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도호: 스페큘레이션스
기간 2024. 8. 17. – 11. 17.
장소 아트선재센터 전관
기획 김선정(아트선재센터 예술감독), 조희현(아트선재센터 전시팀장)
진행보조 유승아(아트선재센터 인턴)
주최 아트선재센터
협찬 매일유업㈜, 벽산엔지니어링·파워·엔터프라이즈, LG 올레드, 코오롱스포츠
후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서도호의 삶과 세상에 관한 성찰, 미래에 대한 상상을 경험할 수 있는 이번 전시는 ‘스페큘레이션(speculation)’을 사유의 전략으로 삼아 작가가 끊임없이 탐구해 온 시간, 공간, 기억, 움직임의 주제를 재구성하며 대안 세계에서 가능한 것들을 탐구합니다. 사변, 추론, 사색 등의 의미를 가진 단어인 ‘스페큘레이션’은 개인과 공동체, 환경 간의 상호작용에 대한 서도호의 숙고와 가설, 상상력의 작동 방식을 함축합니다. 서도호는 자신의 창작 활동을 ‘스페큘레이션 과정’이라고 설명하며, 정서적인 동시에 육체적인 삶의 복합적인 특성에 접근하는 새로운 가능성을 다양한 이야기로 풀어냅니다.
그동안 서도호는 자신이 실제 거주했던 집이나 작업실 공간을 천으로 구현해 장소 특정적 미술의 이동 가능성을 보여주었습니다. 단단한 물질을 재료로 삼아 특정한 장소에 고정되는 조각들과 달리 빛이 투과되는 성질의 천으로 만든 서도호의 집은 어디로든 손쉽게 이동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작업들이 관객들에게 서도호의 공간을 경험하게 한 것이라면, 《서도호: 스페큘레이션스》는 다가올 미래의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하는 서도호의 사유 과정을 경험하게 합니다. 완성된 결과물로서 작품을 보여주는 통상적인 미술 전시와 달리 이번 전시는 작가의 예술적 실천 그 저변을 이루는 개념, 과정, 조사에 초점을 맞추어 서도호가 가진 사유의 흐름을 드로잉, 축소된 모형, 시뮬레이션 영상으로 시각화해 펼쳐 보입니다.
1층 더그라운드에서는 서도호의 다리 프로젝트를 소개합니다. “당신을 위한 완벽한 집은 어디에 있을까?” 서도호는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자신이 집이라고 느끼는 두 도시, 뉴욕과 서울을 태평양 위로 연결합니다. 그리고 그 중앙에 자신의 완벽한 집이 있을 것이라고 상상합니다. 첫 번째 다리 프로젝트에 해당하는 <완벽한 집: 다리 프로젝트>(2010–2012)는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대륙 사이의 이동에 대한 사변적 사유와 드로잉을 기반으로, 건축가, 생물학자, 물리학자, 이론가, 산업디자이너 등 여러 협력자들이 함께 모여 태평양의 조류와 바람을 버틸 수 있는 집을 짓는 것이었습니다.
이번 전시에서 처음 공개하는 서도호의 두 번째 다리 프로젝트는 작가의 현재 거주지인 런던을 추가해 서울, 뉴욕, 런던 세 도시를 등거리로 연결한 지점에 ‘완벽한 집’을 설계합니다. 서도호는 북극 보퍼트해 인근 축지(Chukchi) 고원(좌표: 77°55’33″N 161°23’49″W)에 위치하게 되는 이 집에서 생존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대안과 가능성을 제시합니다. 이와 같은 사고 실험을 통해 작가는 다른 공간 사이를 이동하는 것의 의미를 질문하고, 기후 환경, 고립, 장벽, 다시 세워지는 국경을 포함한 사회적 문제들에 관한 잠재적인 대안을 실험합니다.
스페이스1에 소개되는 서도호의 작업들은 공통적으로 물리적 혹은 개념적으로 장애물이 있거나 실행상의 어려움으로 인해 필연적으로 사변적인 성질을 가집니다. 따라서 완벽하게 실현된 결과물로서 작품이 아니라 가설이나 다이어그램, 애니메이션, 모형, 글의 형태로 존재하며, 미완의 상태로 끊임없이 변화하고 진화합니다. 작업 전반에는 서도호의 ‘완벽한 집’에 대한 개념적 탐구, 공공미술에 관한 생각과 태도, 공간 사이를 연결하고 움직이게 하는 통로 공간에 대한 오랜 관심이 유기적으로 섞이며 작품 간의 관계망을 만듭니다. 바다와 하늘을 가로질러 서울의 한옥을 런던으로 옮기거나, 작가의 기억이 담긴 장소를 트럭에 싣는 등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도전에서부터, 기념비를 둘러싼 관습과 권력 구조를 해체하고 전복하는 등 시스템에 대한 도전에 이르기까지, 20년에 걸친 서도호의 폭 넓은 시도를 한 자리에서 만나볼 수 있습니다.
스페이스2에서는 서도호의 <동인아파트>(2022)와 <로빈 후드 가든, 울모어 스트리트, 런던 E14 0HG>(2018)를 순차 상영합니다. 이 두 영상은 재개발로 인해 사라지는 공동 주택 단지를 카메라로 느리게 기록하고 재현함으로써 시간과 기억, 공간과 공동체의 의미를 탐구합니다. 공동 주택 시설에 켜켜이 쌓인 기억에 동시성을 만들어내는 서도호의 사변적 시도는 공동체의 역사와 사람들의 삶에 대한 섬세한 관찰과 성찰을 경험하게 합니다.
《서도호: 스페큘레이션스》는 우화적 스토리텔링으로 현실과 환상을 넘나드는 서도호의 작업을 통해 동시대적 삶에 대한 시적인 성찰을 불러일으킵니다. 인간과 환경의 변화하는 관계 속에 제기되는 위기와 도전을 사변적 사유로 대응하며, 정서적이고 육체적인 삶의 복합성에 접근하는 새로운 가능성을 찾습니다. 이번 전시는 서도호가 펼치는 사유의 여정을 따라 물리적 현실과 개념적 상상의 경계를 오가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합니다. 나아가 교차하는 문화와 초국가적 삶의 조건, 지속 가능한 미래의 시공간을 유추하며 지구에 도래할 대안적 세계를 함께 구상해 보길 제안합니다.
작가소개
서도호(b. 1962)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및 동 대학원 동양화과 졸업. 예일대학교 대학원 조소과 졸업. 2003년 아트선재센터에서 한국에서 처음으로 개인전을 개최했으며, 휘트니미술관(2017, 2001), 영국 서펜타인갤러리(2002), 베니스비엔날레 본관 및 한국관(2001), 뉴욕 MoMA(2000) 등 주요 세계 미술관에서 개인전 및 그룹전 참여했다. 작가는 전 지구적으로 확장되는 문화의 이동과 차이 그리고 충돌을 개인적인 경험에서부터 공동체적인 기억으로 확장한다. 작가가 거주했던 서울의 한옥과 뉴욕의 아파트를 비단으로 만들어 설치한 작업은 이러한 경향을 드러낸다. 건축과 도시, 공간과 환경으로 확장되는 그의 작업은 현실 세계와 가상 세계 모두에서 점차 혼종적으로 확산되는 동시대적 삶에 시적인 성찰을 불러일으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