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사이드 템포러리는 10월 17일부터 11월 16일까지 섬세한 신체 근육의 뒤틀림에 인간의 실존에 대한 탐구를 담아내어 온 작가 오원배(b.1953)의 개인전 《치환, 희망의 몸짓》을 진행한다. 그간 작가가 뒤틀려 있는 굵은 선을 통해 사회 체제에 종속된 인간의 무력감과 허무함을 다루었다면 이번 전시에서 그가 묘사하는 인체는 희망이라는 가능성을 담아낸 몸짓으로 치환되어 공간 전체를 하나의 무대로 변모시킨다.
전시 공간이 하나의 유기적인 작품으로
이번 전시는 음악에 맞추어 율동적인 동작으로 감정과 의지를 표현하는 행위인 ‘무도’를 연상시킨다.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마치 한 동작 한 동작 춤을 추는 무용수와 같아 보인다. 작가의 이전 작품들이 인물의 얼굴과 그 표정까지 전면적으로 내세웠다면, 이번 신작에서는 얼굴의 측면과 후면만을 노출함으로써 신체의 움직임에 더 집중하도록 유도한다. 목탄화처럼 검정색의 음영만으로 옅게 번져 나가는 그의 흔적은 투박하면서도 볼륨감 있는 근육의 해부학적 요소들은 놓치고 있지 않아 오히려 섬세하게 느껴진다. 특히 인물들의 위에서 내려다보는 시점으로 그려져 있는 것이 흥미로운데, 이러한 시점은 뒤로 넘어가는 듯한 상체의 움직임을 조망하기에 탁월하다. 작품을 보는 관람객을 저 위의 무언가를 희구하는 대상의 위치에 배치함으로써 마치 극장의 높은 좌석에서 보듯 춤을 관람하는 관람자가 된다.
Untitled, 2024, 천에 혼합재료, 260x1470cm
한편 이번 전시만을 위해 제작된 길이 15m의 거대한 캔버스에서 등장하는 인물들은 공간을 유영하며 관람객들을 에워싸는데, 이는 마치 전시 공간 자체가 하나의 유기적인 작품으로 보이도록 한다. 이 효과는 전시 공간과 작품의 긴밀성, 그리고 그 몰입감에 대해 그간 몰두해 왔던 작가의 의도가 만들어 낸 결과이다. 공간과 공명하고 반응하는 그의 가변적인 작품들은 작품과 관람객의 간격을 좁히며 화이트 큐브를 해체하고 즉흥성의 조화로움과 흥미로움을 수반한다.
고장난 저울로 상징되는 균형 잃은 사회
작가는 인간이 초래한 문제에 대해 치열한 고민 끝에 인간의 형상과 신체의 움직임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는 형상의 움직임을 체제의 저항에서부터 인간 본질에 관한 문제, 사회 제도와 부조리, 인간관계에서 파생되는 미묘한 이야기들과 AI와 인간의 문제 등 사회와 밀접하게 맞물린 이슈들을 담아낸다.
전술한 바와 같이 작가는 관람자를 ‘시점’을 통해 작품과 분리하는 듯 보이지만, 작품의 시간과 공간은 관람자와 같은 동시대, 그보다 더 밀접한 일상을 공유한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은 다양하다. 현실을 그대로 직시할 수도 있지만 그보다 작가는 문제를 인식하고 극복할 수 있는 시선으로 주변을 바라본다. 그러한 눈은 시대의 패러다임의 변화를 읽어내고 사회의 변화에 따라 달라지는 실존의 의미를 좇는 것이다. 관람자의 시간과 작품의 시간의 동일성을 위해 소화전과 샹들리에, 킥보드, 블럭, 장식 의자와 책 등 일상 생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티프이지만 이슈가 되었던 사건들을 의식하고 하나의 기호로서 동원이 되었다.
세상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이 존재해야 함에도 우리의 사회는 양극단으로 치닫고 있으며, 이로 인해 야기되는 문제들은 불신으로 작용하고 있다. 도덕과 윤리의 위기감이 팽배하고, 보편적 가치는 이념이나 진영에 의해 희화화 되기도 한다. 중세 패스트병보다 더 심각하다는 우리나라의 최저 출산율과 OECD국가 중에서 가장 높은 자살률 등 균형을 잃은 현상들은 복합적으로 작용되어 공동체에 대한 회의를 갖게한다.
Untitled, 2024, 혼합 재료, 가변 설치
이것이 바로 고장 난 저울로 상징된다. 어지러이 쌓여 있는 저울은 본디 영점이라는 중심을 잡고 정확성, 신뢰를 담보하는 데에 목적이 있다. 그 기능을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저울은 더 이상 신뢰할 수 없다. 어쩌면 희망이라는 자기 최면에 빠져야 만이 그나마 이 세상을 살아 갈 수 있을 것 같은 상황이다. 이번 전시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인체의 움직임은 희망의 기표가 된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왜 희망의 시선일까. 우리가 살고 있는 이 현실에서 긍정적인 가치를 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실존적 공허의 극복 의지
절망이 있어 희망을 구한다. 현대 사회로 접어들며 비롯된 경험으로부터 끝없이 찾아오는 의미의 상실은 인간의 존재적 의미를 찾지 못하게 한 실존적 공허(existential vacuum)의 상태를 초래하였다. 이는 불안과 좌절, 절망과 우울, 상실의 체험을 반복하며 한계에 다다른 인간이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지, 자신이 누구인지 모를 의문에 빠질 때 나타나는 현상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사회가 그러하여 결국 작가는 희망을 희구한다. 숫자가 새겨진 조각난 파이프와 설치된 저울 사이에 흩어져 있는 원통형의 조형물들은 순서대로 연결되어 저울이 제 기능을 찾고 정상적으로 작동하기를 바란다. 마주할 수밖에 없는 사회적 이슈들에 대한 다층적이고 모순적인 시각들을 실존적으로 바라보는 작가의 작업은 몸짓과 다양한 상징물의 기표와 감춰진 이면에 쌓인 기의의 레이어 사이를 넘나 들고 있다. 이를 통해 작가는 목격하는 오늘의 현실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하는 것이다.
작가 오원배는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의 변화하는 행간을 놓치지 않고 끊임없이 작품에 투사한다. 그는 이러한 변화 속에서 인간의 본질과 사회의 모순을 직시하며, 예술을 통해 그 복잡한 관계들을 풀어내고자 한다. 이번 전시를 통해 작가가 관계 맺는 이 사회의 면면을 진지하게 진술하고 그가 제시한 희망의 움직임과 소통하기를 바란다.