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섣부른 판단, 반드시 부정되-는 정의,
《 태세 : '그것' 이 [이:름]이 되-려면, 》
언제나, 정의되지 않은 것들은 조금 두려운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나요? 미지에 대한 인간 보편의 공포의 수준을 넘어, 저는 왠지 당연하고 평범한 것에서 벗어난 모든 것들을 조금 과하게 두려워 하는 것 같습니다. 단순히 개인의 성격인 건지, 아니면 한국이라는 국가의 ‘ 눈치 ’ 문화의 영향인지, 이동수단과 온라인 등이 열리며 인간이 감당하기 어려운 너무나 많은 정보를 경험하는 과정에서 아무것도 감각할 수 없는 과정에서의 무력감인지. 어쨌든 두려운 것 같습니다.
이러한 불분명함 속에서, 저는 불분명한 ‘그것’ 을 해석하고 정의하고자 하는 강력한 욕구를 느낍니다. 그러나 이 정의는 언제나 섣부를 수밖에 없으며, 기존의 개념을 사용하는 이상, 시간에 따라 반드시 부정될 운명에 놓여 있습니다. 우리는 새로운 정보와 경험을 통해 끊임없이 재고하고, 체계를 재편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것이 발전이든 퇴보이든, 영원히 그 어떤 것도 확정짓지 못하고 끊임없이 적응해야 한다니, 조금 막연해지는 것 같습니다.
그러한 개인적 배경을 통해 준비된 전시《태세 : '그것' 이 [이:름] 이 되려면》은 가변적 현상을 수용하고, 이를 보편의 영역으로 탐구하는 태도를 반영합니다. 이 전시는 보이지 않게 작용하는 구조적, 문화적 요소들을 발견하고, 불명확하고 이름 붙여지지 않은 '그것'—보편적 인식에 포함시키지 않는 것들—들을 시각화하며, 구체적 형상, 고정적 명칭인 [이:름] 을 부여하려는 시도입니다. 이러한 시도들을 통해, 사회적 관념과 구조에 대해, 그리고 자신의 판단을 어떻게 구성해보아야 하는지를 재고하게 합니다.
전시의 제목에서 '태세(態勢)'는 상황을 앞둔 태도나 자세를 의미하는 동시에, 큰 세상(太世)을 정의하려는 의지를 상징합니다. 이는 불확실한 세계를 마주하며, 그 불확실성을 해석하고 규정하려는 시도를 담고자 했습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태세(態勢)'는 변화하는 사회적 현상을 포착하고, 그 변화 속에서도 명료한 해석을 생성하려는 노력을 담고 있습니다.
제 작업에서 다뤄지는 소재인 ' 동충하초 ' 는 이러한 주제와 성질이 비슷한 소재를 사용하는 상징물입니다. 여름에는 곤충으로, 겨울에는 버섯으로 변하는 동충하초는 주체성이 역전되어있는 상태를 은유합니다. 인간의 몸에서 동충하초가 자라나는 이미지를 통해, 저는 사회적 관념이 어떻게 개인을 잡아먹고, 개인을 사회의 숙주로, 재료로서 사용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냈습니다. 이 작업은 사회와 개인이 얼마나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지, 그리고 이러한 연결 속에서 가변적 현상이 얼마나 보편적 구조에 의해 잠식될 수 있는지를 드러내려는 시도입니다.
지난 전시처럼 단순히 주체성을 잃고 무력한 상태의 인간을 관념적이고 거시적인 측면에서 회화적으로 묘사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교차된 정체성들을 재료와 공간을 통해 구체화하려는 시도로서, 이 과정에서 기존의 미술적 매체와 더불어, 실제 사용했던 현수막, 기획전 포장지 등과 같은 요소들을 재료로 사용하여, 물리적이고 구체적인 차원에서 현대 사회의 교차적 정체성을 시각화하려는 시도로, 이번에는 보다 개인적이고 서사적인 측면에서 접근해, 실제 대상이 가지고 있는 구조와 특질을 물리적 재료로 구체화하는 것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태세 : '그것' 이 [이:름] 이 되려면》은 무엇 따위를 정의하려는 시도들입니다. 개인의 불안을 해소하려는 울음에서 시작하여, 능동적으로 현상에 [이:름]을 붙이는 행위를 통해 불분명한 현상들과 개인의 교차적 관계를 탐구합니다. 섣부른 판단과 정의의 불완전성을 인식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명확한 세계를 해석하고 규정하려는 태도를 바탕으로, 새로운 판단 체계를 구축하여, 그 과정에서 미지에 대한 공포를 덜어내는 것에 기여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 작가 한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