있다.”라고 선언하면서 본격적인 관심과 논의의 대상으로 떠올랐다. 미래에 남겨질 지층을 통해 인간 삶의 흔적과 멸망의 원인을 추적하게 될 것이라는 충격적인 선언이었다. 

우리의 일상을 상징하는 냄비, 솥 등이 모여 있는 작품은 일상에서 우리가 실천할 수 있는 기후 위기, 환경 위기의 방안은 무엇인가라는 질문거리를 던져준다. 누군가는 이 작품 앞에서 당당하게 자신의 생활 속 실천이 떠오르는 사람도 있을 것이며, 반대로 그렇지 않은 이도 있을 것이다. 이 작품은 미술관 앞마당 야외에서 줄곧 서 있으며 미술관을 방문한 관람객이나 길을 지나가던 이에게 물음을 던져왔다. 이제 이 작품은 3년간의 야외 프로젝트를 끝으로 미술관 내부로 들어와 또 다른 방식으로 자리 잡아 관람객에게 다시 한번 질문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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